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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몽중인
2002-04-02

시사실/몽중인

■ Story

윤호(이경영)는 상처한 중년의 시나리오 작가다. 아내 하나코(김지연)가 병으로 세상을 뜨자, 그는 딸 유메(정인선)만을 바라보고 산다. 영화감독이 꿈인 속깊은 열두살배기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의 유일한 낙이다. 그런 그를 곁에서 오래 지켜본 한 일본 여인이 있다. 하야코와 함께 가야금을 배우러 한국에 왔다 스승의 아들인 윤호를 짝사랑하게 된 미야코(하희라). 거동불편한 윤호의 노부와 엄마 없는 유메를 보살피며 한국인 소라로 살아가는 그녀는 윤호의 곁을 맴돌지만, 마음속 깊이 품어온 연정을 쉽사리 털어놓지 못한다.

■ Review 사전정보를 챙겼다면, <몽중인>의 요란한 오프닝은 뜬금없다. 갈대밭이 펼쳐지고, 검객이 등장하고, 난데없이 대결이 벌어지니, “이거, 멜로영화 맞아?”라는 반문도 나올 법하다. 데뷔작 <귀천도>(1996)에서 무협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했던 감독은 이 장면에 아예 ‘beyond the film’이라고, 소제목까지 붙여놨다. 이건 ‘맛보기용’ 서비스이니 그냥 즐기고, 뒤따르는 메인 메뉴를 기대하라는 주문일까.

그러나 도입부를 지나서도, 영화는 제 갈길을 못 찾고 갈팡질팡 헤맨다. 주변 인물들의 소란스런 등장에 과도하게 관심을 표하기 때문. 남도 사투리에 주먹깨나 쓰는 바의 사장을 비롯해서 희화화된 트랜스젠더, 노상방뇨를 일삼는 폭주족, 이후 줄줄이 등장하는 카메오들까지, 폭소를 노린 해프닝을 뒤섞어 일일이 소개하다 보니, 정작 ‘엇갈린 사랑에의 비감’은 뒷전으로 물러난 느낌이다.

그래서 윤호가 죽은 하나코를 잊지 못하고, 그런 그에게 소라가 마음을 거두지 못하는, 그 애절한 감정의 순도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엄마 하나코로부터 불치병까지 물려받았음을 알게 된 유메가 죽어가면서도 윤호와 소라의 손을 포개놓지만, 그 진폭의 떨림이 온전히 느껴지지 않는다. “일생에 단 한 사람밖에 사랑할 수 없는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영화 속 읊조림을 무조건 신뢰한다면, 이 영화의 비애가 고스란히 전달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몽중인>에도 숨겨진 보물이 있다. 유메 역을 맡은 아역배우 정인선은 주어진 캐릭터 이상의 몫을 차분하게 해낸다. 교감의 주파수 맞추기를 포기하기 힘들다면, 그건 이 어린 배우가 시종일관 보여주는 자연스런 연기 덕분일 것이다. 이영진 ant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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