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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러브
2001-11-06

시사실/시크릿 러브

■ Story

청각 장애인 안토니아 수녀(에마뉘엘 라보리)는 세상사에 대해서 거침없이 당당하고 호기심도 많다. 안토니아가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맡게 되면서부터 수녀원에 딸려 있는 무숙자 수용시설의 음식에 대한 평판도 좋아진다. 어느날 불법 체류자인 미카스(라스 오테르스테드)가 이곳에 와서 하룻밤의 숙박을 청하느라 쩔쩔매는데, 미카스 역시 청각 장애라서 안토니아의 눈길을 끌게 된다. 스위스사람인 안토니아와 리투아니아 출신의 미카스가 나란히 거리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연극을 관람하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바로 수화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Review

개념의 위력은 참 대단하다. 청신경에 이상이 있어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청각 ‘장애’라고 개념지은 ‘정상’인들은, 이들을 타인과 소통하는 데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단정하고 급기야는 그 내면의 영혼이 제대로 된 청신경을 가진 사람과 똑같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다. 안토니아의 검고 깊은 눈동자, 앙다문 듯 일자로 닫혀 있다가 환하게 열리곤 하는 입술, 예민하게 각이 진 얼굴 윤곽이 주는 고집스럽고 총명한 느낌, 풍부한 얼굴 표정과 함께 작용하는 아름다운 손의 언어가 상기시켜주는 것이 바로 이런 깨달음이다.

거리의 일상적인 소음 같은 것들을 배경으로 안토니아와 미카스가 나누는 손짓 언어는 불현듯 비언어 예술 같은 느낌을 주는가 하면, 한글 자막에 힘입어 또 하나의 외국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에마뉘엘 라보리와 라스 오테르스테드는 각각 프랑스와 스웨덴 출신의 청각 장애인들로, 듣지 못하는 특이한 연기자들이 아니라 그저 뛰어난 남녀 배우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하다.

드물게 만나는 스위스영화인 <시크릿 러브>는 세계 최고의 평화와 부의 이면을 살짝 들추어 보인다. 리투아니아에서 서커스를 했던 미카스의 아름다운 손놀림은 이곳 스위스에 와서 소매치기로밖에 쓰이지 못한다. 동유럽 난민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이도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어떤 사람은 비행기에 실려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지고 또 어떤 사람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정치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장애나 조건에 머무르기를 거부했던 한 여성이 수녀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데에 용감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던 당당한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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