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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나
2001-03-14

<시네마 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말레나>에서 자신이 역시 성장영화쪽에 강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네마 천국>의 토토가 영화를 통해 세상과 사랑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것처럼 <말레나>의 레나토는 한 여인의 존재로 인해 부쩍 자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말레나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왕성하게 피어나는 레나토의 육체와 정신에 햇빛과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여신이다. 그는 머릿속에서 그녀의 옷을 입히고 벗기기를 반복하며 침대 스프링이 떨어져나가라 수음을 하기도 하고, 결국 부치지도 못할 연서를 수없이 쓰고 구겨가며 감성의 푸른 잎을 피우게 된다. 세상을 좀더 빨리, 넓게 볼 수 있게 하는 자전거나 성인 세계에 입장할 수 있는 통행증 같은 긴 바지처럼, 말레나는 레나토에겐 어른들의 세계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인 셈이다. 토르나토레는 <시네마 천국> 때와 마찬가지로 이같은 이야기를 질펀하고 왁자지껄한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분위기 속에 몰아넣고 때로는 흥겹고 때로는 감상적으로 끌고 간다. 말레나를 바라보며 헐떡거리는 중년의 남성들이나 그녀를 ‘여성의 공적 1호’로 몰아붙이는 아낙네들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묘사되며, 다소 과장된 상황 설정도 이야기를 무난하게 풀어나가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말레나 역을 맡은 모니카 벨루치를 빼놓는다면 이 영화에 관해서 아무 얘기도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 초반 마을 사람들이 파시스트의 상징인 검은 옷을 입은 채 ‘무솔리니 만세’를 외치고 있을 때, 말레나는 눈부시게 하얀 색 드레스를 입고 또각또각 광장을 향해 걸어온다. 이때부터 영화는 마술에 걸린 듯 그녀의 아름다움 속으로 빠져든다. 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핀업 스타의 매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한데 이상한 점은 벨루치가 등장하기만 하면 잘 흘러가던 이야기는 갑자기 뻑뻑해지고 시종 낭만적이었던 시선도 게슴츠레해진다. 혹시 벨루치는 토르나토레 감독의 마음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던 것일까.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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