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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스 페로스
2001-11-13

시사실/아모레스페로스

■ Story

‘옥타비오와 수잔나’. 옥타비오는 형수인 수잔나를, 결혼하기 전부터 사랑했다. 옥타비오가 보기에, 낮에는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가끔씩 강도로 변하는 형 라미로는 수잔나를 폭력적으로 대한다. 옥타비오는 함께 도망치자고 수잔나를 유혹한다. 마침 옥타비오의 애견 코피가 시비가 붙은 투견을 물어죽이자, 투견장에서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코피는 연일 승리를 거두고 옥타비오는 번 돈을 모두 수잔나에게 갖다바친다. 그러나 수잔나와 형은 옥타비오의 돈을 몽땅 갖고 도망친다.

‘다니엘과 발레리아’. 다니엘은 가정을 버리고 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패션모델 발레리아와 동거에 들어간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보고 기뻐하던 발레리아는 그러나, 채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휠체어를 탄 채 아파트로 돌아온 발레리아. 다니엘이 직장에 나간 사이 애견인 리치와 노는 것이 발레리아의 유일한 낙이다. 어느날 마루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간 리치는 끙끙거리기만 할 뿐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도 리치는 나오지 않고, 다니엘과 발레리아는 다투기 시작한다.

‘치보와 마루’. 사파티스타였던 치보는 감옥에서 20년을 지내고 나왔다. 그의 딸 마루는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고, 치보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거리에서 주운 개들과 기거하며, 가끔씩 청부살인을 하며 연명한다. 치보는 우연히 상처 입은 옥타비오의 개 코피를 데려와서 치료를 해준다. 살인할 남자를 미행하려 나갔다 온 치보는, 가족처럼 아끼던 개들을 코피가 모두 물어죽인 것을 발견한다. 망연자실한 치보는 코피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 Review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아모레스 페로스>는 ‘개’에 얽힌 세 가지 이야기가 흘러간다. 투견으로 돈을 벌고, 마룻바닥에서 헤매는 강아지 때문에 괴로워하고, 죽어가는 개를 살려준다. 각각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사정과 저마다의 사랑과 분노로 흘러가지만, 하나의 분명한 교차점이 있다. 깡패들에게 쫓기던 옥타비오가 과속을 하다가 부딪친 다른 차 안에는 발레리아가 있었다. 이 사고로 발레리아는 한쪽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 모델로서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는다. 치보는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옥타비오를 차 안에서 끄집어낸다. 그뒤 총에 맞은 코피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간다. 이 사고는 옥바티오에게는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는 결말이지만, 발레리아와 치보에게는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버리는 거대한 전환점이 된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그들은 과거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옥타비오는 애견 코피에게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 재능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해결하려 한다. 그는 돈을 버는 데는 성공하지만, 수잔나에게 배신을 당한다. 그 대가로 코피는 죽어간다. <아모레스 페로스>에서 개는 인간의 타락과 동물적인 본성을 일깨우고, 또 비판하는 은유로 사용된다. 인간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개는 그러나, 한없이 천진무구하다. 코피가 다른 개들을 모두 죽였음을 안 치보는 코피에게 총을 겨눈다. 코피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순간, 치보를 올려다보는 코피의 눈은 왜 그렇게 선하고 맑은 것일까. 다른 개들을 죽이도록, 주인에게 훈련받은 개. 그의 잔인함은, 결코 코피 자신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을 위해 다른 개들을 죽여온 것처럼, 치보에게 생명을 구원받은 뒤 그가 보답할 유일한 길은 그것이었다.

이냐리투 감독은 “<아모레스 페로스>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신성함을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동물적 본능에 몸을 맡긴다”고 말한다. 그들은 개 같은 사랑만이 아니라, 개 같은 삶을 기꺼이 원한다. 치보가 마지막으로 맡은 청부는, 이복동생의 살인이었다. 카인과 아벨처럼, 형은 동생의 죽음을 원했다. 코피는 주인을 위해 싸우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의 목을 물어듣는다. 한때 가족을 등지고 세상의 평화와 평등을 위해 헌신했던 치보는 이제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누군가를 죽이라는 명령에만 충실하게, 코피처럼 살고 있었다. 주인이 던져주는 청부살인을 하며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치보는 동족을 죽인, 선량한 코피의 눈을 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비쳐본다.

코피에게 겨눈 총을 거둔 뒤, 치보는 새로운 삶을 찾아간다. 마루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검은 땅을 걸어서. <아모레스 페로스>의 마지막은 <파리 텍사스>와 겹친다. 아내에게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리고, 아들을 안겨주고, 여전히 세상에는 사랑이 존재함을 알려주고 떠나가는 한 남자. 치보는 사랑이 존재했음을, 아버지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고, 돌아오기 위해 떠나간다.

복잡한 이야기가 2시간이 훨씬 넘게 진행되는 <아모레스 페로스>는, 세개의 이야기를 다른 형식으로 전달한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빠르게 진행되는 ‘옥타비오와 수잔나’는 시나리오 작가 아리아가의 “인물들이 모순적이고, 역설적이면서, 열정적인 사람을 살기 원하고 또 거기에 따른 대가-죽음, 신체불구, 징역살이, 무관심 등을 기꺼이 감수하기를 원했다”는 말처럼, ‘인류학의 실험장’이라는 멕시코시티의 매혹적인 지옥도를 현란하게 보여준다. 반면 ‘다니엘과 발레리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처한 연인들의 균열이 이는 과정을, 세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대단원을 내리는 ‘치보와 마루’는 의미심장한 대신 난삽하게 진행되어, 전반부의 밭은 리듬이 지리멸렬해진 느낌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위아래로 미친 듯이 움직이는 듯한 그런 흥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아모레스 페로스>는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개’는 <아모레스 페로스>에서 인간의 친구이자, 스승으로 나온다. 아무 말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코피의 그 무구한 눈동자가 하루 종일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아모레스 페로스

▶ <아모레스 페로스> 제작진과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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