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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마초적 세계관, <13번째 전사>
박은영 2000-01-25

<13번째 전사>는 피와 살점이 튀는 활극이지만, 서사극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실존인물 아메드 이븐 파들란의 모험담을 토대로, 마이클 크라이튼이 펴낸 소설 <시체 먹는 사람들>이 영화의 원전. 따라서 이야기는 북구인의 삶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아랍 시인 아메드의 순진한 시점에서 전개된다. 북구의 오지를 삶의 터전으로 나눈 바이킹의 선조들과 식인 부족들의 대결 구도 사이에서 그가 전사의 용태를 갖춰가는 과정엔, 서로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이뤄지는 교환수업의 의미가 보태진다. 아랍인은 북구인에게 글의 쓰임새와 일신교의 의미를, 북구인은 아랍인에게 자기방어의 능력을 일깨워 준다. 우정과 의리는 민족의 담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해묵은 주제와 함께.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강렬한 요소는 역사적인 맥락이나 배경도, 신의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아니다. 비장미와 역동감의 전투신이다. 안개 속에 펼쳐지는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의 장대한 숲과 벌판, 500여명의 기수가 동원됐다는 마지막 결투신의 스펙타클은 장중한 클래식 선율과 어우러져 굵직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감독과 원작자의 첫 번째 초이스였다는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시인에서 전사로 돌변하는 아랍인으로서 그럴싸한 연기변신을 선보였고, 그의 심복으로 등장하는 오마 샤리프의 모습도 반갑다.

존 맥티어넌 감독은 <다이하드>와 <붉은 10월> 이후 한동안 자신을 가두는 어떤 한계도 거부한다는 몸짓으로 일관했다. 허구와 현실을 뒤섞은 <라스트 액션 히어로>, 도시 전체로 이야기 마당을 넓힌 <다이하드3>, 새로운 장르의 시도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는 그러나,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다. 먼 길을 돌아 <13번째 전사>로 돌아온 그는 초심을 회복한 듯, 제한된 공간 속의 급박한 상황을 장쾌한 액션으로 풀어나가는, 고유의 장기를 다시 발휘하고 있다. 투박하지만 끈끈하다는 남자들만의 세상을 그려낸 전형적인 마초적 세계관 때문인지, 미지의 세계를 신비주의와 악마성으로 치장한 편협함 때문인지 뒷맛은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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