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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 등 일본 배급한 씨네콰논 대표 이봉우
2002-11-06

˝한-일 공동 기획,배급,마케팅 준비가 필요하다˝

불과 3년 전인데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1999년 <쉬리>가 일본에서 전국 100만명을 돌파한 사건. 한국영화는 그때 일본에서 뭔가 거대한 시장을 발견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쉬리> 이후 많은 영화들이 100만달러 넘는 가격으로 일본에 팔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한국에서 수많은 일본영화가 극장을 잡지 못해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만이 이름값을 했을 뿐 일본에서 한국영화는 여전히 마이너리티에 머물고 있다. <쉬리>의 성공은 단지 운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영화의 매력이 이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10월29일 ‘한민족 문화공동체대회’ 참가차 방문한 일본의 영화사 씨네콰논 대표 이봉우(43)씨를 만난 것은 그런 궁금증 때문이다.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를 배급한 그는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그는 올해 김대중 납치사건을 소재로 <케이티>를 제작해 한국의 극장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94년 <서편제>부터 한국영화를 수입, 일본 시장에 소개하는 일을 했던 이봉우씨는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를 만들었던 그 사람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의 영화교류에 관해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만큼 그의 말에는 한국의 영화환경을 보는 또 다른 시선이 들어 있다.

<쉬리>가 일본에서 성공하면서 한국영화는 일본을 중요한 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를 끝으로 일본에서 한국영화의 인기는 사그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나

→ <쉬리> 이전에 <서편제>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한국영화로 처음 배급해서 성공한 영화가 <서편제>였는데 전국관객 10만명을 조금 넘었다. 이전까지는 <씨받이>가 최고였는데 전국 3만명 수준이었으니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때 이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은 평론가들에게 많이 보여주지 않고 음악평론가나 가수 위주로 영화에 대한 소문이 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한국영화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했던 것이다. 음악하는 사람들을 통해 영화에 대한 소문이 나고 입소문이 전국 10만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쉬리>가 성공한 이유도 오락영화로서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케팅이 크게 작용했다. <쉬리>를 하면서는 한국영화라는 사실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고 평론가들에게도 먼저 보여주지 않았다. 영화평은 안 좋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대신 강제규 감독 또래 감독들에게 영화를 보여줬다. 젊은 감독들에겐 <쉬리>가 큰 자극이 됐고 입소문이 나게 마련이었다. 동경영화제 상영도 오락성이 강한 영화를 모아서 트는 특별전쪽으로 진력했다. 그러나 영화제쪽에서 조총련쪽의 반발을 걱정해 특별전에 포함시키지 못하고 특별상영을 했다. 그런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결국 1천석 극장에서 상영하는데 1800명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고 극장상영에서도 성공했다. <서편제>나 <쉬리>나 일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던 것은 그것이 기존 일본영화나 할리우드영화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영화라는 점이다. 마케팅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서 새로운 시도를 했고 한국영화가 궁금해서 본 것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영화라는 점이 어필했던 것이다. 하지만 <쉬리> 이후 한국영화가 많이 들어오면서 일본 관객도 그게 진짜 새로운 무엇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관객이 한국영화에 원하는 것은 일본영화에 없고 유럽이나 할리우드영화에도 없는 독특한 면이라고 생각한다.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등도 개봉했지만 <쉬리>만큼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친구>는 일본판권 가격이 200만달러를 넘어서 일본 시장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으로 아는데 만족스런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 같다.

→ <공동경비구역 JSA>는 전국관객 60만명 정도를 동원했다. 영화가 갖고 있는 조건을 고려하면 최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인데다 총격전의 스펙터클도 많지 않은, 화려하지 않은 영화로서 그 정도는 대단한 성공이다. <친구>는 전국 20만명 정도 들었다. 영화의 힘으로 보면 50만명까진 가능할 것 같았는데 일본 관객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조폭마누라>나 <화산고>도 150만달러 이상 가격을 받은 걸로 아는데 이제는 분위기가 <쉬리> 때와 다르다.

최근 한국 상황을 보면 수입해놓고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일본영화 프린트가 상당수 있다. 일본도 비슷한가

→ 창고에 있는 영화들이 많다. 당장 나만 해도 창고에 있는 한국영화가 꽤 있다. 이제 그냥 한국영화라고, 일본영화라고 보여주는 단계는 끝나지 않았나 싶다. 다음 단계로 한발씩 옮겨가야 한다. 기획, 배급, 마케팅을 두 나라가 처음부터 함께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의 영화교류에 있어 새로운 단계가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 아직 밝힐 수 없는 단계지만 한국감독을 기용해서 100% 한국에서 찍는 영화도 기획하고 있다. <케이티>로 경험을 쌓았으니까 한걸음 더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다.

