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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갖는 프랑스에 대한 열등감,<프렌치 아메리칸>
■ Story

이사벨(케이트 허드슨)은 둘째아이를 임신한 언니 록산(나오미 왓츠)을 돌보려고 파리에 도착하지만 정작 록산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만삭으로 이혼소송을 해야 할 판. 게다가 친정에서 가져온 그림이 고가의 걸작임이 밝혀지면서 재산분할을 두고 프랑스-미국의 양가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파리에 적응해가는 이사벨은 이는 아랑곳없이 유명인사이자 유부남인 록산의 시삼촌과 연애행각을 벌인다.

■ Review

<전망 좋은 방>을 만든 영화계의 명콤비,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제작자 이스마일 머천트의 장기는 시대극 혹은 소설 각색하기다. 일견 영국풍 ‘유산영화’ 제작자 이미지가 강한 이들에게 현대극, 그것도 로맨틱코미디라니 의아한 궁금증이 일지도 모른다. 물론, 머천트-아이보리라는 브랜드 파워를 실감했던 사람들에 한해서.

하지만 다행히(?) 일단 이 영화도 베스트셀러였던 다이앤 존슨의 소설 의 각색판이고 또 물론 로맨틱코미디도 아니다. 아마도 착시현상은 원제를 <프렌치 아메리칸>으로 번역하여 <프렌치 키스>의 이미지를 상기시키려는 홍보 전략 때문이거나 우아한 헬레나 본햄 카터가 아닌 귀여운 케이트 허드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그러고보면 파리를 배경으로, 불운한 ‘니콜 키드먼’인 나오미 왓츠, 그리고 대배우 글렌 클로스까지 가세한 라인업, 이혼하는 언니의 시댁 어른과 바람난 여동생 스토리라니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긴 하다.

그러나 영화는 기대보다 훨씬 느슨하고, 관객에게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의 키워드는 연기자들의 앙상블이라기보다 ‘파리’라는 도시 자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물론 파리에 대한 미국인의 오랜 매혹과 동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후 30년 만에 처음 촬영했다는 에펠탑은 물론, 18세기 귀족 거주지역인 제7구(區, arrondissement)의 고풍스런 파리도 록산의 시댁장면을 위해, 몽마르트르 언덕 일대도 이사벨과 밀애를 즐기는 에드가의 집이 있다는 핑계로 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다 파키스탄, 터키 이민자들의 거리인 벨빌까지 나오면 그 의도는 더 명백해진다.

시대의 공기까지 영화적으로 재현하는 데 특기가 있는 머천트-아이보리 사단의 심미적 안목은 물론 파리의 관광 포인트를 도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파리 유명 레스토랑의 화려한 음식 디스플레이, 스카프 매는 법, 인사법, 심지어 프랑스식 최음제 레시피까지 늘어놓으며 파리의 분위기-문화를 화면 안으로 가져오려 한다. 가히 종합 문화보고서, 영화로 쓰는 ‘론리 플래닛-파리’랄 수밖에. 그리고 미국인이 어떻고 프랑스인은 어떻다라는 식의 스테레오 타입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농담들을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이다. 영화의 코미디적 요소도 바로 이러한 양국의 문화적 격차에 기대고 있다.

그리고 그 코미디의 핵심엔 언제나 배움의 자세를 잊지 않는 ‘이상한 프랑스의 앨리스’ 케이트 허드슨이 좌충우돌하는 과정이 있다. 그녀가 양국의 매너가 얽히는 정글 사이로 1만8천달러짜리 빨간 켈리백을 들고 탐험하는 동안, 이혼의 위기로 자살까지 기도하는 언니의 이야기가 주변으로 밀리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애초부터 영화는 양국간의 문화전쟁을 한 가족의 이혼 송사를 통해 대리시키는, 교양과 예절의 <황산벌>이었으므로.

그러나 이 문화적 어드벤처에 우리가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일차적 문제는 교양과 매너에 대한 이들의 의식구조가 있을 리 만무한 우리에게 이 코미디가 머리로는 이해가 갈지언정 심금을 ‘웃기지’ 못한다는 데 있겠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을 사심없이 즐기기에는 이라크전을 정점으로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불러야 할 만큼 악화된 작금의 미국-프랑스 관계가 워낙 민감한 탓이다.

시간이라는 수직좌표의 드라마를 지역과 문화라는 수평좌표로 옮겨 적은 뒤 똑같은 수법과 세팅을 쓰면 현대극이 가능하리라고 보았던 게 틀림없는 제임스 아이보리는 이런 민감함도 그가 <하워즈 엔드>나 <남아있는 나날>에서 한 것처럼 모든 것을 개인과 시대의 충돌로 그려내고 개인의 손을 들어주면 비껴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간과하고 있는 것은 프랑스인들에게 좀처럼 개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문화 갈등이 개인(미국인 자매)과 상황의 충돌로 도식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라투르의 그림을 두고 두 가문이 세우는 대립각도 악습으로 핍박받는 개인(미국 자매)과 상황(프랑스 시댁)의 갈등으로 보는 게으른 이해에 도달한다. 이렇게 발생하는 미국 중심주의는 머천트-아이보리 사단의 결과물로서는 뜻밖이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프랑스에 대해서 미국인이 갖는 매혹과 열등감 양쪽에 소구하는 이상한 (그렇기 때문에 탁월한) 미국적 드라마가 된다. <프렌치 아메리칸>이 아니라 <‘프리덤’ 아메리칸>임을 강조하는.

:: 라투르의 그림 <성 우르술라와 일만천 처녀들>

이거 진품 맞아요?

나오미 왓츠가 “매너의 코미디”라고 지칭할 만큼 패션이나 관습과 같은 문화적인 소재들이 이야기의 얼개까지 좌우하는 이 영화에서 주연이 파리라면 조연은 다양한 소품들이다. 따라서 현대판 코스튬드라마라고 불러야 좋을 만큼 소품들에 들인 공이 각별한 편인데 그중에는 이사벨과 에드가의 관계를 상징하는 ‘켈리백’도 있지만 고가의 진품으로 판명돼 양가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라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그림 <성 우르술라와 일만천 처녀들>을 빼놓을 수 없다.

라투르는 바로크 시대 프랑스 화가로서 영화에 나온 이 그림처럼 촛불에 비친 특이한 표정의 성인(聖人)들을 주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라투르는 ‘성 우르술라’를 그린 적이 없었다는 것인데, 이 영화에 나온 그림은 물론 라투르의 스타일을 모사해 그린 모작(模作)이다. 정말 이 그림이 알려지지 않은 라투르의 진본이라면 영화에서처럼 시세가 고작(!) 400만달러 정도에 그치지도, 루브르박물관이 놓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정설이라고.

그림 속 성(聖) 우르술라는 여학생들과 교사들의 수호성인이며 5세기 브르타뉴 왕조의 기독교인 공주였다. 이교도인 잉글랜드의 청혼이 있자 터무니없는 조건을 들어 승낙했다고 전해진다. 상대국의 개종을 포함한 그 조건엔 각각 1천명의 숫처녀 시녀를 거느린 열명의 귀부인과 함께 결혼 전까지 3년 동안 여행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뜻밖에 잉글랜드는 그 모든 조건을 승낙했지만 불행히도 공주의 행렬은 훈족을 만나 몰살되고 만다. 영화 속 숨은 ‘걸작’의 소재는 바로 이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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