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 베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몬스터 볼>은 아주 많이 고약한 사랑의 이야기다. 사형수의 아내로서의 오랜 삶. 결국 남편을 보내고 이어 아들까지 사고로 잃은 뒤 겨우 기댈 만한 어깨를 찾게 되나 그 사랑이 바로 남편의 사형을 집행한 사형집행관이라는 비현실적인 스토리. 너무나 고약해서 작위적인 설정으로 보이는 사랑이지만, 할리 베리는 그 속에 피부에 닿을 듯한 눈물과 한숨의 감촉을 불어넣었다. “래티샤의 고통이 이해하기 힘들 만큼 나 자신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말 뒤에는 그녀 자신이 겪어온 녹록지 않은 삶이 숨어 있다. 병원 보조원이던 아프리칸 아메리칸 아버지와 전직 정신과 간호사였던 코카서스계 어머니 아래서 태어나 4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유색여성으로서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받기까지 그 굴곡많은 길.

할리 베리의 공식 사이트 이름은 ‘할리우드’(Hallewood)다. 그러나 베리의 이름 ‘할리’는 ’할리우드’(Hollywood)에서 힌트를 얻어 지은 이름은 아니다. ‘할리’는 그녀의 고향인 클리블랜드에 있는 백화점 건물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작은 마을에서 가장 화려한 그 무엇의 상징이었을 백화점의 이름을 갖고 자라난 베리는, 과연 이름대로 십대 시절부터 미인대회에서 입상을 하며 타고난 미모를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내세웠고, 미스 유에스에이 무대를 통해 연예계에 입성했다. 미인대회 출신의 모델이자 TV시리즈 연기자였던 할리 베리에게 첫 영화는 스파이크 리의 <정글 피버>였다. <정글 피버>에서 베리는 마약중독 여성 비비안 역을 위해 실제로 1주일간 몸을 씻지 않아 촬영장에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뒤 에디 머피와 공연한 <부메랑>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등에 출연했고 우리나라에는 <엑스맨>의 ‘스톰’과 <스워드 피쉬>의 ‘진저’로 제일 많이 알려졌다. <몬스터 볼>은 250만달러의 개런티를 받았던 <스워드 피쉬> 이후 그녀가 십만달러를 받고 출연한 독립영화다. 그리고 그 작품으로 베리는 오스카 트로피를 쥐었다. 베리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는 유색여성으로서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배우 도로시 댄드리지. 1999년 그녀는 댄드리지의 삶을 그린 HBO 영화 <도로시 댄드리지 소개하기>에서 연기는 물론 제작까지 맡았는데, 얼마 안 있어 댄드리지가 이루지 못한 수상을 이뤄낸 것이다. 와 <엑스맨2>로 다시 스튜디오영화로 복귀했지만, <몬스터 볼>은 그래서 할리 베리에게 가장 소중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한국 홍보의 일환으로 그녀가 응한 전화인터뷰도, 그래서 다시 한번 <몬스터 볼>이 그녀에게 준 의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몬스터 볼>, 그리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그날 이후 삶이 바뀌었고 내 믿음이 더 새로워졌다. 오스카 상은 나뿐 아니라 영화계의 모든 유색여성들이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급한 마음이 든다. 유색여성으로서 다른 유색여성을 위하여 그들이 더 열심히 꿈을 꾸게 하도록 돕고 싶다.

래티샤, 화려한 배우, 초라한 배역: 나는 보기와 달리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래티샤의 어려움을, 그녀의 영혼 속의 고통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 흑인으로서의 어려움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섹스신: 정사장면도 다른 장면들과 똑같이 임했다. 따로 준비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 장면에서는 섹스나 누드신 자체보다도 중요한 많은 의미가 있다. 영화에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 때문에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 보여줄 수 있었고, 관객의 입장에서도 둘이 결합되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었다.

독립영화: 인디영화는 예술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주제와 상관없이 보장하는 장점이 있다. 스튜디오영화에서는 <몬스터 볼>처럼 곤란한 이슈는 기피하게 된다. 그렇지만 상업성에서는 스튜디오영화가 훨씬 더 뛰어나며,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관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양쪽은 다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두 영화에서 다 날카롭게 기술을 연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