씨네콰논에서 제작한 <케이티>나 지난해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고> 같은 작품은 본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이 어느 정도 힘을 합친 결과물인데 두 영화 모두 한국에선 흥행에 실패했다.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 두 작품 모두 애초에 합작으로 준비한 영화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일본영화인데 제작비나 배우, 스탭 일부에 한국이 참여한 형태였다. 일본영화라는 개념이 앞서는데다 <케이티>는 한국이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나라라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배급도 문제였다. 배급환경이 일본과 달라서 단관개봉 형태로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영화였는데 극장을 제대로 잡지도 못했다.

올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외화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다음 가는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최근 <비밀>도 비교적 호응이 있었고. 전반적으로는 일본영화가 한국에서 개봉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지만 나름대로 흥행하는 영화는 있는 셈이다.

→ <비밀>이 어느 정도 흥행한 걸 보면 한국에서 일본영화가 시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밀> 정도 영화는 일본에 매우 많으니까 가능성은 아주 많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애니메이션이지만 그것 역시 일본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조금씩 관객을 키워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본영화와 한국영화를 비교한다면, 산업적인 면에 국한된 이야기가 되겠지만, 한국에는 있는데 일본에는 없는 어떤 것, 혹은 반대로 일본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 일본영화에 없는 것은 무엇보다 기획력이다. 80년대에 3대 메이저 스튜디오가 제작과 배급을 독점했기 때문에 기획이라는 것이 고정돼버렸다. 도에이는 야쿠자영화, 쇼치쿠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 식인데 싫증이 날 수밖에 없다. 영화계의 주류가 이런 식이니까 기획력이 떨어지고 기획력이 떨어지면 관객은 멀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반대로 한국영화에 비해 일본영화가 갖고 있는 장점은 스튜디오에서 자란 기술자들이다. 이런 기술자들의 우월성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것인지가 일본영화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일본에는 작가는 많다. 하지만 작가들의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이런 기술자들이 필요한 법이다. 한국영화는 기획력이 있다. 젊은 프로듀서와 감독들이 그런 면에서 큰 힘이다. 영화로 할 만한 소재도 많다. 남북문제뿐 아니라 여러가지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부족한 점을 꼽으라면 진실된 의미의 프로페셔널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기술 분야에서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성장한 일본 기술자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최근 한국영화계가 안고 있는 고민거리 중 하나는 대중이 몰리는 특정 장르만 제작이 편중되는 현상이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심하게 떨어져도 흥행하는 코미디가 많고 그러다보니 비슷한 기획이 양산된다.

→ 그런 면에선 일본영화가 다양성이 있다. 특정 장르에 고정되는 것은 좋지 않다. 한국영화에도 개성있는 작가나 영화가 있지만 그 수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흥행한 코미디 몇편을 봤는데 그런 영화가 전국 300만명 이상씩 든다는 사실이 놀랍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를 찾는 관객은 꾸준히 영화를 보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보는 관객이 영화를 꾸준히 볼지는 의문이다.

반면에 <쉬리> 이후 제작비 규모가 큰 작품들, 흔히 한국형 블록버스터라고 부르는 영화들이 많이 기획됐는데 다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금 한국의 주류 영화계의 당면한, 동전의 양면 같은 고민이다.

→ 제작비가 큰 대작은 결국 합작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기획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시장규모를 과대평가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 한국영화가 100만달러 이상 받고 일본에 팔렸지만 이제는 또 다르다. 그 정도 금액을 받는게 간단치 않은 일이라 대작은 합작이 아니면 기획 자체가 힘들 것 같다.

내년에 배급할 한국영화가 있는가

→ <오아시스>를 배급할 예정인데 이 영화는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의 1/6이나 1/7 정도 가격에 샀지만 굉장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서편제>를 처음 샀을 때 같은 기분이 든다. 어쨌든 성공시켜야 된다는 압박감도 있고 기대도 크다. 만약 이 영화가 흥행한다면 일본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은 다시한번 바뀌지 않을까 싶다. <오아시스>는 일본의 배우들한테 먼저 보여줄 생각이다. 배우들에게 큰 자극이 될 것이고 그것이 마케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도 최근 본 한국영화 가운데 <오아시스>가 가장 좋았다.

아시아 영화가 하나의 블록을 형성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제작자들이 꽤 있다. 홍콩의 진가신 감독이나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씨 등이 그런데, 당신은 어떤 입장인가

→ 억지로 할 필요는 없고, 맞는 사람끼리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의도도 알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한번도 잘 된 예가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이런 얘기가 최근에 부각된 것도 아니다. 이미 20~30년 전부터 일본이나 홍콩의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시도가 있었다. 당장 유럽을 모델로 진행해서 될 일은 아니고 한발씩 나아가야 될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은 행복한 영화환경을 가진 나라다. 감독 데뷔가 이만큼 쉬운 나라는 거의 없다. 최근엔 정부의 지원도 잘 되는 것 같고 거품이 빠지고 있다지만 투자도 원활한 편이다. 한국의 영화인들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다.글 남동철 namdong@hani.co.kr,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