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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전문 배급사 인디스토리 대표 곽용수
2002-09-04

˝배급통로, 영화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배급이냐? 보급이냐? 한때는 어떤 단어를 쓸 것인지가 논쟁이 되기도 했다. 독립영화를 정치적 무기라고 생각한 이들은 일반적인 상업영화에서 쓰는 ‘배급’이라는 단어를 혐오했고, 독립영화도 ‘독립’ 이전에 ‘영화’로서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은 ‘보급’이라는 단어에 참을 수 없는 어색함을 느꼈다. 하지만 충무로와 독립영화가 폭넓게 교류하고 있는 지금은 아무도 이런 말다툼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지금은 충무로 상업영화가 아닌 작품들을 어떻게 대중과 만나게 하는가만이 현실적 관심사일 것이다.

98년 인디스토리라는 회사가 생긴 것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독립영화 진영이 다다른 당연한 결론이었다. 이보다 앞서 미로비전이라는 영화사가 단편영화 해외배급의 선례를 남겼지만 좀더 폭넓은 독립영화 배급을 위해서는 전문 배급사가 요구됐던 것이다. 문화학교 서울의 초창기 멤버였던 곽용수(34)씨가 대표를 맡아 출발한 인디스토리는 지난 4년간 400여편의 작품을 축적하며 “그런 회사가 수익을 낼 수 있겠느냐”는 주위의 우려를 잠재웠다. 다양한 독립영화가 인디스토리라는 창구를 통해 상업적 유통망을 타게 된 것이다. 최근 이 회사는 장편영화 3편을 배급하기로 했다. 남기웅 감독의 <우렁각시>, 이지상 감독의 <둘 하나 섹스>, 이송희일, 김정구, 이지상, 유상곤 등 4명의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영화 <사자성어>가 그것이다. 일반적인 상업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편독립영화가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가와 관련해서 눈길을 끄는 대목. 단편영화 전문 배급사가 아니라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라는 타이틀을 내건 인디스토리로서는 지금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일 것이다.

독립영화를 이야기하면 늘 배급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예전 상황을 보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나 관련 기업의 투자를 기대하는 정도에 그쳤다.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배급하는 회사를 만든다는 생각은 언제 하게 됐나? 인디스토리를 만든 계기는 어떤 것인가.

98년 12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전문 배급사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오간 것은 그보다 1년 전이다. 독립영화협회가 생기면서 과연 독립영화 배급에 획기적인 대안이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독립영화의 축제인 인디포럼에 적극 관여했던 김윤태, 임창재, 김성숙 등 젊은 감독들과 독립영화가 좀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전문 배급사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런데 회사의 형태로 과연 실질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협회가 독립영화 배급을 떠맡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독자적으로 가는 것이 맞다는 결정을 내렸다. 처음엔 감독과의 친분과 신뢰로 출발했고 계약서라 해봐야 2장짜리였다. 1년간 과도적 형태로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는데 그 다음에 법인으로 전환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여러 곳에서 투자를 받아서 자본금 5천만원의 회사를 만들게 됐다.

98년 미로비전이 인디스토리보다 앞서 단편영화 배급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디스토리가 미로비전과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나.

