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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직 다시 선출된 감독 김수용
2002-06-28

˝<죽어도 좋아>는 성기 노출만으로 등급매기지 않을 것˝

김수용(73) 감독이 지난 6월7일 영상물등급위원회(등급위) 위원장으로 다시 뽑혔다. 지난 99년 그가 초대위원장을 맡은 뒤 임기 3년 동안 등급위를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등급위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의 상징과도 같았던 공연물윤리심의위원회(공륜)가 사라진 뒤 심의기구가 아니라, 적합한 관람연령대를 민간자율로 결정하는 기구로 탄생했다. 그 취지는 진취적이었지만, 등급분류를 보류함으로써 사실상 상영을 불허하는 등 관련법제는 아직도 표현의 자유를 막는 위헌적 조항을 지니고 있었다. 또 성표현에 관한 보수적인 시각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시민사회 내부의 제약요소가 되기도 했다.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을 계기로 이런 문제들이 불거져나온 뒤, 시민사회 내부의 논쟁을 거쳐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등급보류 위헌결정이 나오기까지 초대 등급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합의된 결론을 이끌어내기는 아직 힘들어 보인다. ‘표현의 자유의 확대’와 ‘시민사회의 폭넓은 공감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기가 무리한 상황이었고, 입법기구 아닌 실행기구로서 등급위의 운신의 폭도 그리 크지 않았다. <거짓말>이나 <아이즈 와이드 셧> 같은 영화에 대한 등급보류 판정으로 “이전의 공륜과 다를 게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 속 속어나 욕설의 허용치를 높이는 등 표현의 자유를 위한 나름의 노력도 있었다.

김수용 위원장은 그 3년 동안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어도 영화계로부터 개인적인 신뢰를 잃지 않았다. 자신이 감독한 영화가 52군데나 잘리고(<야행>) 상영이 불허되는(<도시로 간 처녀>) 고통을 겪으면서 “공륜 때문에 한국영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는 최소한 자기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자가 되는 건 원치 않는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그 말에 실린 무게감으로 인해 2기 등급위 구성을 앞두고 여러 영화제작자들이 그를 찾아와 독려했고, 위원장 선임투표에서 비영화인 출신 인사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다시 위원장이 됐다. 고희를 넘겼음에도 논리정연하고, 젊은 사람들과 술마시고 얘기하길 좋아하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2기 등급위 위원과 분야별 소위원회 위원들이 모두 선임됐는데 진보와 보수로 성향을 나눠 1기 때와 비교해본다면.

-→ 1기 때보다 진보화됐다고 볼 수 있다. 영화등급분류 소위원회의 조영각씨나 조혜정씨도 앞장서는 사람이고, 여성문화예술기획 운영위원인 임성민씨도 대단한 사람이다. 위원들 전체로 보면 한국에서 이런 구조조정도 없었을 거다. 58%가 새 사람이니 말이다. 이번에 구조조정도 했다. 영화분야 소위는 10명이었는데 9명으로 줄었다. 수입추천 소위도 8명에서 7명이 됐다. 견해가 갈릴 때 양쪽이 동수이면 문제가 있다는 감사위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1기 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 지난번엔 임기 중 한두 사람이 바뀌었다. 그 사람들이 비리시비에 연루됐다. 각 단체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하는 건데, 그때 검증된 사람을 추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난번에는 정치권에서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그림자가 없어 다행이다. 또 1기 때는 소위원회 위원 가운데 이 일을 여가선용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더라. 2기에는 이 일을 꼭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 모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1기 때 개혁을 내세웠는데, 게임분야의 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정부에서 제시하는 사행성이라는 잣대 때문에 아케이드 게임업계가 굉장히 위축됐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40%를 넘은 것에는 등급위에서 욕설이라든가 반윤리적인 내용까지 다 통과시켜준 게 일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게임에서도 표현 폭을 넓혀야 한다고 본다.

2기 등급위 활동에서 강조할 점이 있나.

-→ 영화에선 제한상영 등급과 관련된 내용을 확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제한상영관에 관련된 법률이 제정되면 정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게임분야에선 이번에 온라인 게임이 정통부에서 등급위로 이관됐다. 여기는 청소년 유해 요소가 굉장히 많은 곳이다. 전문가를 투입해서 온라인 게임의 발전이 저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엄격하게 청소년을 보호할 것이다.

아무래도 제한상영 등급의 운영에 관심이 간다. 현행 음란죄 조항이나 법원의 판례대로라면 포르노의 상영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제한상영관에서 틀 수 있는 영화의 범위가 모호하지 않은가.

-→ 준포르노 같은 것들이 될 텐데, 그게 활발하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같으면 제한상영관이 제대로 운영되길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국회에서 제한상영관 설치령이 어떤 모양새로 나오느냐가 문제다. <거짓말>이나 <노랑머리>가 처음 등급위에 제출됐을 때의, 수정되지 않은 상태를 고집한다면 그곳에서 상영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건 문제 아닌가. 헌법재판소가 등급보류에 위헌결정을 내렸을 때는 이전보다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라는 취지였다고 본다. 그런데 제한상영관이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이전에 등급보류 결정을 내렸던 그 기준 그대로 제한상영 등급을 매긴다면 이전과 달라질 게 없다고 본다.

