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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같은 눈망울 속 태양은 가득히, <친구>의 장동건

90년도 초반, ‘다슬이’ 심은하의 청순함과 함께 농구공을 튕기며 나타난 장동건의 젖은 눈동자는 별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별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브라운관을 수놓았고, 잠시 스크린 위에서 그 빛이 쇠락할라치면, 먼 베트남이나 중국의 하늘에서 몇 곱절의 광채를 띤 채 빛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광채 뒤에 숨겨둔 다른 모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걸렸다. 사람들의 찬사를 기대로 바꿔놓기까지.

“처음 찍은 영화 같았어요.” <홀리데이인 서울>부터 <아나키스트>까지 결코 적지 않은 영화를 찍었던 장동건은 서른의 첫해를 넘기며 찍었던 <친구>를 ‘첫 작품’의 마음으로 대했다. 개봉 전까지는 “상상 밖의 생일선물을 준비해놓고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이었다. 물론 드라마 <의가형제>를 통해 악역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지만 늘 ‘착하고, 멋지고, 잘생긴 장동건’이 삐딱한 눈매에 사시미칼을 휘두르는 부산깡패가 될 것이라는 데 내기를 건 사람이 몇명이나 되었을까? 저 길고 하얀 손이 누군가의 발목을 잔인하게 분지르는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저 송아지 같은 눈망울 아래 자리잡은 입에서 “확! 눈까리 파뿔라!” 같은 욕지거리가 나올까. 그러나 결국 우리가 틀렸다.

“나는 여기까지 입니다”라고, 장동건은 <친구> 촬영에 앞서 곽경택 감독에게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능력과 한계를 다 까발리고 시작했다. 그리고 눈앞을 드리운 긴 머리를 자르고, ‘동수’식의 건달옷을 입고, 굵고 치렁거리는 금목걸이를 걸치고 나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그럴듯해 보이더라고요, 왠지 동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어요, 처음에 뭔가 잘 돼간다 싶으면 나중의 것은 하나라도 망칠까봐 조바심 내보신 적 있으시죠?” 사투리 연기를 위해 감독이 녹음해준 테이프를 닳도록 들었고, 걸걸하면서도 나른한 건달의 목소리는 “아침부터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담배만 피우면서” 만들어냈다. 게다가 인물의 드라마가 비교적 잘 살아 있는 준석과 상택에 비해 동수는 불쑥불쑥 나타나다보니 자신이 출연하지 않는 부분에서도 “동수는 지금쯤 어떤 상태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 “오성이 형이 마약연기 하는 것 보고 굉장히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그게 ‘마약’이었죠. 감독님이 제가 약기운이 떨어진다 싶으면 오성이 형이 연기하는 장면을 슬며시 보여주곤 하셨으니까요.”(웃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주인공 아닌 역할을 해본 거였어요. 조연을 해도 될까 하는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이명세 감독, 안성기, 박중훈 선배님과의 작업은 분명히 얻을 게 많을 거란 생각에서 시작했죠.” 그리고 그해 청룡영화제가 <인정사정…>으로 내린 남우조연상은 장동건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같은해 아카데미에서 마이클 케인이 조연상을 수상을 하며 ‘수상은 했지만 진정한 승자는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제 기분이 딱 그랬어요. 하지만 그 상은 비중보다는 좋은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작업인가를 깨우쳐준 계기였어요. 그런 깨우침이 없었다면 <친구>의 동수도 될수 없었겠죠.”

개봉 5일 만에 전국관객 100만명을 넘어버린 <친구>의 흥행을 즐길틈도 없이 그는 현재 일본, 중국, 한국을 오가며 촬영중인 의 일정 때문에 바쁘다. “일본인 형사 역인데 대사의 80%가 일본어예요. 어휴, 부산사투리도 거의 외국어 수준이었는데. (웃음) <친구> 다음에 찍는 영화라 부담이 큰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이런 부담을 부담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돌리고 커나가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소녀들의 밤을 달래던 달콤한 별은 한낮의 태양을 꿈꾼다. 장동건은 지금, 새벽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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