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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뷰티풀
2001-12-03

크레이지/뷰티풀

■ Story

어머니가 자살한 뒤 중심을 잃은 상류 가정의 반항아 니콜(커스틴 던스트)은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일하던 중, 2시간씩 버스로 통학하며 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가난하고 성실한 멕시코계 동급생 카를로스(제이 헤르난데즈)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니콜과 어울리며 생활의 리듬을 잃은 카를로스는 니콜의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의 권고로 니콜로부터 한발 물러서고, 니콜은 비행청소년 교육기관으로 전학하게 된다.

■ Review 두팔에 안긴 소녀를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소년이 말한다. “너는 미쳤어.” 여자아이가 흡족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너는 아름다워.” <크레이지/뷰티풀>은 로맨스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수수한 여자-반항적인 남자’, 청춘영화가 즐겨 캐스팅하는 ‘도발하는 소년과 매혹된 소녀’ 구도를 비켜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열일곱살의 어린 연인들은 사랑이라는 말의 중량감을 정확히 이해한다. 처음 사랑을 고백하는 니콜의 음성은 긴장으로 뻣뻣하다. 고백을 접한 카를로스는 답을 서두르는 대신 가만히 생각에 빠진다. 상극으로 보였던 두 사람은 상대의 눈을 통해 자아와 세계를 다시 보는 사랑의 다음 장으로 이행한다. 중간고사 도중 교실을 나온 카를로스는 니콜과 함께하기 위해 손때묻은 인생계획표를 찢어버린다. 한편 니콜은 도피행의 첫날 밤 그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그러려면 언제까지나 도망칠 수는 없다고 되뇐다.

‘LA판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라는 부제가 어울릴 만큼, <크레이지/뷰티풀>이 보여주는 계급과 인종, 가족관계의 배치는 교과서적이다. 기승전결의 분기점마다 새겨진 장르 관습과 동화를 방불케 하는 해피엔딩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크레이지/뷰티풀>은 관객이 인물에 부착된 사회적 코드를 인지하기 전에, 니콜과 카를로스의 퍼스낼리티와 그것이 빚어내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먼저 열중하게 만듦으로써 덫을 피해간다. 보는 이의 마음을 사뭇 설레게 하는 재능과 잠재력을 입증한 두 주연 커스틴 던스트와 제이 헤르난데즈의 대사는 말수가 적고 어눌하지만 소박한 시처럼 감정의 순간적 흐름을 드러낸다. <크레이지/뷰티풀>이 보존한 생기와 매력은, 한 영화를 망쳐놓는 일이 장르적 공식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영화 <크레이지/뷰티풀>은 90년대 후반 이후 쏟아진 할리우드 청춘영화 가운데 <그들만의 계절>과 나란히 꼽을 만한 즐거운 발견이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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