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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드 섹스
2001-03-09

이런 대사를 쓰는 감독이 있다 하자. “오래 산 부부들의 ‘사랑해’라는 말은 ‘치즈 샌드위치’라는 말과 차이가 없지.” 그리곤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며 살짝 고백한다. “에이미, 난 널 치즈 샌드위치 해.” 재치있는 대사의 행간에 상큼한 연애의 방점을 찍고 여기에 끈적거리지 않는 섹스라는 소스를 친다는 점에서, <러브 앤드 섹스>는 여성관객 앞에 내놓는 저칼로리식 샐러드처럼 보인다. 산뜻하고 톡톡 튀는 근심걱정 없는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에 다시 여류감독이 나타난 것이다. <러브 앤드 섹스>의 감독 발레리 브레이먼은 남과 여의 차이에 민감지수 100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노라 에프론낸시 마이어스의 계보를 잇는 신예감독.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랑과 섹스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영화는 여주인공 팜케 잰슨의 내레이션을 통해 여성의 주체적인 시선으로 섹스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 나가려 한다. 사랑에 대해서뿐 아니라 자신이 관계를 맺은 13명의 남자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기억하는 잰슨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진하게 헤어진 여자 베스트 파이브’를 뽑는 존 쿠색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도 있다. <러브 앤 섹스>는 그렇게 신세대적이고 가볍게 튄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신화화한 스타가 아닌 팜케 잰슨과 존 파브로 같은 뻐드렁 키의 여배우와 큰 바위 얼굴의 남자배우를 써서, 우리의 일반화한 연애의 어떤 측면을 담으려는 욕심을 부린다. 그러나 완벽한 남자는 없다는 교훈과 서로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남과 여의 권력다툼의 부질없음은 빠르게 흘러가는 13명의 남자들 속에서 맥없이 소진되고, 그러자면 해피엔드는 손쉽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노련한 노라 에프론과 차별점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 대체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매력을 반감시키면서까지 주장할 ‘니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라는 연애공식이 뭐가 있을까?(이 점에서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감독이 한수 위인 듯). 그러니까 여배우들이 아이도 낳아보고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연기가 늘 듯, 아무래도 이 아가씨 발레리 브레이먼에게 필요한 것은 훈장처럼 매어달릴, 여자로서 살아내는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나이테는 아닌지. 사랑은 짧고 섹스는 길다고?? 쉽게 넘기고 덮을 수 있는 책은 쉽게 책장의 한쪽에 박혀버릴 수 있다는 것. 광택과 피상성으로 반들반들한 발레리 브레이먼 감독은 아직 이 점을 모르는 것 같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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