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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백' 현실의 도처에 널린 여성과 아동을 향한 폭력 속으로 서늘하게 잠수하는 작품
김소미 2021-02-16

잇따른 아동학대 사건의 충격파가 여전한 한국 사회에 <고백>의 도착은 절묘하다. 로맨스물 <초인>(2015)으로 데뷔한 서은영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인 <고백>은 현실의 도처에 널린 여성과 아동을 향한 폭력 속으로 서늘하게 잠수하는 작품이다.

지역 아동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오순(박하선)은 신체 곳곳에 멍이 든 아이를 보고도 학대 가정에 아동을 방치하는 사회에 지독한 환멸을 느낀다. 이미 직장에서도 여러 번 주의 대상이 된 오순은 툭하면 가해 부모에게 달려들어 악을 쓰기 일쑤다. 한편 의욕 넘치는 신참 순경인 지원(하윤경)은 다른 동료들처럼 야간근무와 ‘출동’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늘 실내에서 전화만 받는 처지다. 성폭력 근절 캠페인에 동원되어 화사한 모습으로 포스터 촬영을 하는 등 여성 순경에 대한 미묘한 구색 맞추기식의 분위기도 그를 답답하게 만든다.

영화는 공중파 뉴스에 국민 1인당 1천원씩 모금해 1억원을 마련하라는 유괴범의 메시지가 도착하고, 지원과 오순이 우연히 조우하는 사건을 연달아 제시하면서 조금씩 미스터리를 피워올린다. 그 구심점에 있는 인물은 친부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는 10살 소녀 보라(감소현)다. 유괴범의 메시지 이후 보라의 친부가 사체로 발견되면서 오순을 눈여겨봐왔던 지원의 의심은 더욱 커져간다.

내내 청회색이 감도는 삭막한 도시 풍경, 진득히 내려앉은 콘트라스트 속에서 <고백>은 음울한 범죄 스릴러와 심리극의 외피를 취한다. 유괴범이 제시한 일주일의 타임 프레임 안에서 느슨하게 수사 과정을 펼쳐내는데, 영화 중반부까지 오순의 과거 행적을 현재 시점의 이야기와 나란히 제시하면서 이야기에 인위적인 혼란을 유도한다. 캐릭터 표현에 있어서도 비슷한 결이 드러난다. 오순은 사회복지사로서 보라를 구출하려는 선의를 지닌 인물이지만, 점차 증오와 슬픔 밖에 남지 않은 텅 빈 인간처럼 묘사돼 영화에 불온한 긴장을 띄운다.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됐던 보라에게도 때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음침한 악의가 솟아오른다.

오랜 폭력의 피해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를 닮아가는 악순환 혹은 그보다 복잡한 인간 본성의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공교롭게도 동명의 일본영화 <고백> 등을 만든 나카시마 데쓰야의 후기작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배우 박하선과 감소현이 연기한 오순과 보라는 사회고발적 성격이 단순히 도드라지기 쉬운 아동학대 소재의 드라마에 장르의 틈새를 열어젖힌다.

반면 배우 하윤경이 연기한 순경 지원은 관객의 대리자이자 감독의 믿음직한 메신저다. “좋은 말로 하면 오지랖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민폐라 부르는” 그것, 타인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지원의 주특기이고 <고백>의 희망으로 자리 잡는다. 눈 밝은 이웃인 지원의 눈에 오순과 보라는 도움이 필요한 소외된 여성이자 공감의 대상이다. 지원이 헤어진 연인으로부터 끈질긴 스토킹을 당하는 동네 주민을 일찌감치 눈여겨보는 장면 역시 여성간의 이해와 연대가 일어나는 순간을 포착해내는 <고백>의 관심사를 잘 보여준다. 여성 순경에 대한 불신과 묘한 반발심이 묘사되는 지원의 직장 생활 장면은 백래시에 대한 감각도 넌지시 드러낸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다층적인 군상과 내면을 보려는 <고백>의 시도를 서사가 완벽히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도 든다. 인물들의 정념에 복무하기 위해 구태여 덜 영리하고 덜 수월한 쪽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마주할 때의 아쉬움이 <고백>에서도 감지된다. 그럼에도 영화는 여성이 여성을, 피해자가 피해자를 알아볼 때 생기는 끈끈함에 대해서만큼은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 감정의 구체화 만으로 쉽사리 잊히지 않을 작품이다.

CHECK POINT

새는 곳 없는 앙상블

타자에 대한 들끓는 증오로 자기를 부서뜨리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 트라우마가 빚어낸 범상치 않은 인물 오순을 연기한 배우 박하선은 제24회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 배우상을 수상했다. 그의 곁에서 영화를 이끌고 가는 중심축으로 기능하는 배우 하윤경은 스크린에 홀로 존재할 때도 내내 안정감을 뿜어내면서 준비된 신인임을 증명한다.

배려와 공감의 시선

학대 장면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하지 않는 서은영 감독의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고백>을 한결 더 미덥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선의를 지닌 경찰과 사회복지사가 개인의 힘만으로 피해자를 구출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무력감과 안타까움을 표현한 장면들 역시 다수의 공감대를 살 만하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대사들

“사회복지사를 도와주는 사회복지사는 없어. 남을 돕는 사람들 일수록 자신을 잃어선 안돼.” 오순을 걱정하는 직장 상사 미연(서영화)은 가해 부모 앞에서 화를 꾹 참고선 오순을 이렇게 타이른다. 이외에도 각자의 트라우마와 비밀을 고백하는 오순, 지원, 보라의 대사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는 명대사들이 세심하게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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