-→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표현 수위가 높은 몇 군데 때문에 제한상영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영화에서 성기가 나왔다든가 하면 18세 관람가쪽이냐 제한상영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제작자의 몫일 것이다.

최근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죽어도 좋아>의 경우 성기노출이나 노골적인 성묘사가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맥락상 필요한 장면으로 보인다.

-→ 그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사실 내심 보기를 기다리는 상태다. 아직 18세 관람가 등급에서 성기가 노골적으로 나온 장면은 없었다. 영화 속 사진에서 나오는 경우는 있지만. 이 경우엔 18세 관람가냐 제한등급이냐를 놓고 격렬한 토론이 있을 것 같다.

음모나 성기노출은 무조건 안 된다는, 지금의 기준은 지나치게 기계적이다. 일본처럼 성기가 노출돼도 조도와 촬영 거리에 따라 다른 등급을 매긴다는 등의 세부적인 규정을 연구한다고 했었는데.

-→ 그런 규정을 지금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조명이 어둡거나 피사체와의 거리가 멀 때는 그런 느낌이 강요되지 않으니까 크게 문제삼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명문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문서화하면 명확해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것이 족쇄가 될 수도 있어 아직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또 작품성이 있는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나올 때라면 부득이하다고 고려하고 고민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닌 경우도 많다. 영화적 맥락이 아니라 상술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건 제재해야 하지 않나.

<아이즈 와이드 셧> 때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지우고 개봉하지 않았나.

-→ 이번엔 기대해도 좋다. <죽어도 좋아> 같은 경우엔 각 잡지, 신문에서 난 기사도 다 모아놓고 있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판단할 생각이다. 작품의 맥락 속에서 잘 표현됐나를 참조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엔 성기가 나왔다 안 나왔다는 식의 단순하고 기계적인 판단 대신 융통성을 발휘하겠다는 말인가.

-→ 그렇다. 이젠 이전 단계는 넘어서야 한다. 임기가 3년째이던 지난해부터 그런 대화를 많이 나눴다. 단지 여기에 해당하는 영화가 오지를 않았을 뿐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경우 주연인 이사벨 위페르의 자위행위가 너무 노골적으로 묘사됐다. 여자 위원들이 들고 나와 여자의 치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냐며 문제제기했다. 그런데 남자 위원들은 그게 자위 행위인 줄도 잘 모르더라. 결국 격론 끝에 다 나가게 됐다.

영화감독으로서 예전에 <철도원>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 그게 문제에 봉착했다. 후루하타의 신작 <호타루>를 봤더니 나와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 사람이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일제 시대의 색깔이 남아 있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입대한 한국인이 나오는데, 가미카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내가 대일본제국을 위해 죽는 줄 알았냐, 나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약혼녀를 위해 죽는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비행기에 태울 리가 있나. 이건 그냥 관념이다. 영화라는 것은 리얼리티라고 생각한다. 그냥 절박하게 사실을 파고드는 게 영화다. 형식면에서도 맞지 않는다. 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라든가 색채, 의상 이런 데 신경을 쓰는 스타일리스트인데 반해 그는 드라마를 만든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김수용 감독 회고전을 개최한다.

-→ 흑백영화 세편, 컬러영화 세편을 선정했더라. 그쪽 프로그래머가 <갯마을> <안개> <산불> <야행> <화려한 외출> <허튼소리>, 이렇게 상영하기로 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만선>이나 <사격장의 아이들> 같은 영화도 틀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내가 찍은 일본영화 <사랑의 묵시록>도 한국 사람이 일본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괜찮을 듯싶다.

신작 계획은.

-→ 지금 내 표정의 절반은 영화에 젖어 있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이야 도장 찍는데…. (웃음)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어렵긴 하겠지만 꼭 시간을 내서 영화를 찍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꼼꼼하게 구상을 마친다면 2∼3개월 정도면 못 찍겠나. 안정환처럼 멋지게 골든골 하나 넣으려고 한다. 영화를 안 찍는다고 해서 영화 만드는 능력이 녹스는 건 아니다. 세상 사람들 다 놀랄 만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난 아직 내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욕도 더 생기더라. 예전에 <안개> <까치소리> <산불> <화려한 외출> <야행> 같은 영화를 제작했고 60년대 문예영화의 산실 같은 곳이었던 태창영화사의 김태수 사장이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몇년 전 귀국해 다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임기가 끝나면 그분과 해외영화제를 염두에 둔 새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얼마 전 임권택 감독이 칸영화제 감독상 받은 것을 축하해 열린 파티에서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이 좋은 얘기 하더라. 영화는 논리와 의식으로 만드는 거지 늙고 젊은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국영화를 너무 젊은이들에게만 맡기지 말자고. 글 임범 isman@hani.co.kr,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