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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영화의 오랜 흥행공식, <나인 야드>

옆집에 킬러가 이사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인 야드>는 할리우드영화의 오랜 흥행공식인, 한줄로 요약되는 컨셉을 갖고 있다. 잔잔한 수면 위로 파문을 일으키며 튕겨나가는 조약돌처럼 외부의 충격은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을 불러온다. 그리고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사연들이 순간순간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원제인 ‘The Whole Nine Yards’는 ‘엄청난 행운’을 일컫는 말인데, 그런 축복을 받자면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도입부에서 주인공 오즈의 가정을 만신창이로 설정한 것은 멋진 보상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치과의사 오즈는 시카고 출신이지만 아내를 따라 몬트리올에 눌러앉았다. 번듯한 직장과 아담한 집이 있지만 장인이 남긴 엄청난 빚에 눌려 허덕이는 오즈의 가정은 좀처럼 햇빛이 들지 않는다. 남편이 죽기만 바라는 아내, 장모와 함께 산다면 이 남자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여기서 살인청부업자 지미 튤립의 등장은 오즈의 피폐한 삶에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내의 강요에 못이겨 시카고에 간 오즈는 지미 튤립을 죽이려는 갱단과 함께 몬트리올로 돌아오는데 놀랍게도 모든 상황은 그가 시카고로 가기 전과 180도 달라져 있다. 아내는 남편을 죽이려 들고, 남편은 남의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걸며, 살인청부업자는 갱조직의 표적이 되고, 갱조직은 보스가 남긴 돈을 차지하기 위해 사분오열된 것이다. 역전된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은 난처한 입장이 되고, 엉뚱한 사건들 틈에 옷자락이 끼어 마지못해 끌려가는 사람들의 억울한 표정들이 포착된다.

<나인 야드>가 익살을 만드는 화학방정식은 이같은 뒤집기다. 환경이 바뀌면 멀쩡하던 사람이 바보가 되는데 예를 들어 미국에선 햄버거에 반드시 케첩을 넣지만 몬트리올에선 마요네즈를 집어넣는다. 주인공 오즈가 제발 햄버거에 마요네즈 넣지말라고 부탁하건만 막상 햄버거를 입에 넣으면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못해 마요네즈가 든 햄버거를 먹는 떨떠름한 표정이 갱조직의 싸움에 끼어든 오즈의 불쌍한 처지를 대변한다. 때로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치과의사 오즈가 “일을 할 때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할 때 살인청부업자 지미 튤립이 “나도 그래”하고 맞장구치는 순간 오즈의 겁먹은 표정이 클로즈업되는 식이다. 그래도 오즈가 사태를 잘 해결하리라 기대할 수 있는 건 애초에 이 남자가 처한 입장이 새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기 때문. 첫눈에 지미 튤립의 아내에게 반한 오즈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여자를 구하려고 애쓴다. 그것은 “친구의 아내를 범하는 녀석은 죽여 마땅하다”고 말하는 지미 튤립이 감동할 정도여서 약속된 해피엔딩을 어색하지 않게 한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엉뚱한 짓 잘하는 남자 챈들러로 나와 낯익은 매튜 페리가 이 왁자지껄한 소동극의 주인공 오즈를 맡았는데 흡사 박중훈을 연상시키는 표정연기를 보여준다. <나의 사촌 비니>에서 엄청난 수다쟁이 조 페시에게 딱 어울리는 배역을 맡겼던 감독 조너선 린은 익살스런 표정의 매튜 페리에게 비슷한 매력을 끌어낸다. <뉴욕타임스>는 매튜 페리의 이런 모습이 “브루스 윌리스가 <데이트 소동> 같은 초기 영화에서 맡았던, 잘하려고 하는데 번번이 실패하고, 그래서 호감을 갖게 하는 배역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고, <버라이어티>는 “12∼15년 전 톰 행크스가 맡았던 배역과 비교할 만하다”고 말했다. 스타의 힘에 의존하는 홍보전략 때문에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 영화처럼 오인될 가능성이 많지만 이 영화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그저 킬러의 무게감만 보여주고 <그린 마일>에 나온 거구의 흑인 마이클 클라크 던컨은 매튜 페리의 왜소함을 돋보이게 하는 밑그림에 머문다. <나인 야드>는 단적으로 매튜 페리의 영화인 셈. 미국에서 평단의 반응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버라이어티>가 이 영화의 상업적 매력을 높게 평가한 반면 <뉴욕타임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등은 이야기의 허술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대중에겐 매튜 페리의 매력이 강하게 작용했는지, 2월18일 개봉 첫주 흥행 1위를 차지했다.

감독 조너선 린

웃음가방을 든 감독

영국 출신 감독 조너선 린은 <나의 사촌 비니> <돈가방을 든 수녀> <말뚝상사 빌코> <마이클 J.폭스의 상속작전> <제이 제이> <트라이얼쇼> 등 고만고만한 코미디 영화들을 연출한 인물이다. 영화 연출자로서 능력을 높이 평가받는 감독은 아니지만 영국에서 만든 TV 코미디 시리즈가 좋은 반응을 얻어 할리우드로 건너간 경우. 영국 바스에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다 방향을 전환해 런던 웨스트 엔드에 있는 극장 오케스트라에서 배우 겸 음악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3년 제임스 코번, 리 그랜트 등이 출연한 영국영화 <인터넥시네 프로젝트>의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뛰어들었고 70년대 몇편의 소설을 내기도 했다.

작가로 이름을 얻은 그는 80년대 연극과 방송 분야에서 각광받았다. 연극무대에서는 코미디 <말 위의 세 사람>, 뮤지컬 <노래책> 등이 각종 연극상을 수상했고 77년부터 81년까지 케임브리지 극단의 미술감독으로 일하면서 20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조너선 린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BBC>에서 방영한 정치풍자 코미디 <예, 장관님>과 <예, 수상님> 시리즈. 미국 케이블TV 전파도 탄 이 작품은 미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책으로도 나와 런던 <선데이타임스>가 뽑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106주간 오른 기록을 갖고 있다. 1990년 <돈가방을 든 수녀>가 스위스 코미디영화제에서 수상했지만 조너선 린이 할리우드에서 주목받은 것은 무엇보다 1992년작 <나의 사촌 비니>. 조 페시의 코믹연기가 폭발하는 이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온 마리사 토메이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받았다. 그뒤 작품들이 <나의 사촌 비니>만큼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코미디 감독으로서 조너선 린의 경력은 무리없이 이어졌다. 직접 연기도 해봤고 연극연출을 오래 한 덕에 그는 코미디 배우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감독으로 손꼽히는데 <제이 제이>에서는 에디 머피, <말뚝상사 빌코>에서는 스티브 마틴, <트라이얼쇼>에서는 마이클 리처드 등을 기용했다. <마이클 J.폭스의 상속작전>에서는 카메오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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