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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느 별에서 왔니
2001-03-14

지구 여성 학습시간. 최첨단 홀로그램으로 여성의 신체 모형이 뜬다. “성감대는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구두와 향수를 칭찬하고, 얘기를 들을 때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이, 여성을 유혹하는 키포인트. 지구를 정복하려면 먼저 종족을 번식시켜야 한다고 결론지은 외계인들은 열심히 ‘지구 여자 공략법’을 배운다. 물론 실전이 이론 같지는 않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는 이렇게 외계 남자가 좌충우돌 ‘왓 위민 원트’의 허와 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SF코미디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는 기존 SF의 ‘폼’을 조롱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지구보다 1000년이나 앞선 문명을 자랑하는 행성의 지도자가 비행기 화장실로 출몰하고, 앤더슨에게 “에 나오면 곤란하다”고 이르며 보안 유지를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복제로 번식하느라 퇴화한 성기 대신 강력한 인공 성기를 장착한 앤더슨은 중요한 순간마다 ‘매미 소리’ 같은 기계음을 내는 물건 때문에 곤혹스러워한다. 재미있는 건, 영화 자체가 성기가 퇴화하고 감정이 사라진, 무표정한 극중 외계인들을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외계 남자 앤더슨과 지구 여자 수잔의 로맨스, 사랑의 교감을 나누는 순간마저 별다른 전류가 느껴지지 않는다. 에로틱하거나 로맨틱한 효과를 의도한 게 아니었다면, 황당하고 저급한 유머로 승부할 생각이었다면, 초지일관의 뚝심을 보였어야 하는데, 외계 남자가 눈물을 흘리고 지도자에게 반발하는 다소 ‘무거운’ 반전은 앞선 분위기와 리듬까지 흔들어놓는다. SF와 코미디와 로맨틱드라마의 요소들, 주제 전달에 대한 강박이 결국 서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졸업> <워킹 걸>의 마이크 니콜스는 연출 커리어의 뿌리를 코미디에 두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관객의 감성과 접속할 만큼 업데이트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아네트 베닝, 존 굿맨, 그렉 키너, 벤 킹슬리, 린다 피오렌티노 등의 화려한 캐스팅이 어수선한 잔치로 그친 것도 아쉽다.

박은영 기자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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