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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연애소설>의 이은주
사진 정진환최수임 2002-09-18

깡총한 머리 털털한 미소,오!은주

아무리 봐도, 이은주는 머리를 참 잘 잘랐다. <오! 수정>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그녀의 긴 검은 머리는, <연애소설>에서 싹둑 단발머리로 짧아져, 한결 가벼워지고 발랄해졌다. 머리모양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연애소설>은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한층 가벼운 영화로 보인다. 속내를 알 수 없게 응큼한 <오! 수정>의 수정이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군대 가는 남자친구를 배웅하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마는 비운의 여대생 태희에 비해, <연애소설>의 ‘경희’는 겉으로 보기엔 퍽이나 털털하고 숨김없고 밝다. 이은주의 출연작 중, 상대적으로 기가 덜 센 영화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같은 느낌은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서 바뀐다. 경희 역시 비운의 주인공임이 알려지고, 묘하게도 그렇게 되고난 영화 후반부에서 그녀의 머리는 다시 옛날 길이를 되찾는다.

단짝친구와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카페 종업원이 다가와 자신이 아닌 친구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고백을 할 때, 불쑥 “화장실 갔다올게요. 잘해보세요”라고 말하고, 나중에 셋이서 친구가 된 뒤에 남자에 대한 사랑을 느껴도 “나 너 좋아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의리있는 친구 역할에 머무르곤 하는 경희. <연애소설>에서 이은주의 캐릭터는 같은 출연배우인 다른 여배우 손예진에 비해 보이시하고 중성적이다. 여자로서 자신을 잘 내세우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캐릭터에서 그간 이은주의 전작들이 보여내지 못한 이은주의 또 다른 성격이 빛을 발하고, 그건 어쩌면 잘 알려진 그녀의 이미지보다 더 그녀답기도 하다.

“편한 사람 만나면 <연애소설>의 경희 같아지고, 어른들을 만나면 <오! 수정> 같아져요.” <번지점프를 하다>를 끝낸 뒤 “다음 작품에서는 무조건 머리를 자를 거다”라고 생각했다는 이은주는, <연애소설>보다 먼저 촬영을 했던 <하얀방>에서 진짜로 머리를 잘랐고, <연애소설>에서는 그것보다 더 깡충 올라간 길이로 머리를 한번 더 잘랐다. 그건, 그녀가 점점 더 편해진 것과 다르지 않았다. 데뷔작인 <송어>에서는 강수연과 설경구, <오! 수정>에서는 정보석과 문성근,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이병헌 등 주로 선배들(이은주의 표현에 따르면 “어른들”)하고만 일을 해왔던 이은주는, <연애소설>에서 비로소 자신보다 “네살밖에 안 많은” 차태현과 한살 적은 손예진과 함께 연기하면서 “노는 기분”까지 맛보며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배우로서 그녀를 많이 알린 작품 <오! 수정>은, 배우로서의 성과와는 달리 그녀 자신에게는 너무 일찍 찾아온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니.

“<오! 수정> 이후 저는 많이 달라졌어요. 뭐랄까, 많이 닫혔다고 할까요. 또래 아이들과는 뭔가 달라진 느낌을 갖게 됐어요. 어른들은 저렇게 사랑을 하나, 저렇게 뒷골목에서 여자를 꼬시나…. 전혀 그런 것을 몰랐던 저는 그때 고민을 많이 했고, 선배 연기자들하고 인생 얘기를 하면서 내 고민은 얘기해도 잠깐 동안의 슬픔의 전염밖에 안 되겠구나, 이런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도 저는 친구의 고민은 잘 들어줘도 카페에 앉아 수다로 고민을 털어내고 하는 것은 못해요.” <연애소설>은, 그렇게 ‘어른들’ 사이에서 어려워하던 이은주를 발랄하게 했다. 오히려 이번엔 그동안 영화에서 안 해본 밝은 연기가 스스로 어색할 정도였다고.

고등학교 때 교복모델로 뽑힌 뒤 학교드라마 <스타트>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시작한 이은주는, 영화 <오! 수정> <번지점프를 하다> 등에서 굳혀왔던 차가우면서 다소 복고적인 이미지를 <연애소설>에서 일상적인 털털함으로 확 바꾸고, 이어서 다음달 개봉하는 공포영화 <하얀방>으로는 이와는 또 다른, 공포연기의 서늘함을 드러내게 된다.

아주 예쁘기만 한 것도, 아주 이지적이기만 한 것도, 아주 차갑거나 아주 따뜻하기만 한 것도 아닌, 이은주의 얼굴은 마치 여러 각면을 지닌 보석 같다. 그 얼굴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여러 새롭고 복잡다단한 스토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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