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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밴디츠
2002-03-26

시사실/ 밴디츠

■ Story

오레건 주립교도소에서 함께 지내던 조 블레이크(브루스 윌리스)와 테리 콜린스(빌리 밥 손튼)는 과감히 탈옥을 감행한다. 조의 꿈은 멕시코 아카풀코의 휴양지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것. 자금을 마련하려는 조는 테리에게 은행강도를 제안하고, 스턴트맨 지망생인 조의 사촌 하비(트로이 개리티)가 여기에 가세하며 은행강도단이 결성된다. 이들은 은행장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아침 은행장과 함께 은행을 찾아 조용히 돈다발을 들고 나오는 이른바 ‘숙박강도’로 유명해지며 서부 지역 곳곳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둔다. 어느 날 남편의 무관심과 우울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려는 변호사 부인 케이트(케이트 블란쳇)가 강도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매력적인 그녀를 가운데 둔 조와 테리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생긴다.

■ Review <밴디츠>에서 미국 서부의 은행을 줄줄이 털어 명성을 날리는 주인공들의 ‘비법’은 다음과 같다. 일단 털 만한 은행을 물색하고, 은행장의 집을 알아놓는다. 그리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은행장의 집 초인종을 눌러 “당신네 은행을 털려고 왔는데요”라고 말한 뒤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가 집 주인들과 오붓한 저녁식사를 나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누가 봐도 뻔히 알 만한 가짜 수염을 붙이고 은행장과 함께 은행에 들어간다. 은행장에겐 “국가에서 받을 보험금만큼만 돈을 가져가겠다”며 설득한다. 돈다발을 가방에 넣으며 간간이 “정부는 당신들이 그동안 뼈빠지게 낸 보험료를 떼먹고 있다”는 식으로 아픈 곳을 긁어준다. 돈을 다 챙긴 뒤 준비된 자동차를 타고 떠나면 상황 끝.

이 넉넉한 품새의 코미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조와 테리는 <오션스 일레븐>의 주인공들처럼 기발한 구상을 통해 범행을 저지르거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비장미 넘치는 포즈로 기관총을 난사하지 않는다. 이들은 타고난 뻔뻔스러움과 낙천성으로 무장한 채, 쾌활하게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두툼한 돈가방을 들고 유유히 나올 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는 철저한 윤리의식까지 갖추고 있다.

스피드와 스펙터클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좀처럼 영화주인공이 될 것 같지 않아보이는 이 둘을 중심에 세워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배리 레빈슨 감독은 이야기를 능숙하게 풀어가는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다. 범행 과정에 서스펜스를 담거나 추격전을 숨막히게 묘사하는 여타 범죄영화와 달리 <밴디츠>의 초점은 주인공의 캐릭터에 맞춰져 있다. 머리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불같은 성격이지만, 여자만 만나면 세련되고 부드러운 매너로 변하는 조와 각종 질병에 대한 환상에 시달리면서 시종 수다를 떨어대는 테리는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호흡이 척척 맞는 커플이다. “당신 둘을 합치면 완벽한 남자가 될 것”이라는 케이트의 말처럼 둘은 대립적이지만, 서로에게 없는 점을 잘 채워주는 상호보족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여기에 둘을 애간장 녹게 하는 여성 케이트와 어눌하지만 결국 자기 몫을 하고마는 하비가 결합되면서 이야기는 기름이 잘 칠해진 기계처럼 척척 맞물려 들어간다. 똑똑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나사가 풀린 테리 역의 빌리 밥 손튼과 천성적으로 오버를 거듭하는 케이트 역의 케이트 블란쳇이 보여주는 코미디 연기 또한 캐릭터를 풍성하게 하는 요소.

