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Review] 엑스페리먼트
2002-03-19

시사실/엑스페리먼트

■ Story

택시 기사인 타렉(모리츠 블라입트로이)은 심리 실험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하는 신문광고를 본다. 고립된 감옥에서 2주일을 지내고 4천마르크를 받는 실험이다. 타렉은 전 직장인 신문사에 가서 감옥 체험에 대한 기사를 쓰겠다고 제안한다. 사례금도 받고, 충격적인 기사도 발표하겠다는 일거양득이 목적. 20명의 지원자들은 간수와 죄수로 나뉘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대학병원 지하에 마련된 감옥에서 2주일간의 실험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누구나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하지만, 단 사흘 만에 감옥은 통제할 수 없는 광기에 휩싸여든다.

■ Review 인간은 사악한 존재일까? 한줌의 권력을 쥐어주기만 하면, 그 힘에 도취되어 이성을 잃어버리는 약한 존재일까? <엑스페리먼트>는 그렇다고 답한다. 사회에서 무슨 일을 했건 평등한 지원자 20명은 12명의 죄수와 8명의 간수로 나뉜다. 개인의 지적, 육체적 능력은 상관없다. 단지 누구는 죄수이고, 누구는 간수일 뿐이다. 간수복을 입은 이들과 죄수복을 입은 이들은 복장만 다를 뿐 동등한 피실험자이다. 각자의 감방에 들어가 창살이 닫힌 뒤에도, 감옥은 현실이 아니라 일종의 게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명령을 내리고, 누군가 불복하고, 다시 그 명령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는 순간 그들의 위계는 철저하게 가려진다. 사회는 폭력에 의해서 결정되고, 통제된다.

실험은 단순하게 시작한다. 소화가 안 돼 우유를 마실 수 없다는 죄수와 음식을 남길 수 없다는 규칙이 충돌한다. 타렉이 대신 우유를 마시고 승리를 거둔다. 수모를 당한 간수는 다시 돌아와 타렉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역전을 한다. 다음날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이번에는 모든 죄수가 함께 팔굽혀펴기를 한다. 집단적으로 저항을 한 것이다. 자신들의 명령이 무시당한다는 것을 느낀 간수들 역시 하나로 뭉친다. 그리고 ‘통치’에는 모멸감을 주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죄수’의 옷을 벗기고, 침대를 뺏는다. 다음날 타렉이 다시 도발을 하자, 이번에는 한밤중에 타렉을 납치하여 머리를 밀어버린다.

<엑스페리먼트>는 좁은 공간, 모든 것이 감시되는 감옥 안에서 상황이 벌어진다. 모든 것이 서로 노출되고, 연구자들이 다시 카메라로 감시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통제불능으로만 흘러간다. 아니 통제를 위하여, 스스로 통제를 벗어난다. 단지 간수의 옷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인격이 바뀐다. 바뀌지 않으면 견뎌날 수 없다. 간수들의 폭력에 반대하던 간수는 오히려 따돌림을 받고,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 감방에 갇힌다. 그 상황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 묘한 것은, 그들의 인격이 점차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도발을 감행하던 타렉 역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는 표정을 잃어버린다. 죄수복을 입은 그들은 단지 77번, 혹은 69번일 뿐이다. 죄수들은, 간수들에게 철저하게 굴복한다. 간수들은 자신의 제복에만 권위를 부여하고, 인격을 버린다. 타인을 굴복시키는 일처럼 황홀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간수들은 마침내 연구소를 장악하고, ‘무력독재’를 완성한다.

