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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릴리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이름을 알린 셀린 시아마 감독의 데뷔작
김소미 2020-08-11

돌연한 매혹이 15살 마리(폴린 아콰르)에게 찾아온다. 어느 여름, 지역 수영장에서 싱크로나이즈드 대회에 출전한 플로리안(아델 에넬)을 본 순간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수영장에 등록한 마리는 플로리안 곁을 맴돌면서 싱크로나이즈드를 배우려 하고, 플로리안은 그런 마리가 귀찮지만 마냥 싫지는 않은 눈치다. 한편 빨리 첫 키스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리의 단짝 안나(루이즈 블라쉬르)는 상대를 찾아 파티를 배회하지만 성과가 없어 좌절한다. 영화는 세 소녀를 둘러싼 성적 호기심과 긴장, 또래 관계의 역학을 섬세하게 풀어나간다. 왜소한 마리는 플로리안의 육체를 갈망하면서 남자아이들과 자유분방한 관계를 맺는 플로리안을 향해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헤프다’고 소문난 플로리안에겐 사실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남들의 수군거림과 달리 플로리안은 한번도 섹스를 한 적이 없고, 그래서 자신에게 접근하는 매력적인 이성 프랑스와즈와의 결정적인 순간을 앞두고 고민에 빠진다. 점점 더 플로리안에게 빠져드는 마리, 마리를 이용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기 시작한 플로리안. 이 약동하는 소녀들을 따라 긴 여름날의 배회에 동행하는 <워터 릴리스>는 둘의 미묘한 전류가 불현듯 스파크로 튀어오르는 순간까지 나아간다.

<워터 릴리스>의 10대는 아름다운 만큼 불편과 당혹으로 가득 차 있다. 마리와 안나는 마음과 달리 너무 빠르게 혹은 너무 느리게 자라나는 신체 앞에서 자신감을 시험당한다. 누군가는 빨리 어른이 되어가는 것에 오해를 사고, 누군가는 자격 미달이라 놀림받는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수면 위와 아래에서 제각기 전혀 다른 몸짓으로 버텨야 하는 스포츠인 싱크로나이즈드를 통해 이 과도기를 형상화했다.“물속이 더 잘 보여.” 자신을 수영장 안으로 인도하는 플로리안을 따라 입수한 마리는 물 밖에 드러난 플로리안의 절도 있는 동작 아래에는 몸을 받치기 위해 격렬히 헤엄치는 다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는 실망이 아니라 더 강렬한 이해와 사랑으로 이어진다. 외부의 압력에도 자기만의 부력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지키며 적응하는 것, 그리고 사랑을 찾는 것이 <워터 릴리스>의 여정이다. 영화는 끔찍한 첫 경험의 추억이나 미숙한 관계가 남기는 냉담한 상처들도 포섭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건강한 성장의 가능성을 엿본다. 신체에 대한 관심을 영화 전반에 관능적으로 녹여내고 있지만 단순한 호기심이나 훔쳐보기의 시선이 없는 것 또한 셀린 시아마의 재능을 알리는 결정적 요소다. 동경, 질투, 콤플렉스, 절망 등이 뒤섞인 10대의 섹슈얼리티는 영화 내내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하며 생기가 넘친다.

영화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이름을 알린 셀린 시아마 감독의 데뷔작이다. <톰보이>(2011)에 이어 <워터 릴리스>까지 그동안 한국에서 정식 상영하지 못했던 작품들이 역순으로 개봉하면서 셀린 시아마를 향한 동시대 관객의 새로운 관심과 신뢰를 가늠케 한다. 셀린 시아마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것은 각본을 담당한 애니메이션 <내 이름은 꾸제트>, 극영화 <아이보리 타워> <영 타이거> 등을 포함해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섬세한 시나리오 집필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워터 릴리스> 또한 대사의 절제미가 돋보이고, 사춘기의 열병을 대변하는 돌발 행동들이 적재적소에서 솟아나 감정을 고조시킨다. 플로리안이 버린 쓰레기 봉투를 몰래 뒤져서 그가 남긴 사과 조각을 베어무는 마리의 모습처럼 폭발적 감정을 앓는 그 시절에 대한 도발적 묘사가 무척 아름답다. 객석에서 플로리안의 초상에 단단히 붙들린 마리의 시선으로 시작하는 <워터 릴리스>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보여준 시선의 운동을 즉각 떠올리게 하는 지점도 있다. 동시대 프랑스영화의 중요한 기둥인 셀린 시아마의 레즈비언 게이즈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그 근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충만한 감흥을 안기는 영화.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다.

CHECK POINT

아델 에넬의 성장

셀린 시아마의 데뷔작이자 시아마가 오디션을 통해 아델 에넬의 진가를 일찍이 알아본 작품인 <워터 릴리스>. 13살에 <악마들>(2002)로 데뷔한 배우 아델 에넬은 <워터 릴리스>의 욕망에 일찍 눈뜬 조숙한 10대 소녀를 거쳐 <언노운 걸>의 젊은 의사, <120 BPM>의 사회운동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에우리디케’로 자리 잡았다.

여름의 싱크로나이즈드 무비

일본에 <워터 보이즈>(2001)가 있다면 프랑스엔 <워터 릴리스>가 있다. 청소년 싱크로나이즈드 선수의 세계에 사로잡힌 소녀 마리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일렁이는 수면 안팎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신체에 대한 호기심, 매혹, 갈망, 콤플렉스를 아름답고 솔직한 터치로 담아낸다.

파라 원 또는 장 밥티스트 드 라우비어

<워터 릴리스> <걸후드> <톰보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까지, 셀린 시아마의 영화들은 모두 프랑스 뮤지션 파라 원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찰랑이는 물결, 몽환적인 여름밤을 재현하고 빈티지한 팝과 일렉트로닉 사운드 등으로 파티 장면을 수놓은 스타일리시한 사운드트랙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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