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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경계에 선 사람의 흔들림을 그린다
송경원 2019-10-16

위태롭게 흔들린다. 진짜 고독과 위기는 흔들린다는 사실을 오직 자신밖에 느끼지 못할 때 찾아온다. 고층빌딩 한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서영(천우희)은 이명과 어지러움에 시달린다. 마음 졸이는 계약직 생활 가운데 사내의 인기남 진수(유태오)와 비밀연애 중이라는 게 그마나 숨구멍이 되어주지만 진수와의 관계 역시 점차 불안해지고 밤마다 엄마의 전화에 시달린다. 이윽고 진수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이어지며 모든 게 무너져간다고 느낄 때, 문득 창밖에서 로프에 매달린 채 자신을 지켜보는 남자 관우(정재광)와 마주한다.

<버티고>는 경계에 선 사람의 흔들림을 그린다. <삼거리 극장>(2006)과 <러브픽션>(2012) 등을 연출한 바 있는 전계수 감독은 전작들과는 또 다른 스타일과 호흡으로 <버티고>에서 인물의 고독과 외로움, 방황을 그려보였다. 믿고 있던 관계들이 차례로 무너질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파장을 가만히 바라보는 카메라는 보이는 것보다 많은 감각들을 전한다. 심해에 잠겨 들어가는 듯한 독특한 사운드디자인을 통해 답답하고 억눌린 심경을 형상화하는 방식은 독특하면서도 섬세하다. 스펙터클한 사건도 없고 묘사도 전반적으로 미니멀하지만 그럴수록 한 개인의 심리를 내밀하게 파고드는 힘이 발생한다. 30대 초반 직장여성이라는 설정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인 체험으로 연결되는 건 그만큼 감정의 본질과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서영을 연기한 천우희 배우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백지 위에 파리하고 위태롭게 서 있는듯한 천우희의 잔잔하고 절제된 연기가 작품 전체에 숨결을 부여한다. 미세한 진폭이 점점 커져 마침내 태풍처럼 마음을 뒤흔드는, 기본의 힘을 새삼 일깨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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