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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패러디로 반환의 현실을 돌파해 나가다, <색정남녀>

지난해 7월 <성월동화>의 홍보를 위해 방문했던 장국영에게 <색정남녀>의 개봉소감을 묻자 그는 단박에 ‘기쁘다’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이어, “색정이라는 제목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에로물은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렇다. <색정남녀>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결코 에로물이 아니다. 96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일찌감치 국내 개봉예정이었지만 심의문제로 오랫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

주인공 아성은 진지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감독이다. 그 고뇌의 초상은 멀리는 펠리니의 <8과 1/2>에서, 가까이는 홍콩 신세대 감독인 갈민휘의 <첫사랑>, 그리고 여균동의 <죽이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이미 익숙해진 것이지만 결코 낡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원래는 블랙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대로, 곳곳에 숨어 있는 풍자와 패러디도 천년을 넘겨 개봉한 영화의 가치를 보존하는 이유다.

첫 촬영분을 찍은 뒤 러쉬를 상영하는 자리에서 감제(監製, 할리우드영화의 총괄 프로듀서에 해당하는)는 한마디 했다. “니가 찍는 것은 3급 필름이야. 왕가위가 아니라 넌 왕정이란 말야.” 포르노를 온통 스텝 프린팅의 화면으로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했으니 핀잔을 들을 만도 하다. 하지만 아성은 중얼거린다. “나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찍고 싶다…” 그러나 아성은 감제의 손에 이끌려 흥행작들을 보러간다. 홍콩 최고 출세작인 <옥보단>류의 영화를. 특유의 풍차돌리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관객은 포복절도하고 아성은 꼬리를 내린다. 그러나 풍자의 끈은 늦춰지지 않는다. 고뇌하는 감독 아성만으로는 부족해서인지 감독은 영화에다 감독 하나를 자신의 이름을 달고 출연시킨다. 그리하여 영화 속 이동승 감독은 <바퀴없는 이름의 전차>(<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패러디한)라는 예술 영화로 흥행에 참패하고, 투신자살을 한다. 이것도 모자라서 ‘영화 흥행부진 이동승 감독 자살’이라는 제호의 신문이 찍혀나오고, 덕분에 영화는 대박 터진다. 아성은 감제에게 말한다. “나도 자살할까요.”

돈밖에 모르는 제작자, 그 제작자를 믿고 콧대높은 여배우, 스캔들에 시달리는 남자배우, 그리고 고뇌하는 감독과 그의 연인. <색정남녀>는 전형적인 등장인물들로 자칫 진부해지기 쉬운 이야기를 번뜩이는 재치와 연민으로 담아낸다. 그것은 대만과 홍콩 포르노 산업의 마돈나였던 서기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뒤섞이면서, 그녀를 둘러싼 영화산업의 현실을 재현하고 조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색정남녀>는 거울과도 같은 영화다. 이동승 감독은 이 거울의 현실을 소시민적인 감수성으로(다분히 감상주의적이기도 한) 돌파한다. 거리에서 강간 장면을 찍고, 연인과 헤어진 뒤, 아성은 어떤 식으로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가 비유한 축구경기처럼, '영화는 팀의 경기'라는 당위론은, 너무나 작은 목소리이지만 유일한 출구이자 희망이다. 이 영화가 홍콩반환의 해인 97년을 목전에 두고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동승과 동시대 감독이자 흥행 라이벌인 진가신은 같은 해에 <첨밀밀>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홍콩과 중국을 오가는 과거의 향수 어린 사랑이 있다. 그에 비해, <신불료정>에서 이미 이러한 화술을 선보였던 이동승은, 역으로 진가신의 주특기였던 풍자와 패러디로 반환의 현실을 돌파해나간다. 당대의 홍콩 이야기꾼들이 엇갈리는 이 지점은, 과거의 전통과 현실의 비판이라는 이분법 아래 잠식되어가는 홍콩 영화산업의 흥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색정남녀>는 뒤늦게 도착했지만, 여전히, 아시아영화의 현주소와 충무로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영화이자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감독 이동승

배우를 하다, 어느 날 문득 감독이 되었지

<색정남녀>에는 <신불료정>에서 만났던 유청운이 이동승 감독의 역을 대신하여 그 심정을 토로한다. “배우를 하다가 어느 날 감독이 되었지…” 그것은 서기와 마찬가지로 이동승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영화기획자인 아버지와 배우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에게 영화는 숙명이었다. 1975년에 배우 생활을 시작한 이후 대략 40여편에 이르는 작품의 주연과 조연을 맡았던 이동승은 1986년에 <전로정전>(86)으로 데뷔를 치른다. 홍콩 거리의 행려병자들을 다룬 이 영화는 너무나 현실고발적이어서 상영금지를 받고 바로 공개되지 못할 정도였다. 그를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린 것은 1993년작 <신불료정>이었다. 60년대의 <불료정>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음악가와 시한부 소녀와의 사랑이라는 다분히 신파적인 소재를 90년대의 감수성으로 새롭게 포장해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다. 1996년도에는 자전적 경향을 반영한 <열화전차>로 대표적인 홍콩 감독으로 주목받는다. 실제 카레이서이기도 했던 그는 상업적 감각과 홍콩 젊은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장르 속에 잘 배합했다. 이동승의 대표작들은 사실 여배우들의 대표작이 되기도 했는데, <신불료정>으로는 원영의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열화전차>에서는 유덕화의 파트너로 모델 출신인 양영기를 데뷔시켰다. 또한 <색정남녀>에서는 포르노 스타인 서기를 진지한 연기자로 변모시키기도 했다. 자신이 스캔들 메이커이기도 한 이동승은 장만옥과 오랜 염문설로 유명했고, 한때는 매염방과의 밀애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찌보면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이동승 감독은 그의 재능에 비해 국내에서는 크게 성공하거나 평가를 받진 못한 편이다. 할리우드로 간 UFO사 출신의 진가신과 더불어 상업적인 감각이 뛰어난 감독이기는 하지만 장르의 관습 속에 현실을 반영하는 그의 재주는 비상하다. 최근에는 <진심화>(1999)라는 멜로드라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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