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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적 마케팅 주도하는 20세기폭스코리아 대표 이주성
2002-07-24

˝한국영화, 작품보다 제작자에게 투자한다˝

올해 2월 취임한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이주성(42) 대표는 여러 면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워낙 젊어 보이는 탓에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경영인일 거라 착각하게 되고, 홍보 행사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기 때문에 언론과 극장

등을 상대하는 실무자로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93년 이십세기폭스 홈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뒤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한우물만 팠던

마케팅 전문가다. 대홍기획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그는 마케팅을 더 깊이 배우기 위해 떠났던 일본 유학 시절 “일본어를 익혀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영화 대신 비디오만 보다가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한국에 돌아와선 스와치 마케팅을 욕심내기도 했지만 일이 무산될 무렵, 신문에

난 폭스의 직원모집 광고가 다시 한 번 마음을 움직였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이스 에이지> 등 막강한 블록버스터를

가졌으면서도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주성 대표. 그는 “처음 하는 영화마케팅도 어려울 것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폭스의 부흥을 예고했다.

이 대표가 책임을 맡기 전까지 폭스는 흥행 부진과 함께 온갖 악소문에 시달려왔다. 2000년과

2001년 직배사 중 시장점유율 최하를 기록하며 한때 한국지사 폐쇄설까지 나돌 정도였다. <혹성탈출> <빅 마마 하우스> <닥터 두리틀2>

등 눈에 띄는 영화들이 대부분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지 않았다는 점도 폭스를 압박했던 요인 중 하나. 그러나 이 대표는 기존과 달리 적극적이고

치밀한 마케팅을 도입해 팔리는 영화를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이전과 달리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같은 블록버스터는 애쓰지 않아도 흥행이 된다는 통념이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바뀐 것 같다.

직배사가 마케팅 전략을 주도했던 시절도 있었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마케팅도 직배사가 생기기 이전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2, 3년 사이 한국영화가 주도권을 빼앗았다. <집으로…>는 마케팅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없는 영화였고, <엽기적인 그녀>도 독특한 마케팅에 힙입어 관객을 끌었다. 그런 사례를 지켜보면서 블록버스터도 영화 자체로 승부할 것을 고집하기보다 영화에 들어맞는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폭스가 처한 상황의 특수성도 있다. <에피소드2>와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누구나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관객이 즐길 만한 포인트가 무엇인지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에피소드2>는 <스타워즈> 본래 시리즈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어렵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봉 뒤 추가 전단을 만들어 전작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철학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사전지식을 주고 논란을 주도할 것이다.

<에피소드2>가 수요일 저녁 9시에 개봉한 것도 새로운 생존전략의 하나로 보인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는가

극장이나 관객 반응이 모두 좋았다. 수요일 저녁에는 관객이 별로 없는데 전국 2만8천명 정도를 동원했으니까. <스타워즈> 마니아들이 몰려 코스튬 플레이도 했고. 하루 먼저 개봉했으니, 박스오피스 순위 결정할 때도 유리하지 않았을까?(웃음) <에피소드2>를 전야제 형식으로 개봉한 건 외국 사례를 참고한 경우였다. 외국에선 <스타워즈>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이 개봉하기 며칠 전부터 텐트를 치고 기다리지 않나. 이제는 한국에서도 어떤 영화를 남들보다 먼저 본다는 것이 자랑이 되는 풍토가 생겨난 것 같다고 판단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비슷한 방식으로 개봉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관객이 많지 않은 소규모 영화가 <에피소드2> 때문에 일찍 간판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어차피 평일엔 관객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그런 식으로 영화 보는 즐거움을 늘려간다면 결국 작은 영화의 관객도 증가할 것이다.

