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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2001-05-08

시사실/휴머니스트

Story

졸부의 아들 마태오(안재모)는 친구 유글레나(강성진)와 아메바(박상면)를 차에 태운 채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하는 경찰관을 죽이게 된다. 그때 현장에 나타난 또다른 경찰관(안석환)은 마태오를 구속하는 대신 거래를 제안한다. 2억원을 마련해오면 눈감아주겠다는. 돈을 구할 길이 없는 마태오는 아버지(박영규)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자신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 뒤로 빠지고, 유글레나와 아메바가 아버지를 납치하면 돈을 구할 수 있다는 계산. 그러나 일이 꼬인다. 친구들은 엉뚱하게 마태오 계모의 정부를 납치한 뒤 그를 죽이고 만다. 마태오는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Review

태초에 사악함이 있었다. 악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저주를 잉태하고 저주는 재앙을 배출한다. 영화 <휴머니스트>에 따르면 악은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다. 악당은 아버지를 납치해 한몫 잡으려 들고, 악당의 동료는 일이 잘못되자 친구를 죽이려 든다. 물론 처음엔 별 문제가 없었다. 주일마다 미사에 참석하기만 하면 수표다발로 용돈을 주는 아버지에게 대단한 불만을 가질 이유가 어딨겠는가. 악당을 두렵게 만든 건 악질 경찰이다. 동료의 죽음을 흥정거리로 삼는 더러운 경찰관 때문에 악당은 불운과 자멸의 함정에 빠진다. 결국 악의 무리가 소탕되는 영화? 절대 아니다. 영화는 성당의 미사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등장인물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악이 번식하는 경로를 뒤쫓는 <휴머니스트>는 교회도, 가족도, 경찰도, 어린이도 타락해버린, 부패한 세상을 향해 침을 뱉는다. 실제로 영화 속 등장인물 중 거지가 내뱉는 가래섞인 침은 관객의 시선을 향해 똑바로 날아든다. 이 영화를 보려면 적어도 눈앞으로 돌진하는 거지의 침을 감내할 인내심이 필요하다.

<삼인조>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던 이무영 감독은 데뷔작 <휴머니스트>에서 휴머니즘적 가치에 대한 환멸을 드러낸다. “난 깔끔떠는 새끼들이 딱 질색이야. 거지 같은 새끼들”이라는 거지의 대사는 감독의 전언으로 들린다. 이 영화 역시 ‘깔끔떠는’ 영화가 아니다. <휴머니스트>는 엽기와 유머의 묘한 조합을 보여준다. 똥물을 바가지로 퍼먹고, 피칠갑을 클로즈업하고, 수녀의 치마 속에 손을 넣고 강간을 시도하는 엽기적 표현들이 상황의 아이러니를 부각시킨다. 등장인물들은 아픔을 이기기 위해 더러움을 참고, 성욕을 풀기 위해 살인을 지체한다. <휴머니스트>의 블랙 유머는 산울림의 고운 노래 <예쁜 맘 예쁜 꿈>을 어린이들의 잔인한 행동과 어우러지게 만든 장면에선 신선한 면도 있지만 대체로 불쾌하다. 카메라가 애정과 연민을 갖고 지켜보는 인물이 없는 영화에서 ‘도발과 전복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을까. 감독은 인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대신 구더기가 들끓는 썩은 다리에만 눈길을 준다. 잘라내야 할 환부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노라면 “마음이 예쁘면 꿈도 예쁘죠”라는 산울림의 노래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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