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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드라이브
2001-11-27

시사실/멀홀랜드드라이브

■ Story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달리는 차에 타고 있던 리타(로라 해링)는 교통사고를 당하지만 겨우 살아난다. 몽롱한 상태에서 LA 거리를 걸어가던 리타는 한 빌라의 정원에서 잠이 든다. 배우가 되기 위해 LA로 온 베티(나오미 왓츠)는 장기간 출장을 떠난 숙모의 집으로 향한다. 숙모의 집에 들어간 베티는 몰래 숨어든 리타를 만난다. 그러나 리타는 모든 기억을 잃었고, 유일하게 다이안이라는 이름만을 떠올린다. 베티는 아담 케셔가 연출하는 영화의 오디션도 포기하고, 리타와 함께 다이안을 찾아간다. 아담 케셔(저스틴 테럭스)는 캐스티글리아니 형제에게 신작의 여주인공 역으로 카밀라 로즈라는 여배우를 기용하라고 압력을 받는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온 아담은 모든 일을 팽개치고 집으로 간다. 그러나 아내는 낯선 남자와 함께 있었고, 그를 쫓아낸다. 호텔에 들어간 아담은 자신의 모든 신용카드가 정지되었고, 파산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을 찾는다는 ‘카우보이’를 만나러 간 아담은, 오디션에서 카밀라 로즈를 만나면 ‘바로 이 여자야’라는 말만 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 Review 대체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한결같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 빚어내는 악몽들. <로스트 하이웨이>도 그렇고,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장식한 <광란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린치는 우리가 외면하고픈 악몽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창조하여, 극단적인 경험으로 관객을 이끌어간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달리다보면 영화가 아니라, 내가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현실인지, 누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인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이상한 세계가 내 안으로 스며든다. <스트레이트 스토리>의 ‘스트레이트’한 세계를 거친 데이비드 린치는, 편안한 고향인 ‘뫼비우스’의 세계로 돌아왔다. <블루 벨벳> <트윈 픽스> <로스트 하이웨이> 등에서 익숙했던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방, 요염하게 노래하는 여인,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거느리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애초 에서 TV프로그램으로 기획했던 작품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회사인 픽쳐 팩토리는 이매진, 터치스톤과 합작하여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는 모호한 결말과 폭력성 등을 이유로 방영을 포기했고, 프랑스의 카날 플러스가 700만달러에 판권을 사들였다. 카날 플러스는 추가제작비를 지원하여 장편 극영화를 완성했고,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되어 감독상을 받았다. “산타모니카로 향하는 도로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바라보는 할리우드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에 반짝거리는 도시는 마치 몽롱한 꿈과 같은 희열을 느끼게 한다. 나는 사람들이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질주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 미스터리로 가득한 도로에서 직감을 떠올리기 바란다. 이 도로는 기계문명의 산물이지만 명료히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데이비드 린치의 말처럼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미스터리와 직감으로 가득하다. 베티는 리타를 만나고, 리타의 기억을 찾는 모험에 동참한다. 그런데 ‘열쇠’를 찾는 순간, 모든 것이 뒤틀린다. 베티는 카밀라를 사랑하는 다이안이었고, 리타는 아담과 사랑에 빠지는 카밀라였다. 아담은 카밀라를 주인공으로 강요당하는 힘없는 감독이 아니라, 주연 여배우와 달콤한 사랑에 빠지는 행복한 남자다. 리타가 잃어버린 기억은 전혀 다른 종류의 세계였다. 그곳에서 다이안은 질투를 못 이겨 살인을 청부하고, 카밀라는 서늘하게 미소지으며 사람들을 농락한다. 현재의 인물들은 과거의 인물들과 동일하지 않고, 사건과 인과관계의 연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시간이 뒤집힌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복잡한 함정이나 음모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이 비틀리고, 겹쳐지고, 희미해졌을 뿐이다. “나의 영화는 살아가면서 언어로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비논리적인, 혹은 추상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성이 아닌 직감에 의해 받아들이면 말이다.”

리타가 사고를 당한 뒤, 댄과 허브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윙키스라는 음식점에서 만난 댄은, 이곳에서 그들이 만나는 꿈을 두번이나 꾸었다고 말한다. 소름끼치는 꿈 이야기를 하던 댄은, 갑자기 경악한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꿈에서 본 광경과 똑같은 것이다. 꿈과 현실이 동일함을 확인해가던 댄은, 꿈의 결말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에피소드는 난데없지만,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기 위해 감독이 던지는 코멘트 같은 것이다. 클럽 실렌시오에서 사회자가 던져주는 ‘밴드는 없다, 오케스트라도 없다’는 말처럼,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지극히 정교한 ‘필연적 우연성’으로 만들어진 악몽이다. 이것은 꿈입니다, 이것은 영화입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이 상반된 모든 것이, 하나의 이미지로 승화되어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나타난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단지 보는 것만으로, 빨려들어가 버린다. 증명이나 논리를 잊어버리고, 그가 선사하는 모든 것을 그냥 느끼기만 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현실의 길 혹은 문인 것이다. ‘데이비드 린치’는 여전히 악몽의 연금술사로 위명을 떨치고 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배우들

몽롱한 욕망 속, 누가 누구?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면서 인과를 따지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베티가 LA로 와서 처음 만난 빌라의 관리인 코코는, 나중에 아담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아담의 오디션장에 왔던 금발의 카밀라 로즈는 나중에 아담의 파티에서 리타에게 가벼운 키스를 하고 돌아간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하지만 그런 질문은 무의미하다. 모든 기억은, 모든 꿈은, 모든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배우들의 연기처럼, 그 순간이 지나면 날아가버리는 것이니까.

순박한 베티에서, 욕정에 몸부림치고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다이안으로 변신하는 나오미 왓츠는 68년 영국에서 태어나, 14살에 호주로 옮겨와서 연기수업을 시작했다. <탱크 걸>에 출연했지만, 이후 <유니콘 킬러> <퍼슨 언도운> <와이번 미스테리> 등 주로 TV를 전전했다. 니콜 키드먼처럼 막강한 배경이 있거나, 빼어난 미모도 아닌 나오미 왓츠의 할리우드 진출은 쉽지 않았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직접 제작하고, 출연한 단편영화 <앨리 파커>는 호주의 무명 여배우가 할리우드에 와서 벌이는 악전고투를 담으며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다. <앨리 파커>는 선댄스영화제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았고, 현재 장편영화로 버전업할 게획이다. 내년에는 <링>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에 출연할 예정.

리타와 카밀라를 연기하는 멕시코 출신의 로라 엘레나 해링은 애덤 샌들러가 주연한 <리틀 닉키>, 게리 마셜 감독의 <에덴으로 가는 비상구> 등에 출연했다. TV드라마로는 <선셋 비치> <엘리안 곤잘레스 스토리> <프레이져> <블랙 스콜피온> 등이 있다. 데이비드 린치가 선호하는 검은 머리의 요염한 여인 역에 썩 어울리는 로라 해링은 내년 덴젤 워싱턴, 앤 헤이시와 함께 닉 카사베츠 감독의 <존 큐>에 출연한다.

아담 케셔 역의 저스틴 테럭스는 워싱턴 출신으로 주로 뉴욕의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쌓았고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과 공연한 <쇼핑 앤드 퍼킹>이 대표작이다. 영화 데뷔작은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 <로미와 미셸> <아메리칸 사이코> <브로큰 하츠 클럽> <주랜더> 등에 출연했고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있다. <디스트릭트> <섹스 앤 시티> <스핀 시티> 등 TV시리즈에도 얼굴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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