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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만큼 고통스럽게, <중독>의 이미연

눈이 큰 사람은 겁이 많다고 한다. 이미연의 경우, 그녀의 큰 눈은 오히려 상대를 겁나게 한다. 어찌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는지, 말 한마디한마디가 가슴에 와 꼭꼭 박히는 것만 같다.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늘 제 인물을 사랑해요”라는 흔한 듯 귀한 말을 할 때도, 이미연은 그 큰 눈에 가득 힘을 실었다. 목소리마저 고통스런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처럼 비장했다. 인물에 대한 사랑은, 그녀에게 생각보다 많은 고통을 주고 있나보다.

<중독>은 이미연이 “지금껏 한 모든 영화 중 제일 힘들었던 작품”이다. 이미연은, <중독>에서 그녀가 “사랑”한 인물 은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혼이라는 것을 믿는 맑은 여자에요. 그런 여자이기 때문에 그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죠.” 사고로 남편이 의식불명 상태에 처했을 때 남편의 영혼이 빙의된 시동생의 구애를 끌어안는 여자 은수. 그녀를 연기하는 내내, 이미연은 자꾸만 “아니,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하면 빙의라는 것을 잘 믿지 않을 관객에게 은수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잘 시간이 주어져도 잠에 들지 못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모텔 선인장> <넘버.3> <여고괴담>부터 <물고기자리> <흑수선> <인디안 썸머> <중독>까지. 이미연은 1995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해도 쉬지 않고 쉴새없이 영화를 해왔다. 주변에서 영화말고 드라마를 하라는 소리가 왕왕댈 때도, 그녀는 그저 “영화가 좋아서” 영화에 더 마음을 주었다. “한이 맺혔던 것 같아요. 목이 말랐어요. 하고 싶어도 못 하던 때를 잊지 못해선지 해도해도 채워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중독>을 끝낸 지금, 그녀는 한 차례 쉬어가고 싶다고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근데 그게 고통스럽다. 즐길 만큼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박완서가 어느 소설 작가후기에 썼던 말로 요즘의 심정을 드러내는 이미연. 스스로의 목마름을 안고 계속 내달렸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미연은 “이제 그 고통이 즐길 만큼을 넘어선 것 같다”며, 스스로에게 여유를 선물하려고 한다.

그래서, <중독>은 한동안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다. “이 일은 정말이지 중독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라고, <중독>에 모든 혼을 뺏기고 헛헛해진 그녀는 말한다. 목마름이 다 채워져서는 아니다. 아직도 이미연은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입술을 지긋이 문다. 이미연에게, 여배우로서의 삶은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중독을 부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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