TV에서 활동하다가, <엑스페리먼트>로 데뷔한 감독 올리버 히르쉬비겔은 정말 집요하다. 농담을 하며 감옥으로 들어가던 사람들이, 침묵에 빠져드는 죄수로 전락하는 과정을 차갑게, 어떤 부연도 없이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타렉의 머리가 깎이고, 하나둘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면서부터 관객은 의자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모두가 이름을 잃어가는 그 광경을 지켜보기가 힘겨워진다. <엑스페리먼트>는 직설적이다. 끈질기고, 악착같다. 숨이 막힌다. 관객 모두에게 가장 지독한 상황의 목격자가 되기를 강요한다. 그런 점에서 <엑스페리먼트>는 성공했다. 단 한번도 눈을 돌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을 파고들면서 관객의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슬쩍 엿본 광경이 너무나 소름끼쳐서, 숨소리가 저 너머로 들릴까 두려워하듯.

<엑스페리먼트>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타렉과 간수인 베루스다. 7년간 단 한번도 회사에 지각한 적이 없을 정도로 규율을 잘 지키던 베루스는, 지배자가 된 순간 모든 이성을 잃어버린다. 아니 잃어버린 것은 인간성이고, 지나칠 정도로 합리적이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은 효과적이고 일사불란한 통제이고 방법은 폭력이다. 본보기로 한 사람을 괴롭히고, 한 사람의 잘못을 이유로 전체에게 물리적 위협을 가한다. 만약 그가, 정상적인 사회제도 안에 있었다면 아주 양순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잔인한 독재자가 된 것은 감옥이라는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 그 자체 때문일까.

타렉의 도발과 저항은 처음에는 직업의식이었고, 나중에는 일종의 본능적인 생존의식이다. 혹시 타렉이 간수의 입장이었다면, 그 역시 베루스처럼 변하고 그 경험을 기사로 쓰지 않았을까. 폭력에 굴복하는 인간이 얼마나 비루한 존재인지를. <엑스페리먼트>는 그 누구도, 결코 이 지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진실을 던져준다. 아주 강력하고 묵직한 주먹으로 온몸을 맞은 느낌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극한에 몰린 인간 실험

자유의지는 환경을 이길까?

<엑스페리먼트>는 실화에 기초한 영화다. 1971년 스탠퍼드에서는 필립 짐바르도 박사의 지휘 아래 감옥 시뮬레이션을 실험했다. ‘환경변화에 따른 심리변화 실험’이란 주제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인간은 극한 환경을 선한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인간 본성에 관한 의문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것이었다. 거대한 가상 감옥을 만들고, <엑스페리먼트>에서 묘사된 것처럼 신문광고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다. 역시 2주일 예정이었지만 실험은 5일 만에 끝나버렸다. 그 상황은 <엑스페리먼트>에 그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당시 한 참가자는 “감옥에 있으면서 이것은 단지 실험이 아니라 진짜 감옥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나올 때 나는 416번 숫자 그 자체였을 뿐이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당시 이 실험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고, SPE(스탠퍼드 감옥 실험)라는 이름의 록밴드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성’을 찾는 ‘실험’은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몇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TV쇼 <서바이버>는 정글이나 오지에서 사람들이 협조하고, 또 경쟁하면서 서로를 탈락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팀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팀 내에서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팀에서 누군가를 탈락시킬 때에는, 냉혹해진다. 처음에는 팀에 도움이 안 되는 ‘약한’ 사람을, 그 다음에는 너무 강해서 각자에게 위협이 되는 ‘강한’ 사람을 탈락시킨다. 때로는 그룹별로 갈려 상대방을 말살시키기도 한다. 만약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면, 그들 역시 <엑스페리먼트>의 간수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폭력에 물들고, 스스로 자신의 인간성을 말살시켜버리는, 야만적인 행동을.

<서바이버>와 <엑스페리먼트>의 차이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폭력을 용인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있다. 간수들에게는 최소한의 폭력이 인정된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죄수들을 제어하기 위한 폭력이 용인된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폭력은 멈출 줄 모른다. 끊임없이 에스컬레이트되는 폭력은 주고받기를 거듭하다가, 광기로 폭발한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보는 것과도 같다. 이성으로 만들어진, 사회제도가 언제나 인간의 광기와 폭력으로 허물어지고 끝내 체제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상황들.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삭막한 <엑스페리먼트>를 보고 나면, 인간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