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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의 내일> “이 곳을 떠나렴, 너를 위해서야”
김보연 2017-08-09

루마니아의 의사인 로메오(안드리안 티티에니)에게는 영국 유학을 앞둔 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라구스)가 있다. 하지만 로메오가 원하는 학교에 딸을 입학시키기 위해서는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야만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엘리자가 시험 전날 낯선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엘리자는 그 충격으로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한다. 마음이 다급해진 로메오는 의사로서의 힘과 친구의 인맥을 동원해 부정한 방법을 이용하려 한다.

<엘리자의 내일>은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 등을 연출했던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안 문주의 신작이다. 지난 2016년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루마니아 현실에 대한 감독의 문제제기가 더욱 날카로워졌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는 루마니아 사회가 처한 문제들을 복잡한 인과관계 속에서 그림으로써 관객에게 손쉬운 해결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즉, <엘리자의 내일>은 별개로 보이는 여러 문제들이 서로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생생하게 그린 후 관객이 그 앞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는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를 찾기 어렵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부패한 공무원들의 비리가 문제인 것 같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루마니아의 낙후된 경제가 더 큰 문제 같기도 하다. 아니면 ‘진짜 문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움의 연쇄 속에서 관객은 더 주의 깊게 현실을 관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엘리자의 내일>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태도이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윤리적 마지노선을 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주인공들은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을 맞이하는데, 그 결정은 영웅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며 단지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방법일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며 더 나쁜 결과가 찾아오는 걸 막는다. 카메라의 차분한 태도 속에 그려진 주인공들의 이런 선택은 관객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엿보게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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