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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게 한판 벌여보자,<광복절특사>
2002-11-19

■ Story

배고픔을 못 이겨 빵을 훔쳐먹었을 뿐인데 신원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들어온 무석(차승원). 그는 너무나 억울해 몇 차례 탈옥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형량만 늘어난다. 하지만 어느 날 주님의 은총처럼 나타난 숟가락 하나. 그는 그것으로 지난 6년간 땅굴을 파왔다. 그의 탈옥 목표는 오로지 ‘자유’다. 하필이면 애인 경순과 결혼해 새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던 바로 그날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사기범 재필(설경구). 그는 ‘특사’의 기회를 노리고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비굴한 모범수 노릇을 해왔다. 하지만 면회 온 경순(송윤아)으로부터 며칠 뒤(광복절)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통보를 듣게 된 그는 격분하여 무석의 탈출에 동행한다. 그의 탈옥 목표는 오로지 ‘여자’다. 탈출에 성공한 그들은 조간 신문을 보고서야 자신들이 ‘광복절 특사’ 대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떳떳한 출감을 위해 이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감옥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 Review

‘코믹액션’을 표방하고 있는 이 영화가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웃음의 장치는 바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완전한 자유를 위해 다시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두 죄수.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탈옥한 두 죄수가 무사히 복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교도소 간부들. 하지만 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는 이 천혜의 출발점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 곳곳에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신명나게 판을 벌여보자고 하는 의욕이 넘친다. 한편으로 뼈있는 정치풍자로 마당을 넓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풍부한 영화적 인용(패러디)으로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한 의욕은 ‘상황 코미디’라는 기본 재료와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맛을 얻어내는 데 일정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가 <광복절특사>를 위해 준비한 신무기는 무엇보다 기발한 영화적 인용들인 듯하다. 곳곳에 뇌관처럼 묻혀 있는 영화적 인용들. 그것들은 적재적소에 매복한 채 관객을 노리며, 관객은 은밀함과 친밀함이 혼합된 그 교감에 바탕을 둔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것들은 때로는 불가피하게, 때로는 허를 찌르며 등장한다. ‘탈출영화’인 한 <쇼생크 탈출>의 패러디는 불가피했겠지만, 그 인용 방식이 너무 절묘해 재치와 의미를 동시에 담아낸다(사실 함께 시사한 관객은 이 대목에서 가장 ‘순도’ 높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이루어진 <봄날은 간다>의 인용은 정말 허를 찔리는 쾌감을 선사한다. 영화의 첫 대목에서 이루어지는 <쥬라기 공원>의 인용(고압선이 쳐진 철책)은 가벼운 농담일 것이다. 마지막 대목에서 이루어지는 <백 튜 더 퓨쳐>의 인용(넘을 수 없는 ‘경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나는 자동차)은 일견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필요하면 몸을 사리지 않고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그들만의 뚝심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독과 작가의 또 다른 의욕은 전작들보다 본격화된 세태(정치) 풍자이다. 그들은 절묘한 상황 설정(국회의원 교도소 순시)을 통해 좁은 교도소 안을 넓은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마음껏 관료주의의 허식을 비꼬고 정치권의 위선을 조롱한다. 줏대 있는 반골 ‘용문신’(강성진)은 관료적 형식주의에 희생되는 동료들을 위해 의연히 들고일어나 국회의원들을 통쾌하게 ‘재판’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감옥 안에 있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한바탕 한풀이일 수밖에 없다. 폭동을 일으킨 죄수들이 끝내 교도소 담장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처럼, 탈출했던 두 죄수가 끝내 그 담장 안으로 다시 넘어 들어와야 했던 것처럼, 감독과 작가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또는 넘어서지 않는다). 그 한계가 뭔가 미진하고 아쉬운 여운을 남긴다.

(왼쪽부터 차례로)♣ 혼자 가려던 무석은 사기꾼 재필의 하소연을 듣고 함게 탈옥한다. ♣ 땅굴에서 나온 무석은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처럼 두 팔을 벌려 환호한다.♣ 6년간 숟가락으로 땅굴을 팠던 무석은 밥을 퍼먹다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경순은 재필을 배신하고 결혼식을 올리려 하지만 재필의 탈옥으로 일이 꼬인다.

이 두 감독-작가의 전작에서 상황을 이끌어 갔던 것은 무엇보다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캐릭터들의 개성이었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네 주역은 다양한 개성으로 한데 어울려 신나는 무정부주의적 놀이마당을 만들어낸다. <신라의 달밤>에서 두 주역은 자신들의 뒤바뀐 운명(깡패가 된 모범생/ 체육선생이 된 깡패 학생)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성격적 개성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 그러나 <광복절특사>는 상황이 캐릭터들을 끌고 나간다. 어쩔 수 없이 그만한 대가와 희생이 따른다. 가진 것이라곤 몸밖에 없던 순진했던 ‘무데뽀’ 무석은 어느덧 ‘모범수방’의 방장 노릇을 할 만큼 강력해지며, 6년 동안 자신을 위장할 수 있을 만큼 영악해져 있다(물론 6년간 한 일이라고는 땅굴 파놓은 것밖에 없을 정도로 단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로지 잔머리 하나로 세상을 헤쳐온 ‘사기꾼’ 재필은 때로 자신을 잃어버리고 무석보다 더한 무데뽀가 된다(사실 재필 역을 연기했던 설경구의 모습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따라 ‘영호’와 ‘철중’ 그리고 심지어 ‘종두’의 모습까지 겹쳐진다. 그가 상황에 맞추어 연기를 잘해낼수록 그는 재필의 기본 개성에서 그만큼 멀어져가는 듯이 보인다). 말하자면 단순하고 무식한 무석의 캐릭터와 영악하고 야비한 재필의 캐릭터의 대립과 충돌이 자연스럽게 유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주역은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 온몸을 던져 액션을 취하고 최대한 목청을 높여보지만 이미 화살은 잘못 겨냥된 것이었다. 천혜의 선물이었던 ‘역설적 상황’은 한편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원죄’이기도 했던 셈이다.변성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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