처음부터 독립영화협회와 같이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를 모토로 내걸었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다큐멘터리든 애니메이션이든 가리지 않고 독립영화라는 큰 틀에 묶일 수 있는 작품을 배급한다는 것이 차이일 것이다. 실질적인 배급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독립영화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단편영화이고 국내 개봉보다 해외마케팅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처음부터 장편영화 배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게 문제였다.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장편영화 제작의 필요성도 느끼게 됐다.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4년 이상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의 수익은 어떻게 생기고 그것만으로 회사 운영이 가능한지 궁금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제가 가장 크다. 상금이 있고 클레르몽 페랑영화제에는 단편영화들을 파는 마켓이 형성돼 있다. 영화제나 각종 상영회, 다음에는 일반 영화들과 비슷하게 단계별 판매가 된다. 비디오, DVD, VOD, 방송 등이다. 이런 과정이 원활하면 그럭저럭 자체 운영이 가능할 정도로 수익이 생긴다. 99년, 2000년 2년 동안은 인터넷 VOD서비스 때문에 버텼다.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생기면서 제법 팔렸다. 하지만 2000년이 지나면서 인터넷 거품도 사라져갔다. 인터넷 영화관들이 에로영화로만 몰리면서 다시 어려워졌는데 지난해 KBS에서 <KBS독립영화관>을 만들어 안정적인 수입원이 생겼다. 단편영화는 아무래도 방영료가 가장 크기 때문에 회사 운영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프린트로 상영할 기회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영화제와 각종 상영회에서 트는 것인데 1달에 3∼4건 정도이고 여기서 생기는 수익은 크지 않다. 해외영화제에 소개되고 해외방송사에 팔리는 경우는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유럽은 방송사에서 단편영화에 상당한 지원을 한다.

인디스토리의 히트작이라면 어떤 영화를 들 수 있나.

민동현 감독의 <지우개 따먹기>나 이석훈 감독의 를 들 수 있다. 이송희일 감독의 <굿 로맨스>도 국내에서 반응이 좋았고 애니메이션 작품이 해외에서 잘 팔린다. 인디스토리 이름으로 DVD 출시를 한번 했고 앞으로도 단편영화 컬렉션, 애니메이션 컬렉션 등을 낼 계획이다.

감독과 인디스토리가 수익을 나누는 방식은.

국내에서 생기는 것은 6 대 4로 나누고 해외에서 생기는 것은 5 대 5로 나눈다. 영화제 상금의 경우는 감독에게 고스란히 간다. 그런데 단편영화는 상금이 가장 큰 수익원인 경우가 많아서 농담삼아 상금도 나누도록 계약을 했으면 인디스토리도 돈버는 회사가 됐을 텐데, 하기도 했다.

장편영화 배급은 지난해 1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가 처음인데 결과가 어땠나.

꽤 짭짤했다. (웃음) 하이퍼텍 나다에서 4주 정도 걸었는데 관객이 2400명 정도 왔다. 워낙 제작비가 적었던 데다 키네코 비용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받았기 때문에 감독이나 배급사나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극장 수익이 컸던 건 아니고 비디오 판권료만 5천만원이 넘어서 제작비가 충분히 빠졌다.

이번에 <우렁각시>를 비롯해 장편영화 3편을 배급하기로 했는데.

우리는 대단한 배급사다. (웃음) 충무로 배급사 중에도 한달에 3편을 배급하는 회사는 없지 않나? 8월30일 <우렁각시>, 9월19일 <둘 하나 섹스>, 9월27일 <사자성어>를 개봉시킨다. <대학로….>가 워낙 제작비를 조금 들인 영화여서 수익이 났던 반면 <우렁각시> <둘 하나 섹스> <사자성어>가 그럴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대학로…>에 비하면 몇배 제작비를 투자한 영화니까. <우렁각시>와 <사자성어>는 제작이 다 된 뒤에 우리에게 배급을 맡긴 경우이고 <둘 하나 섹스>는 문화학교 서울 시절부터 제작에 관여한 프로젝트다. 등급보류를 받은 다음 헌법재판소에 위헌신청을 해서 위헌결정을 받아낸,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다.

<우렁각시>나 <사자성어>의 경우는 제작과 배급이 완전히 별개로 이뤄졌다. <대학로…>도 마찬가지였고. 인디스토리가 전문 배급사이긴 하나 다른 데서 배급하기 어려운 경우에 찾아오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리 얘기가 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사실 일반 상업영화처럼 찍은 영화라면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독립영화로 제작하고 배급하겠다는 마인드가 별로 없으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다. <둘 하나 섹스>도 배급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처음부터 제작과 배급이 함께 가는 방향을 모색할 시기인 셈이다.

<둘 하나 섹스>는 등급보류를 받았던 작품인데 이번에 재편집을 해서 개봉한다고 들었다. 문제될 장면을 삭제한 것인가.

