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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정글쥬스
2002-03-19

시사실/ 정글쥬스

■ Story

청량리 588에서 빈둥거리는 양아치 기태(장혁)와 철수(이범수)는 어느 날 동네 조직의 중간보스 민철(손창민)네 패거리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난생 처음으로 마약거래를 따라나선 이들은 민철이 거래 도중 총을 가진 상대방에게 당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조직의 보스는 이들에게 상대방을 잡아오든지 잃어버린 마약값 2000만원을 게워내라고 협박한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은 동네 꼬마의 푼돈을 긁거나 신장을 팔아보려고도 하고, 중년의 여인과 동침을 하거나 자해공갈을 꾀하기도 하지만 2000만원이라는 고지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데 일이 어찌어찌 꼬이더니 이들은 보스 소유의 마약 한 봉지를 갖게 되고, 창녀 멕(전혜진)과 함께 줄행랑을 치게 된다. 두 양아치와 창녀 한명을 민철이 쫓고, 민철을 경찰이 쫓는 가운데 요란한 추격전이 벌어진다.

■ Review <정글쥬스>는 변칙 장르영화다. 한데 뭉쳐놓으면 퉁겨져나갈 것 같은 요소들이 두루 엉겨있다. 액션을 바탕으로 코미디와 범죄영화를 두루 섞어놓았고, 조폭영화나 청춘영화적인 요소까지 갖추고 있다.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장면을 빌려온 듯하지만, 정작 맞춰보자면 똑 닮은 영화를 끄집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제목이 ‘여러 종류의 약을 섞어서 강렬한 효과를 발휘하는 즉석 환각제, 또는 여러 가지 술을 섞어서 강렬한 맛을 내는 칵테일’을 가리킨다는 ‘정글쥬스’인 것도 이같은 장르 혼용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이 영화는 신인감독의 작품치고는 목표치가 꽤 높다. 기태와 철수뿐 아니라 멕, 민철, 악어, 땅개, 형사들, ‘부산 자갈치 갈매기파’ 패거리 등 많은 수의 캐릭터를 한꺼번에 등장시키면서도 서로 어울리게 만들어야 했고, 폭은 그리 크진 않지만 자잘한 반전이 이어져나가는 스토리라인도 틀어쥐어야 하기 때문.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민호 감독은 최소한 후반부에선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마약을 들고 도망치는 두명의 주인공과 계속 치고빠지는 여타 캐릭터들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과장과 비약이 다소 엿보이는 이야기도 집중력 있게 밀어붙인다.

배우들 또한 이같은 감독의 의도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줬다. 오버액션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도 정신박약에 근접한 연기를 잘 소화한 장혁과 이범수뿐 아니라,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도 어딘가 나사가 풀려있는 듯한 민철 역의 손창민, 기태와 철수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뻔뻔하게 잘 소화한 전혜진 등의 연기는 매끄럽다.

<정글쥬스>가 끄집어올린 키워드는 ‘양아치’다. 현실적인 힘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지만 타고난 낙천성 덕인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탓인지, 그저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메꿔가는데 만족하는 이 영화 속 양아치들은 <태양은 없다>의 홍기보다도 한심한 군상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이들의 지지부진한 삶은 도무지 초점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중반부까지 코믹한 대사와 에피소드를 전체 맥락과 큰 관계없이 나열할 뿐, 생기발랄한 이들의 에너지를 극적 구조라는 큰 줄기로 엮어내지 못한다. “유니폼 입은 여자만 보면 꼴린다”며 둘이 대화를 나누거나 불법 신장매매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철수에게 간호사가 ‘거기’ 털을 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 등은 작은 웃음 조각만을 남기고 영화 밖 어디론가 표표히 흩어진다.

양아치의 본래 존재조건이 ‘조폭’처럼 장쾌한 액션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초당 180회의 두뇌회전을 자랑하는 천재들도 아니며, 아웃사이더로서의 아우라를 보여주기에는 자의식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양아치적 스타일’을 찾지 못한 <정글쥬스>는 일단 그저 ‘양아치 영화’로 만족해야할 것 같다. 문석 ssoony@hani.co.kr

조민호 감독 인터뷰

“대낮의 갱스터 느낌으로 찍고 싶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기분은 어땠나.

영화가 나처럼 나왔다고 그래서 아쉬움은 접었다. 본래 후회를 안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찍으면서는 잠도 안 올 정도로 후회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담담하다.

양아치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잘 자랐다면 중산층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살아왔던 환경이 그랬던 것 같다. 특출나게 잘했던 적이 없고 쿨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양아치처럼 놀면서, 이것도 사는 거야, 이러면서 살았다. 데뷔작인 만큼 젊은 시절 겪었던 삶을 정치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포장해 세련된 극적 장치를 만들면 찍을 때 배우나 스탭에게 진실하게 말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그냥 사람 사는 얘기야, 편하게 느끼면서 몰입하며 찍자고 했다. 그런데 배우들도 그점에 대해선 공감하더라.

양아치가 굉장히 밝고 유쾌하게 그려졌다.

양아치들은 특히 밤과 낮의 삶이 다른 것 같다. 낮에는 멍청하기도 하고 착해보이기도 하지만, 밤만 되면 무서운 애들로 변할 수도 있다. 그들의 낮쪽에 초점을 많이 맞췄다. 좀 어둡게 기억되는 과거를 보상받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도 있었기 때문에 밝게 가려 했다. 그리고 양아치라는 컨셉이 원래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것도 아니다. 대낮의 갱스터같은 느낌으로 찍고 싶었다.

중반부까지 별다른 극적 장치가 없어 밋밋한 느낌도 든다.

제작자도 처음엔 이렇게 찍어서 흥행이 되겠냐고 했다. 누군가 배신을 때린다든가 하는 극적인 요소도 넣으라고 했다. 싸이더스 사람들도 그러더라. <태양은 없다>가 <비트>보다 잘 만든 영화인데도, 관객은 오히려 20만명 적게 든 것은 결국 누가 안 죽어서 그렇다면서 비극으로 끝나야 되는 거라고도 했다. 심지어 내가 조감독 생활을 했던 이민용 감독님은 “앞의 40분은 잘라도 되겠다”고 하시더라. 하지만 내 생각에 만약 여기에 극적 요소를 넣었으면, 사회의 어두운 존재들을 미화하려는 것일 수 있었다. 관객들도 처음엔 잘 안 와닿고 불편하게 본다해도, 뒷부분으로 가면 편안하게 빠져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반부를 큰 이야기 없이 풀어나가기로 했다.

다음 작품 구상이 있나.

이미 준비중이다. 울산 현대중공업 앞을 배경으로, 노동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멜로를 그리려 한다. 예전 변영주 감독과 울산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갔다가 인식이 전환됐었다. 한마디로 선입관이 깨졌다. 노동자들이 세련되고, 감정이 풍부하며, 또 단순하면서도 삶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됐다. 대학을 다니면서 너무 개인적으로 살았다는 것도 반성하게 됐고 인생관도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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