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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어제 꿈에 보았던 예쁜 누나, <몽정기>의 김선아

왼쪽 팔뚝에 링거 주사 자국이 선연한 채로, 한강변을 맹렬히 달리는 여자와 마주친다면, 얼굴 한번 확인해볼 것. 마지막 촬영날, 스탭과 배우 모두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안겨준 뒤에, 화장실로 달려가 서럽게 통곡하는 여배우가 있다면, 누군지 이름을 물어볼 것. 한 자리에서 묻지도 않은 술 얘기를 다섯번도 넘게 하는 주당이 있다면, 한번 확인해볼 것. 당신, 혹시 김선아씨 아닌가요, 하고.

김선아는 그렇게 다방면에 ‘중독’기가 있는 듯 보인다. 운동에도, 사람에도, 술, 아니 술자리에도. 그런 취향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첫인상부터 마지막 여운까지 김선아는 담백하고 시원스럽다.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며 두눈 가득 찬바람을 뿜어내던, 수년 전 CF 속의 모습이 ‘사기’였단 뜻은 아니다. 카메라 앞에 선 김선아에게선 얼핏 예전의 그 차갑고 도발적인 그림자가 겹쳐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김선아가 취재수첩과 마주 앉을 때는 어김없이 ‘코믹 버라이어티쇼’를 펼치고 만다. 미안한 얘기지만, 개봉을 앞두고 밤잠을 못 이룬다며 이런저런 걱정 근심을 털어놓는 품새조차 코믹하다. “<몽정기> 보셨어요 어땠어요 나, 발음 괜찮았어요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으셨어요 나, 너무 예쁜 척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휴우, 다행이다.” 의도하거나 계산하지 않고도, 보는 이를 미소짓게 하는 힘이, 김선아에겐 있다.

그래서일까. 성장코미디 <몽정기>에 출연한 김선아는 ‘물 만난 고기’ 같다. 김선아의 역할은 남자 중학교에 교생 실습 나온 대학생 유리. 학생들의 성적 판타지 속에서 가죽 속옷 차림으로 채찍을 휘두를지언정, 현실에선 학생 때부터 연모해온 노총각 선생의 마음을 공략하려드는, 순정적이다 못해 숙맥에 가까운 아가씨다. 학생들의 환상은 노골적이고, 유리의 현실은 애절하지만, 김선아는 이 두 세계를 천연덕스럽게 넘나든다. “환상과 현실은 별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유리는 맹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예쁘고 순수하게 그리고 싶었구요. 그래도 로맨스 부분이 잘 살아서 다행이에요. 아쉬운 점이야 일일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죠. 살 좀 뺄걸, 후회도 되고. 에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죠, 뭐.”

말은 그렇게 쉽게 하지만, 김선아는 한 작품 끝날 때마다 심하게 앓곤 한다. <예스터데이> 때도 <몽정기> 때도 그랬다. 긴장이 풀리면서 시름시름 앓게 되는, ‘신경성’ 몸살 증세. 그러면서도 촬영하고 개봉하는 과정의 설렘과 긴장과 불안과 희열 같은 것들을, 당분간은 더 만끽하고 싶다고 말한다. “친근함이 좋아서 팬이 됐는데, 왜 TV에 안 나오느냐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반응에 연연하지 않으려구요. 제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되면 안 되잖아요.” SF액션과 코미디에 이은 다음 행선지는, 아직 정해두지 않았다. “미스터리스릴러를 좋아하긴 하는데, 사람들이 웃으면 어떡하나, 걱정이에요. 좀 이른 것 같기도 해요. 천천히, 마음의 여유, 시간의 여유를 갖고 생각하려구요. 지금은요 다른 생각이 전혀 안 나요.” 도톰한 입술이 불끈 힘을 주고 있었다.

사춘기 저는, 유리나 병철쪽에 가까웠던 거 같아요. 중학교 때 짝사랑 때문에 잠 못 자고 그랬어도, 그앨 만지고 싶다거나, 몸을 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못했거든요. 그냥 목적없이 좋아서 미치는 거죠. 혼자 울고불고. 순수했던 시절이죠. 그땐 TV에서 키스신만 봐도 숨을 데 찾고 그랬는데, 지금은 능구렁이가 다 돼서, 좀더 진한 거 없나, 그런다니까요. (웃음) 사람의 이성에 대한 관심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방법,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출세기 모 선배가 저한테 그러시더라구요. CF 2편(남성 화장품과 피자)으로 5년 버틴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크게 히트한 작품 없어도, 네 얼굴 모르는 사람 없지 않냐고. 칭찬인 것 같기도 하고, 욕인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대요. 그럼 그동안 내가 했던 드라마나 쇼나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얘긴가, 싶기도 하고. 그 이미지 때문에 영화로 오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실은 첫 CF 촬영한 직후에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었어요. 성격이 이렇다보니, 언젠간 ‘뽀록’날 것 같아서, 좀 불안했는데, 그렇다고 감추거나 포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모습도 내 안에 있으니까 나올 수 있었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죠.

정착기 미국 유학(피아노 전공) 중에 CF 찍고 나서 발이 묶여 못 나갔어요. 계약 때문에요. 관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매니지먼트사에 들어가고, 그러다보니까 더 갈 수 없게 됐구요. 그러면서도 못다한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있었어요.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지요. 연기가 재미는 있었는데,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스타가 되야겠다, 그런 마인드는 안 생기더라구요. 2년 전쯤 일요 아침드라마 하면서 처음으로 이 작업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됐어요. 그동안은 사람들이 저보고 연기 못한다고 해도 안 들렸거든요.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쯤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싶더라구요.

성장기 <예스터데이> 캐스팅되고 나서 무술 연습에만 대여섯달을 투자했어요. 뭐 하나 제대로 해 보겠다고 그렇게 노력하는 제 모습이 좋더라구요. 술 한번 입에 안 대고(흠칫 놀라며 ‘앗, 또 술 얘기했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내 모습이 뿌듯하고 신기하더라구요. 아직 경험도 없고, 부족한 것도 많아요. 한 군데 멈춰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지도를 높이는 차원이 아니라, 배우로서 나를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요. 긴 시간 두고 발전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구요 저두… 레드 카펫 한번 밟아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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