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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정세가 영화의 소재로,<007 어나더데이>
2002-12-24

■ Story

북한에 침투한 제임스 본드는 무기 거래상으로 위장하여 문 대령을 상대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신분이 들통난다. 격투 중에 장군의 아들인 문 대령을 죽이게 된 본드는 북한 병사들에게 잡혀 14개월간 수감된다.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본드는 문 대령의 심복 자오를 뒤쫓는다. 본드는 자오와 비밀에 휩싸인 사업가 구스타프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태양열 무기 ‘이카루스’로 음모를 꾸미는 그들에 맞서 싸운다.

■ Review

아이 같은 이분법은 언제나 007 시리즈의 전략이었다. 나쁜 편과 착한 편, 남자와 여자, 귀족과 더 귀족, 강한 자와 더 강한 자.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상대를 바꿔가며 적을 지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 그들은 나쁜 편을 먹고, 제임스 본드는 착한 편을 먹는다. 상대가 바뀌면 장소(국가)도 바뀌고, 또는 그 상대의 음모가 크면 클수록 장소는 더욱 다양해진다. 그러면서 제임스 본드는 일종의 세계일주를 하며 이국적인 풍경들을 여행하고, 그 풍경에 걸맞은 본드 걸을 만나고 최첨단 장난감들을 동원해 정의를 놀이한다(사실 본드의 바람둥이 기질은 세계일주 제국주의와 거의 일치한다).

<007 어나더데이>에서도 본드 걸들은 유혹을 뿌리고 다니고, 차와 시계와 반지는 신기한 소품들이고, 쿠바의 해변과 아이슬란드의 설경은 장관을 이룬다. 때문에 지금까지 그래왔듯 팝콘 먹는 마음으로, 한편으론 환호하며 ‘오락’을 즐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지금 한국에서의 정치적인 이슈에 동승하고 있다. 소련이 적으로 지정되거나 중동이 음모의 장소가 되는 것을 오락으로 즐기던 마음은 사라지고 국내의 정치적 사안이 그동안 즐겨왔던 재미보다 먼저 앞선다. 영화는 여전히 시리즈의 규칙을 지키고 있는 셈이지만, 그러니까 007 제작진의 입장에서 보면 차례가 되어 한반도의 정세가 영화의 소재로 지정된 셈이지만, 그것을 보는 한국 관객의 관람태도는 뒤바뀔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장교를 악의 화신으로 등장시키고, DMZ를 쑥밭으로 만드는 것은, KGB를 혹은 중동을 그렇게 만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007 시리즈의 전략에 따라 다시 한번 바뀐 배경으로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문제를 삼아야 할 부분은 (만약 그렇게 하겠다면) 북한 장교가 악인으로 나온다는 점 등이 아닐 것이다. 영화는 특별히 정치적인 디테일들을 첨부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문 대령과 자오를 되도록 추상적인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다. 무조건 ‘나쁜 편’으로. 그러니 정말 문제인 것은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007 시리즈의 스펙터클 전략 자체일 것이다. 너무 짙어서 말하기조차 무색한, 영화 속 세계정복의 음모를 물리쳐내는 현실의 세계정복 논리 말이다. 그런 점들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재미의 선택은 자유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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