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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야놀자
2001-11-06

시사실/달마야놀자

■ Story

라이벌 조직의 습격을 받은 조직폭력배 재규(박신양) 일당은 급히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그들 눈에 띈 것은 산 속 깊이 위치한 조그만 절. 재규, 불곰(박상면), 날치(강성진), 왕구라(김수로), 막내(홍경인) 등 조폭 5인을 맞은 절의 주지스님(김인문)은 1주일간 머물 것을 허락한다. 하지만 속세에서도 말썽만 일으키던 그들이 절에 들어갔다고 조용히 있을 리 없다. 청명스님(정진영)을 비롯한 스님들은 여기서 1주일 더 머물겠다는 재규 일당을 더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청명스님은 내기를 제안한다. 삼천배를 해서 이기는 쪽의 말에 따르자는. 게임은 스님들의 승리로 끝나지만 재규 일당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님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이었다는 이유있는 항변에 승부는 5판 3선승제로 이어진다. ■ Review

워낙 조폭열풍이 거센 때라 시류에 영합한 코미디라는 혐의를 벗기 힘들겠지만 <달마야 놀자>가 추구한 것은 <신라의 달밤>이나 <조폭 마누라>가 걸어온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조폭들이 절에 가서 벌이는 해프닝을 다루면서 <달마야 놀자>는 은연중에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소나티네>를 인용한다. 조직의 음모로 쫓기는 신세가 된 기타노의 패거리들이 오키나와 해변에서 동심에 푹 빠져든 것처럼 <달마야 놀자>의 조폭들도 절에 들어가 어린아이가 된다. 삼천배를 해도 깨달음을 얻을 리 만무한 조폭들은 스님들과 369게임을 하고 고스톱을 치면서 조금씩 눈과 어깨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 불공에 정진하는 스님들도 살아 있는 부처님은 아니어서 조폭들과 내기를 하다가 그만 속세의 일에 끼어든다. 그렇게 조폭과 스님의 대결은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으로 묘사되고 <달마야 놀자>가 택한 방향이 ‘조폭들의 성장영화’라는 점도 드러난다.

영화는 각각 조폭과 스님의 대표격인 재규와 청명스님을 두 축으로 태그 매치처럼 전개된다. 잠수시합을 하면서 “까짓 거 정 못 참겠으면 여기 있는 물 다 먹어버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해병대 680기 불곰 대 보기엔 어수룩하지만 해병대 654기 출신인 대봉스님, 손에서 칼을 놓지 않는 날치 대 도끼질이 예사롭지 않은 현각스님, 삼천배를 하면서 “이래뵈도 어려서부터 인사성 밝다고 동네에서 소문났던 놈입니다. 냅다 절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너스레를 떠는 왕구라 대 2년째 묵언수행중인 명천스님, 아직 어린 티가 나는 막내 대 동자승 등 조폭과 스님은 철저히 일대일 대응관계로 이뤄져 있다. 상반된 캐릭터가 충돌하며 일으키는 유머의 합주를 메들리풍으로 들려주는 식인데 그게 단순히 실없는 농담 같지는 않다.

왕구라가 절의 조직표를 그려놓고 이곳의 오야붕은 누구이고 요주의 인물은 누구라고 설명하는 도입부에서 드러나듯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조직에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조폭들의 난동을 참다 못한 청명스님이 폭력으로 그들을 제압할 때, 묵언수행을 하던 명천스님이 369게임하다 틀린 사람을 지적하려고 묵계를 깰 때, 대봉스님이 해병대 선배라는 사실에 기가 죽은 불곰을 볼 때 속세와 산사의 구분은 사라진다. 영화는 끝내 스님들의 과거에 대해 입을 다물지만 은근슬쩍 그들도 예전에 한가닥 했을지 모른다고 상상하게 만든다. ‘색즉시공 공즉시색’까지는 아니라도 이쯤 되면 사찰이 조폭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주지스님의 태도에 마음이 기운다. 조폭을 데리고 산사에 들어간 감독의 시선이 머무는 곳도 이 지점이다.

이처럼 <달마야 놀자>는 자극적이지만 몸에 좋지 않은 조미료는 적게 쓰고 극의 짜임새에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맛에 비중을 둔 영화이다.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하는 컨셉트 무비로는 보기 드문 미덕이지만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고 보기엔 아쉬운 대목들이 있다. 무엇보다 10명이 넘는 등장인물에게 고루 시선을 주는 동안에도 인물 내면의 풍경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입적하기 전 주지스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재규의 표정만으로, 비구니인 연화스님을 바라보는 날치의 눈길만으로 그들의 마음에 일었을 파문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깨달음의 경지가 되어야 할 마지막 액션 시퀀스가 조폭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남성들의 의리를 강조하는 대목으로 보이는 것도 엉뚱한 오해는 아니다. 조폭들의 성장영화 <달마야 놀자>가 자라날 싹을 틔우고 멈춘 곳인 셈이다.

이 영화가 데뷔작인 박철관 감독은 줄줄이 포복절도할 코미디를 쏟아내진 않지만 강요하는 웃음이 아닌 영화적 유머가 어떤 건지 안다. 묵계를 깨고 수다맨이 되는 명천스님이나 몰래 군것질하는 주지스님을 바라볼 때 입가에 저절로 새겨지는 당신의 미소는 <달마야 놀자>가 짓고 있는 표정이다. 그 천진한 얼굴이 드라마가 매듭짓지 못한 여백을 짐짓 지나치고 싶게 만든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개봉작> 달마야 놀자

▶ <달마야 놀자>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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