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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침략자> 인간의 개념을 수집하는 외계인
장영엽 2018-08-15

장르를 넘나들며 동시대를 사유하는 일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어느 날 세명의 외계인이 지구에 찾아온다. 그들의 목적은 지구에 종말을 가져오는 것이다. 본격적인 침략 전, 외계인들은 인간의 몸을 빌려 세상을 활보하며 인간의 ‘개념’을 수집한다. 디자이너 나루미(나가사와 마사미)의 남편 신지(마쓰다 류헤이)의 몸에 깃든 외계인은 나루미에게 ‘가이드’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기자 사쿠라이(하세가와 히로키)는 토막 살인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외계인 아마노(다카스기 마히로)와 아키라(쓰네마쓰 유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는 독점 취재를 위해 두 외계인의 ‘가이드’를 맡는다.

인간의 개념을 수집하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구로사와 기요시는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아무도 되묻지 않는 가치들에 질문을 제기한다. 자신과 타인, 가족과 소유, 일, 그리고 사랑. 외계인에게 개념을 강탈당한 인간이 펼치는 카오스의 풍경이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묘사된다. ‘소유’라는 개념을 잃은 히키코모리가 집 밖으로 뛰쳐나와 액티비스트가 되고, 성추행을 일삼던 권위적인 직장 상사가 ‘일’이라는 개념을 잃은 뒤 유쾌한 어린아이처럼 변해버리는 식이다. “다들 온몸에 묶은 채 절대 놓으려 하지 않는 것. 실제로는 필요 없는 물건에 대한 욕망이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만드는 겁니다.” 극중 대사처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개념들이 사실은 인간을 속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생매장>이라는 일본 연극이 원작인 이 작품은 보디스내처 장르에 대한 구로사와의 참신한 재해석과 호러로 시작해 SF를 거쳐 멜로로 끝나는, 다채로운 장르의 스펙트럼이 인상적인 영화다. 절멸과 더불어 희망을 얘기하는 구로사와 월드의 지속적인 관심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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