등급부여에 문제될 장면을 자른 것은 아니다. 극의 흐름상 거슬리는 장면을 들어냈고 재편집은 심의와 무관한 일이다. 재심의를 신청했고 며칠 뒤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화제가 됐던 작품이라 세편 중에 가장 대중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세편 외에도 장편영화 개봉계획이 있는가.

아직 결정된 것은 없고 내년 초에 일본영화 <허쉬>를 개봉할 생각이다. 외국 독립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일은 처음인데 구체적인 배급계획은 아직 못 잡았다. 제작에 대한 계획도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좀 늦춰질 것 같다.

영진위에서 전용관 설립계획을 발표했는데 전용관이 생기면 인디스토리가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겠나.

전국적으로 그런 극장이 생기면 좋겠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영진위에서 예전보다 독립영화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극장주들이 거기 부응할지 모르겠다. 일본의 경우엔 전국 순회상영을 하는 독립영화가 꽤 많은데 우리는 전국 순회상영을 하려고 해도 상영할 장소가 없다. 부산에 시네마테크 부산이 생겨서 <우렁각시>는 부산에서도 개봉하지만 그외의 지역은 아직 낙후한 상황이다. 전용관이 생기고 그것이 전국적인 체인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뤄져야 될 일이 전용관에서 상영할 다양한 작품이 나와주는 일이다. 어차피 독립영화도 작품으로 승부해야 된다. 금기를 깨는 작품들이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내면 배급도 따라가지 않겠나 싶다.

시네마테크인 문화학교 서울에서 오래 활동했는데 독립영화 배급사업을 하기까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궁금하다.

대학에서 노래패 활동을 했는데 노래로 먹고살긴 어려울 것 같았다. 졸업 무렵인 92년 가을부터 몇몇 사람들과 영화에 관한 공부를 했다. 짐 자무시와 레오스 카락스 영화를 보면서 토론하고 그러다 본격적인 시네마테크로 발전해갔다. 문화학교 서울의 초창기가 그런 식이었는데 같이 라면 끓여먹고 영화 보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젊고 화려한 시절을 문화학교 서울의 침침한 골방에서 보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만큼 열정적이었던 때도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토론하고 글쓰는 생활을 몇년간 계속했다. 95년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라는 책이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너무 오래하니까 매너리즘에 빠지는 듯했다. 96년 인디포럼을 개최하면서 독립영화 감독들과 교류를 했고 인디스토리 설립까지 이어졌다.

연출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아, 감독도 했다. 95년에 <새가 없는 도시>라는 작품을 찍었는데 민규동, 김태용, 정지우 같은 감독들이 그 무렵에 같이 단편활동을 했다. 두 남자의 외로운 모습을 그린 게이영화인데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때는 단편영화가 지금처럼 많이 만들어지고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던 때가 아니어서 인디포럼에서도 틀었다. 세편 연출해서 내가 감독의 길을 갈 수 있는지 판단하자고 생각했는데 <새가 없는 도시> 만들고나서 감독은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빚도 지고 부담스러웠다. 그뒤론 독립영화 배급에 복무하다 보니까(웃음) 연출할 기회가 없었다. 일단은 독립영화 배급의 시스템을 만드는 게 지금의 욕심이고 여유가 있으면 다시 연출을 하고 싶다.

아마도 인디스토리가 있어서 가장 좋은 점은 독립영화와 접촉하는 창구가 단일화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영화제든 방송사든 극장이든 감독이 직접 만나야 했는데 중간에 인디스토리가 있으니까 감독은 연출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단편, 애니메이션 합쳐서 400여편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창구 단일화 효과가 확실히 있다. 회사 입장에서 요즘 고민이 되는 것은 독립영화 가운데도 잘 팔리는 영화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실험영화나 지나치게 파격적인 영화는 배급통로를 확보하기 어렵다. 회사 수익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잘 팔리는 영화에 신경을 많이 쓰게 돼 초심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된다. 영화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배급통로를 모색하는 게 고민거리다.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