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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위로 펼쳐진 근 30년 한국 현대사의 파노라마 <더 킹>
이주현 2017-01-18

쌈박질만 하던 고등학생 태수(조인성)는 사기꾼 아버지가 검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 “저게 힘이다, 진짜 힘.” 그때부터 태수는 책을 가까이 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사법시험까지 가뿐히 패스한 뒤 방송국 아나운서이자 재력까지 갖춘 상희(김아중)와 결혼한다. 그러나 곧 99%의 검사들은 온종일 서류뭉치와 씨름하는 월급쟁이일 뿐이라는 것을 깨친다. 그러다 학교 선배이자 전략부에서 일하는 검사 양동철(배성우)을 통해 차기 검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한강식(정우성)을 만난다. 한강식이 이 나라의 고위층들을 쥐락펴락하며 기획수사를 펼치는 모습을 본 태수는 자존심을 버리고 권력의 곁에 서기로 결심한다. 한편 목포의 들개파 두목 김응수(김의성)는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한강식과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고, 들개파의 2인자이자 태수의 고향 친구 두일(류준열)은 태수의 뒷일을 봐주며 공생관계를 이어간다.

<더 킹>은 <마스터>(2016), <내부자들>(2015), <베테랑>(2015)과 유사하게 현실을 직접적으로 환기시키는 영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현실과 역사를 영화에 그대로 차용한 작품이다. 한재림 감독은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조준하지 않고 전두환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근 30년의 한국 현대사를 파노라마로 펼쳐놓는다. 고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15대 대선 과정이라든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탄핵과 서거를 그대로 서사에 활용하는 식이다. 현실을 직접적으로 인용한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한재림 감독이 야심차게 그려낸 대한민국의 권력 지형도가 새롭지는 않다. 권력의 덕을 봤다가 버림받고 재기를 꿈꾸고 복수하는 태수의 연대기 또한 익숙한 전개를 따른다. 그렇게 모든 클리셰를 걷어내고 났을 때 <더 킹>만의 고유한 목소리는 무엇인지 묻게 된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늙지 않는 인물들이 이상하긴 하지만 <아수라>(2016)에 이어 물오른 악역 연기를 보여준 정우성이나 <쌍화점>(2008) 이후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한 조인성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연기는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무겁게 분위기를 잡다가 1990년대 인기가요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정우성은 예상치 못한 재미를 투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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