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조폭마누라
2001-09-25

■ Story

일명 가위권법으로 상대파를 소탕한 화려한 경력 덕에 조직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부두목 은진(신은경)은 어려서 헤어진 친언니(이응경)와 극적으로 상봉한다. 말기암 환자인 언니의 소원은 죽기 전에 은진을 시집보내는 것. 언니를 위해 결혼을 추진하던 은진 패거리는 ‘어리버리해서 뒤탈 없게 생긴’ 동사무소 직원 수일(박상면)을 결혼 상대자로 낙점하고, 급히 결혼식을 올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일은 홀로 신혼의 단꿈에 젖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은진의 주먹과 발길질과 욕설뿐이다. 투병중인 언니가 조카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은진은 이때부터 아기 갖기 작전에 돌입한다. 은진과 수일 사이에 야릇한 정이 싹틀 무렵, 수일은 은진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은진의 조직은 백상어파의 도전을 받는다.

■ Review

“꿇어!” ‘또 깡패영화냐’고 딴죽을 걸었다간, 바로 주먹이 날아올 것만 같다. 파이터 자세를 취하고 선 신은경의 품새에는 제법 카리스마가 넘친다. 웬만한 깍두기들도 제풀에 ‘형님!’ 하고 무릎 꿇게 생겼다. 두세달 전부터 극장가에 나붙기 시작한 <조폭 마누라>의 포스터는 그 자체로 ‘예고편’ 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러니 홍보물에서 굳이 “조폭‘의’ 마누라가 아니라 조폭‘인’ 마누랍니다” 하고 강조하지 않아도, 마누라의 정체성에 대한 혼선이 빚어질 것 같지는 않다.

<조폭 마누라>는 이처럼 <친구>와 <신라의 달밤>으로 불어닥친 깡패영화 제작 열풍 속에서 비교적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안고 있는 영화다. 조폭 두목이 여자다, 그리고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는 설정은 깡패영화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꽤 참신한 변주인 셈이다. <조폭 마누라>는 ‘한때’ 이러한 캐릭터와 시추에이션을 잘 살려 포복절도할 코미디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언니가 종용하는 대로 결혼을 ‘추진’하는 여두목의 결단이 황당하긴 하지만, 여하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해프닝을 따라가는 재미는 쏠쏠하다. 무식하지만 충성스런 부하들의 좌충우돌, 주방에서 그리고 침실에서 은진과 수일의 성역할이 전도된 상황이나, 끊임없는 동상이몽의 불협화음도 웃음을 자아내곤 한다.

그러나 은진의 부하가 동네 양아치들에게 황당한 죽음을 당하고, 은진의 패거리가 복수를 다지는 중반부 이후, 영화는 길을 잃기 시작한다. <친구>의 클라이맥스인 장동건의 비장한 최후를 패러디하고 있는 듯한 이 장면에서부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해지는 순간이 자주 출몰하는 것이다. 폭력이든 섹스든 슬랩스틱 코미디든 신파든 관객이 원하는 건 뭐든지 보여준다는 태세로, 다 풀어헤치고 달려들기 시작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제각기 너무 강해서 서로 잘 어우러지지 못한다. 한발 늦게 찾아온 깡패영화라서, 표현의 ‘강도’에 집착한 것이었을까.

기존의 깡패영화가 남성영화였다면, 여성이 이끄는 깡패영화는 여성영화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암흑가를 평정한 조직의 실세가 여성이라는 설정은, 표면적으로는 여성관객을 겨냥하고 있는 듯하지만, 영화는 그 정반대 방향으로 내달린다. 깔치로 통하는 은진의 캐릭터는 동생들에게 ‘누님’이 아닌 ‘형님’으로 불리며, 그녀 자신도 자기 안의 여성성을 의식적으로 비워낸 상태라, 자매애나 임신을 얘기하지 않을 때는, 남성, 그것도 마초에 가까워 보인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여성의 외로움이나 회한도 얼핏 비치지만, 이조차도 우스갯감이 된다. “너도 남자새끼니까 여자 밑에서 일하는 거, x 같겠지?” 은진이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물어도, 돌아오는 건 눈물겹게 충성을 맹세하는 동문서답뿐이다.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남편 수일의 캐릭터와 늘상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과시하는 세리의 캐릭터에 투영된 ‘여성성’도 거슬리는 대목.

<조폭 마누라>는 조진규 감독의 연출 데뷔작으로, 개그맨 서세원이 대표로 있는 서세원프로덕션이 처음으로 제작투자한 영화다. <좋은 세상 만들기>에서 맺은 인연으로 제작자와 주연배우가 된 서세원과 신은경 콤비는 이 영화로 ‘좋은 세상 만들기’에 일조할 수 있을까. ‘종합선물세트처럼 추석 때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지향점이 뚜렷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웃음의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게 아쉽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 <조폭 마누라>를 빛낸 조연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