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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취화선
2002-05-07

시사실/취화선

■ Story

조선시대 말기의 한양 땅. 어린 장승업(최민식)은 거리의 부랑자로 떠돌다 개화파 선비 김병문(안성기)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 그림의 소질을 계발한다. 천재를 타고난 덕에 곧 걸출한 화원이 되고 궁중에까지 진출하지만, 술과 여자에 탐닉하고 방랑벽이 심한 탓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소운(손예진)에게 첫 연정을 느끼고, 매향(유호정)을 평생 사랑하지만, 그가 짧게나마 동거하는 여인은 억척스런 기생 진홍(김여진)이다. 시대적 격랑과 예술적 갈증 사이에서 방황하던 장승업은 결국 모두의 곁을 영원히 떠나는 길을 택한다.

■ Review <서편제>의 눈먼 송화는 기어이 길을 떠난다. 그 뒷모습에 의붓동생 동호는 끝내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억장이 무너져도 결국 손 내밀지 못하고 떠나보낸, 한때 우리의 일부였으나 더이상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들. 임권택의 영화는 그 기억의 상처를 스크린에 불러들여, 우리의 혹은 한국 근대사의 결핍을 상기시키고 또 어루만진다. 상실의 대상을 향한 이 처연한 만가는 그러나 동시에 그것과의 궁극적 해후를 염원하는 절절한 연가였다.

<취화선>의 장승업. 나라가 무너져가던 19세기의 마지막 연대에 생을 마감한 천재화가. 천출로 당대 최고의 화원 자리에 올랐으나 삶도 예술도 끝내 유랑을 멈추지 못한 비운의 예술가. 인접한 연대를 살았던 떠돌이 예술가라면, 혹시 그는 송화의 재림일까. 그런 어림짐작을 <취화선>은 일찌감치 박살내고 시작한다. 오프닝 장면에서 그의 붓놀림에 넋을 잃은 양반들을 향해 장승업은 오만방자하게 일갈한다. “일획이 만획이요, 만획이 일획이로다.”

도입부의 이 도도한 일성은 <취화선>의 갈 길을 깊숙이 암시한다. <취화선>은 노래하지 않고 포효한다. 몸부림치고 발악할지언정, 주저앉아 울지 않는다. 비유컨대, <취화선>은 더이상 소월이 아닌 육사의 세계며, 서편제가 아닌 동편제의 세계다. 임권택 감독은 더욱 크고 정교해졌지만 극히 임권택적인 세팅 아래서 그것에 동반돼온 감수성과 세계관을 모두 넘어서려 한다. 순정한 인간주의, 회한과 노스탤지어의 기운을 억누르며 아름다움에 미쳐 감히 신선이 되려 한 인간의 생을 굵은 화필로 단숨에 그려내는 것이다.

<취화선>은 숨가쁜 영화이며, 엄청난 야심의 기획이다. <춘향뎐>에서 정제된 형식미에 연출의 에너지를 집중시켰던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전작들을 빛낸 제재들- 구도를 향한 방랑, 이식된 근대의 상처, 민초의 고난, 한국 전통문화의 복원- 을 벽화처럼 망라하면서도, 그들 모두를 초월한 순수한 미적 완성에의 갈망을 <취화선>의 중심에 둔다. 감독 본인의 말에 기대지 않더라도 명백히 임권택의 준자서전격인 <취화선>은, 그러나 정리와 회고가 아니라 자신의 영화미학을 혁신하려는 진땀나는 모험이다.

첫 장면에서부터 심상찮은 일성을 내지른 <취화선>은 곧바로 장승업의 어린 시절부터 되짚어온다. 거리를 떠돌던 부랑아가 회화의 신기를 드러낸 뒤 능숙한 장인으로 성장하다 마침내 당대 최고의 화원으로 등극하는 과정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장승업은 중국화의 영향권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와 그걸 뛰어넘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에피소드 몇 가지밖에 남아 있지 않은 미지의 인물, 끊임없이 작품세계를 변화시켰으나 완성의 순간을 남기지 않은 미완의 예술가에게 임 감독은 마음껏 자신을 투영시킨다. 투영되는 건 얼핏 자신의 과거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의 시선과 고뇌다. 임 감독은 <취화선>에서 자신의 뒤를 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응시한다.