20세기폭스는 올해 매우 막강한 영화들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폭스 한국지사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설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해 흥행이 특히 좋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성탈출>말고는 이렇다 할 대작이 없었고, 그나마 <혹성탈출>도 흥행에 실패했다. 게다가 올해는 월드컵 때문에 <에피소드2> 개봉을 연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폭스 본사는 한국을 전세계 10위 안에 드는 큰 시장으로 판단하고 있다. 1, 2년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쉽게 폐쇄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하기는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영화와 비디오 부문을 통합했다는 것이다. 아직 법인으로는 분리돼 있지만, 사장이 같고 파이낸싱도 함께한다. 이런 변화를 시도한 까닭은 DVD 시장이 커지고 관객층이 넓어지면서 영화와 홈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졌기 때문이다. 전에는 젊은이들이 영화를 보고 30대 이상 나이든 관객이 비디오를 봤다. 이제 젊은이들은 이미 본 영화를 DVD로 다시 보며 새로운 재미를 찾고, 중년 관객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이 극장을 찾는다. 그 결과 영화와 비디오, DVD 배급이 점차 통합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렇더라도 지난해까지의 침체를 극복하려면 뭔가 활력이 되는 계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올해 들어온 영화들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마케팅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들이 많았다. 마케팅은 재미없는 영화를 재미있게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에피소드2>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렇고 추석에 개봉할 톰 행크스의 <로드 투 퍼디션>도 그런 영화다. 셀링 포인트를 확실하게 파악한 뒤 관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성공할 수 있는 영화들이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취임하고 곧바로 마케팅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지금 폭스 마케팅팀은 프로덕트 매니저 개념을 도입한 형태다. 한 사람이 모든 영화를 총괄하지 않고, 영화마다 책임자를 달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영화 각각의 장점이 살아날 뿐 아니라 서로 경쟁하고 보완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내부의 혁신이다. 외부에선 영화 보는 시선을 객관적으로 만들어줄 젊은 모니터 요원들을 영입했다. 폭스무비클럽이라는 것인데, 젊은 관객에게 영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고 나서 자막작업과 마케팅 컨셉 결정까지 함께한다. <에피소드2>를 그렇게 진행해보고 나니, 우리끼리 보고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성과를 가져온 것 같다.

93년부터 지난해까지 폭스 홈엔터테인먼트에서 일했다. 오랫동안 비디오 사업을 맡았던 경험이 지금 도움이 되는가.

처음 영화사업에 뛰어들면서 상당히 겁이 났다. (웃음) 영화 마케팅과 비디오 마케팅을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장점이다. 영화는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데 반해, 비디오는 점포나 영업사원을 상대로 마케팅을 한다. 업계에서는 이것을 ‘인스토어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이런 방식을 영화에 결합하면 아마 ‘인시어터 마케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관객뿐 아니라 극장을 대상으로도 홍보를 하고, 극장과 함께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하는 방식이다. <에피소드2>의 경우 DVD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해, 일부 멀티플렉스의 <에피소드2> 티켓을 가져가면 <에피소드1> DVD를 할인해서 살 수 있도록 했다. 관객과 DVD 구매자를 늘리면서, <스타워즈> 시리즈에 대한 인지도도 넓힐 수 있는 방식이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극중 범죄예방수사국인 ‘프리크라임’의 경찰 제복을 전시하는 이벤트를 극장 로비에서 열 생각이다. 시설 좋은 멀티플렉스에서, 여러 가지 이벤트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콜럼비아나 브에나비스타가 한국영화 배급 등에 관심을 보여온 것에 비하면, 폭스는 한국영화 시장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폭스가 시도하는 변화 중에 한국영화에 관한 부분도 들어 있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영화 한편에 투자하는 대신 장기적으로 파트너십을 쌓을 수 있는 제작자에게 투자할 생각이다. 몇년 전 대기업 자본이 대거 충무로에서 빠져나갔을 때, 직배사라도 빈자리를 메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비디오 판권 선구입을 통해 한국영화에 투자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폭스 본사는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고, 좀더 좋은 영화를 원하고 있다. 한국지사의 역할은 본사에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깨우치고, 본사가 투자할 만한 제작자를 찾고, 그 제작자가 마케팅 같은 업무에 신경쓰지 않고 제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아직 대작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 한국영화쪽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만, 올해 말부터는 공부를 시작할 생각이다.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폭스코리아의 대표이자 새롭게 영화사업에 뛰어든 경영자로서 꼭 이루고 싶은 야심이 있는가.

절대 흥행 못할 것 같은 영화를 흥행작으로 만들고 싶다. 직배사의 생존방식이란 건 한 영화에서 크게 터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흥행에 실패할 것 같으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설사 그런 영화를 배급한다 하더라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폭스가 배급한 <소년은 울지 않는다>나 개봉하고 싶었지만 비디오로만 출시하게 된 <웨이킹 라이프>가 그런 경우다. 하지만 극장 하나를 잡아 장기간 상영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번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 중 폭스서치라이트가 제작한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본 우리 회사 직원들이 젊은 여성들이 많이 공감할 만한 영화라고 하더라.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좋은 영화고, 꼭 극장에 걸고 싶은 영화다. <씨네21>이 도와주면 개봉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웃음) 이런 소규모 독립영화는 바로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다양한 선택을 제공해 관객층을 넓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직배사를 비롯한 영화산업이 살아남는 길이기도 하다.

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