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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ABC 아프리카
2002-02-26

시사실/ABC아프리카

■ Story

2000년 3월, 키아로스타미는 우간다 땅에 발을 내디딘다. 고아문제가 심각한 이곳에서 그는 고통 앞에 선 아이들을 만나는 여행을 하며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 Review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영화감독에게 어린이는 남다른 중요성을 갖는 존재들이다. 키아로스타미는 1969년, 이란의 아동·청소년 지능개발기구 안에 영화 부서를 신설하는 데 일조했고 바로 그곳을 기반으로 첫 단편을 만들었으니 그의 영화 경력부터가 어린이와의 관계 속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또 우리는 기억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에서 보여준 여리고 맑은 눈동자에 대한 키아로스타미의 공감 어린 시선과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에서 어린이의 행방을 쫓던 그의 염려 섞인 발걸음을. 그러고보면 키아로스타미가 고아문제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모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또 그에 응답한 것은 거의 필연적인 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는 키아로스타미의 사무실에 온 팩스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우간다 고아구제여성단체(UWESO)에서 보낸 이 팩스는 불안한 내정과 심각한 에이즈 문제로 우간다에는 160만명 이상의 부모 잃은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으니 이런 현실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환기할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요청을 받은 키아로스타미가 두대의 디지털 캠코더를 들고 우간다로 달려가서 찍어온 것이 라는 다큐멘터리이다.

당연히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우간다란 먼 나라의 비극적인 현실과 대면하게 된다. 이를테면 천 같은 것으로 둘둘 말려 있는 어떤 아이의 시체가 마분지 상자로 대충 만들어진 엉성한 관 속에 눕혀지고는 자전거에 실려 가는 장면은 보는 사람의 가슴에 허구를 볼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비극적 울림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건 영화의 일부일 뿐 전체적으로 봤을 때 키아로스타미가 강조하는 것은 현실의 곤란함이라든가 참담함보다는 곤경에 처해 있음에도 상실되지 않는 삶의 약동감이다. 키아로스타미의 카메라 앞에 선 우간다의 고아들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어깨를 늘어뜨린 아이들이 아니라 여느 세계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카메라에 대한 건강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기는 그런 아이들이다.

영화 속에는 박수를 치며 노래하던 아이들 가운데서 손뼉을 높이 들어 같이 박수를 치는 키아로스타미가 보인다. 하지만 우간다란 낯선 땅에서 분명 그는 한 사람의 이방인일 뿐이며 그도 그 점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사회문제를 다룬 여느 다큐멘터리와 달리 자기가 관찰한 것을 가지고 무리해서 설명하고 분석하려는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이제 그는, 그리고 우리는 우간다의 현실에 대해 겨우 ABC만을 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더 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antihong@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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