임 감독의 방식은 놀랄 만큼 냉정하다. 한숏 안에서의 감정의 지속을, 그리고 한 시퀀스 안에서의 감정의 완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임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는 사라지고, 감정이 고조될 만하면 툭 끊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버린다. 극적 사건은 대체로 생략되고, 그 결과를 짊어지고 사는 인물들의 모습이 드라마를 이어간다. 이렇게 인물에의 감정적 몰입과 드라마틱한 긴장을 억제하면서, <취화선>은 갖가지 인서트와 멀리 잡힌 유랑의 장면들을 통해 절정의 이미지를 전시한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유려한 카메라에 실린 산수와 들판과 꽃과 나무는 이 땅에 저런 아름다움이 있었는지 의심할 만큼 매혹적이다. 천방지축 날뛰던 장승업은 곧바로 풍경에 편입돼 <취화선>은 종종 인물화가 아닌 산수화처럼 보이며, 거대한 병풍화의 이미지로 남는다. 이쯤에서 분명해진다. <취화선>은 휴먼드라마가 아니며, 한 예술가의 생애와 그 성취의 온전한 복원도 아니다. 잘 짜여지고 자기 완결적인 이야기를 겉에 두르고 있지만 압도적인 풍경에 실려, 끝내 도달되지 못한 미적 완성에 대한 갈증과 추구가 전편을 뒤덮은 기묘한 영화다.

그러나 <취화선>은, 장승업이 그랬듯 스스로 완성을 선포하지 않는다. 누르고 또 누르지만 인간사 애욕과 번뇌를 뿌리치지 못하는 순간을 맞는다. <취화선>은 불균질한 영화다. 미적 구원의 엄혹하고 숨가쁜 여정에 느리고 애틋한 휴머니티가 불쑥 끼어들어 극의 리듬과 방향을 급선회시킨다. 이와 함께 대사도 일상화되고 형식의 통제 아래 잠자고 있던 각 인물들의 개별적인 결이 솟아오른다. 늙고 추레한 김병문과 역시 주름의 골이 깊어진 장승업이 뻘밭에서 해후하는 장면에선, 달인의 경지에 오른 두 연기자의 표정과 몸짓에 힘입어 북받치는 서러움이 일거에 억제의 선을 넘어버린다. 임 감독은 그러나 다시 냉혹하다. 감정의 지속은 허용되지 않고, 관객은 곧이어 두 사람의 엄숙한 대화를 들어야 한다. 추구는 끝내 쉬지 않는다.

<취화선>은 풍경을 뚫고나와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려는 인간과 끝내 그를 자신의 일부로 품는 풍경이 투쟁하는 영화다. 인간적 자족과 미적 결핍, 진경과 선경, 시대적 소명과 초월적 욕망이 이 양자에 겹쳐지거나 엇갈리면서 태어난 유례없이 복합적이고 균열적인 영화가 <취화선>이다. 모든 대립항들이 한꺼번에 해소될 뻔한 되새떼 그림 장면에서, 장승업은 비로소 2세를 원하지만, 그의 정액은 허공에 뿌려지고 알몸으로 되새떼 그림 위에 내동댕이쳐진다. 단 하나의 이미지로 <취화선>의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는 이 명장면 뒤에 그 그림은 불태워지고, 합일은 끝내 실패한다.

임 감독은 완벽한 형식미로 모든 요소를 정제했던 <춘향뎐> 때와는 달리 이질적 요소들의 균열을 해소하지 않고 텍스트의 상처가 되도록 내버려두는 힘든 길을 택한다. 이 상처는 결함일까, 아니면 이 상처 스스로 미적 완성의 끝없는 추구와 그것의 궁극적 불가능성이라는 주제에 화답케 하는, 또다른 혁신적 시도일까. 분명한 건 세계적 절찬을 얻은 <춘향뎐>의 형식미를 뛰어넘는 좀더 깊고 다차원적인 형식의 세계를 임 감독은 탐색하기 시작했고, <취화선>은 그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임권택은 또다시 아찔한 미학적 모험을 벌이며, 새로운 영화의 경지를 두드리고 있다. 허문영 moon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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