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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짓궂은 농담과 과잉의 미학,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신작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임수연 2021-12-01

60년대 런던을 재료 삼아 마련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트위기와 오드리 헵번의 사진이 붙어 있지만, 지금 이곳은 1960년대가 아니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부모를 잃었으나 60년대 런던의 음악과 스타일을 사랑하는 할머니와 함께 긍정적이고 씩씩하게 영국 콘월에서 성장한 엘리(토마신 맥켄지)는 꿈에 그리던 런던 소호의 패션 스쿨에 진학한다. 하지만 동기들은 그를 촌뜨기 취급하고, 그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엘리는 기숙사를 나와 콜린스 부인(다이애나 리그)이 관리하는 허름한 하숙방을 구한다. 엘리는 삐걱대는 계단을 올라야만 하는 낡은 방에서 잠이 들면 1960년대의 소호와 당대 최고의 매력을 자랑하는 가수 샌디(애니아 테일러조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한다. 그러나 황홀한 판타지는 이내 끔찍한 악몽으로 바뀐다. 화려해 보이기만 했던 샌디의 삶은 사실 권력을 가진 남자들에게 매일 성폭행을 당하는 날의 연속이었고, 엘리가 샌디의 로맨스 상대라고 생각한 에이전트(맷 스미스)의 진짜 정체는 포주였으며, 급기야 샌디는 엘리의 꿈속에서 미스터리한 남자에게 살해당하기까지 한다. 한편 현실의 엘리는 소호의 거리에서 자꾸만 마주치는 노신사를 의심하게 된다. 샌디의 살인범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노신사의 연배일 거라는 짐작과 함께 엘리는 샌디를 죽인 범인을 찾아나선다.

레트로 팝 컬처를 향한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확고한 취향은 몇 가지 랜드마크만으로도 관객을 60년대로 회귀하게 만들지만,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노스탤지어의 낭만을 마냥 예찬하는 영화가 아니다. 화려한 쇼걸 샌디를 동경하며 엘리가 바꾼 금발 머리와 스모키 눈화장, 형형색색의 네온 불빛은 종종 핏빛의 호러 효과로 쉽게 전환된다. 과거는 낭만과 비극이 뒤섞여 구축된 결과물이며, 매혹의 이면엔 늘 공포가 숨겨져 있다는 섬뜩한 진실이 과시적인 비주얼로 제시되고 있다. 장르적으로는 시간 여행 판타지에 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화려함, 환영적인 심리 호러가 불균질하게 섞여든다. 조현병으로 자살한 엄마, 그리고 그의 환영을 보는 엘리의 오프닝은 그가 보는 환각의 의미를 헷갈리게 만든다. 샌디의 얼굴은 거울 속에서 엘리가 되고, 엘리가 제3자처럼 샌디를 바라보기도 해서 60년대 과거가 정신분열증의 일면인지 엘리의 꿈인지 모호하게 연출된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마이클 파월의 <피핑 톰>, 앨프리드 히치콕의 <프렌지>로부터 받은 영향을 직접 언급한 바 있고, 엘리가 겪는 정신착란 묘사에서는 로만 폴란스키의 <반항> 속 카트린 드뇌브나 <서스페리아>(1977)의 제시카 하퍼가 비친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이른바 코네토 3부작(<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 <지구가 끝장 나는 날>)과 <베이비 드라이버>로 짓궂은 농담과 과잉의 미학을 즐겨온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신작이다. 샌디를 죽인 것은 특정 남자가 아니라 쇼 비즈니스 업계의 뿌리 깊은 여성 혐오와 성적 착취였다는 전개가 그닥 새롭지는 않지만, 에드거 라이트 감독이 전작의 웃음기를 한껏 내려놓고 여성 각본가 크리스티 윌슨케언스와 협업해 청소년기 혹은 60년대 성적 해방의 이면에 여성을 위협하는 폭력의 존재를 진지하게 다룬 것은 처음 있는 새로운 시도다. 동시에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분명한 인장이 박혀 있는, 그가 사랑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패치워크다.

때문에 감독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안의 무게는 종종 화려한 비주얼에 갇혀 자칫 가볍게 다뤄지는 듯 보이고, 그의 취향이 녹아들 틈이 부족한 현대 시점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덜 재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나잇 인 소호>가, 기막힌 리듬감과 질투나는 취향을 타고난 감독이 60년대 런던을 재료 삼아 마련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CHECK POINT

브리티시 인베이전

60년대 중반 런던을 풍미한 팝 컬처가 영화를 빼곡하게 채운다. 피터 앤드 고든의 로 문을 여는 영화는 실라 블랙의 <You‘re My World>로 시간 여행을 시작해 <007 썬더볼>을 상영하는 웨스트엔드 극장에 도달한다. 샌디는 무대에서 페툴라 클라크의 <Downtown>을 부른다.

정정훈 촬영감독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의 정정훈 촬영감독은 이제 할리우드 작품에서 더 익숙한 이름이 됐다. <그것> <커런트 워>에 이어 최근 디즈니+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 티모시 샬라메가 출연하는 <웡카>의 촬영을 맡았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아가씨>를 보고 영화 속 미장센과 디테일한 연출력에 감명 받아 정정훈 촬영감독에게 직접 <라스트 나잇 인 소호>에 참여해줄 것을 제안했다.

60년대 브릿 스타들

60년대 런던을 향한 에드거 라이트의 애정은 조연 캐스팅으로도 연결된다. 엘리가 샌디를 죽인 범인이라 의심하는 의문의 노인은 <빌리 버드> <수집가>의 테렌스 스탬프가, 엘리를 사랑하는 할머니는 <꿀맛> <낵 앤 하우 투 겟 잇>의 리타 터싱엄이 연기한다. 콜린스 부인 역의 다이애나 리그는 60년대 TV시리즈 <어벤져스>가 낳은 스타 배우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그의 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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