이를 바탕으로 영화는 카멜레온처럼 톤을 바꿔가며 물 흐르듯 전개된다. 초반엔 조와 테리가 <내일을 향해 쏴라>의 코미디 버전을 보여주는 듯하더니, 케이트가 등장하면서 완곡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분위기가 바뀌고, 이내 미국판 <줄과 짐>으로 흘러간다(이들 영화 중 최소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의 연관관계는 분명한 듯 보이는데, 예를 들어 이들 강도단에서 운전을 맡은 하비 폴라드의 이름은 <우리에게…>에서 역시 운전자 모스 역을 맡은 배우 마이클 J. 폴라드에서 따왔다).

레빈슨 감독은 <굿모닝 베트남>이나 <레인맨> 같은 대표작에서 그랬듯이, 자질구레한 설명 대신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기도 선보인다. 요리대 앞에서 보니 타일러의 ‘홀딩 아웃 포 어 히어로’를 격정적으로 부르는 케이트의 모습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올 바이 마이셀프’ 장면에 버금갈 정도로, 남편의 무심함과 그녀의 내적 욕망을 한방에 보여준다. 또 케이트와 조가 침대 위에서 주고 받는 ‘토털 이클립스 오브 더 하트’나 테리와 케이트가 자리를 함께한 바에서 흘러나오는 ‘저스트 더 투 오브 어스’는 이들 남녀의 관계를 눈에 선하게 한다.

별로 새로운 것이 없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밴디츠>는 스타일과 감각만을 내세우려는 ‘요즘 영화’에 물린 관객으로선 입맛 당기는 영화다. 양념과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 자극은 덜하지만, 단단한 시나리오와 풍부한 캐릭터라는 기본에 충실한 담백한 맛을 우려내기 때문이다. 문석 ssoony@hani.co.kr

감독 배리 레빈슨

코미디의 장인

배리 레빈슨(60) 감독이 코미디쇼의 작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몸담기 시작했다는 점은 그의 영화세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1970년대의 인기 코미디쇼 <캐롤 버네트 쇼>로 에미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바 있는 그가 할리우드에 첫발을 들여놓게 되는 계기도 멜 브룩스의 코미디 <무성영화>(1976)의 시나리오를 쓰면서였다. 자신의 고향 볼티모어의 50년대 풍경을 묘사한 코미디 <다이너>(82)로 데뷔한 그는 이후 스필버그의 눈에 띄어 독특한 틴에이저 모험물 <피라미드의 공포>(85)를 만들게 된다. 이 작품의 흥행 실패로 스필버그 사단으로부터 이탈한 그는 <캐딜락 공방전>(87)으로 코미디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동안 18편의 장편을 통해 그는 할리우드 메이저 시스템 속에서 나름의 몫을 충실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작가’라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그는 ‘장인’으로선 손꼽힐 만한 성과를 나타냈다. <레인맨>으로 1989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한 4개 부문을 수상했고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내츄럴>(84), <굿모닝 베트남>(87), <아발론>(90), <벅시>(91), <왝 더 독>(97) 등은 상업적, 또는 작품성 면에서 평균치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나름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을 워낙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만들었으며,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 <굿모닝 베트남>과 <레인맨> 등을 통해 그는 한때 프랭크 카프라 감독과 비교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누렸던 영광은 야심작 <토이즈>(92)를 기점으로 서서히 빛이 바래기 시작한다.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5천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2천만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익만을 얻어낸 이 영화는, 미술과 특수효과에 대한 그의 집착에 가까운 과욕으로 인해 ‘값비싼 컬트영화’로 전락했다. 이후 발표한 <폭로>(94), <슬리퍼스>(96) 등은 그의 퇴보를 입증하는 듯했다. 독설과 코미디를 배합했던 정치풍자물 <왝 더 독>(97)을 통해 재기하는 듯 보였던 그는 맥빠지는 SF영화 <스피어>로 부진의 늪에 빠진다. 미국에서 4천만달러 남짓한 그런대로 괜찮은 수익을 거둔 <밴디츠>는 레빈슨의 장기가 개성있는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운 경쾌한 코미디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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