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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의 성적호기심 그린 <몽정기>감독 정초신
2002-11-13

˝시나리오 쓸 때부터 관객을 생각한다˝

정초신(40)은 평단보다 관객이 반긴 감독이다. 데뷔작 <자카르타>가 평단의 비판, 내지 유보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크게 히트했고 두 번째 영화 <몽정기>도 흥행예감이 좋다. 영상이나 이야기의 세부장치가 거칠어도 그냥 밀고가는 그의 연출은 아직은 ‘웰 메이드’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대중이 감응할 만한 요소들은, 그게 상투적일지라도 놓치지 않고 방점을 찍는다. <몽정기>는 막 성에 눈뜨기 시작해 몸이 먼저 아우성치던 ‘몽정기’, 내지 ‘발정기’의 추억을 환기시키는 영화다. 그 방식은 익숙한 것이지만, 자칫 외부와 충돌하기 쉬운 소년들의 불안한 성욕을 보기 편하게 영화 속에 녹여내는 모습이 밉지 않다.

<몽정기>까지 히트한다면 정 감독은 몇 안 되는 흥행감독 대열에 들어설 게 분명해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간첩 리철진> <달마야 놀자>를 제작한 씨네월드가 2년 가까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역사코미디 <황산벌>의 감독으로 그를 낙점했다. 대중과 눈을 잘 맞추는 그의 비결은 뭘까. 정 감독은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걸 취하는 그만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나름의 확신이 있는 듯했다.

그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뒤 미국 USC에서 제작과 연출을, 뉴욕대학에서 선동영화를 공부했다. 선동영화란 그의 표현으로 “영상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세뇌시키는 방법에 대한 공부”였다. 그 공부가 “대중의 호흡을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귀국한 뒤 연출부로 가지 않고, <귀천도> <미스터콘돔> <엑스트라> 등 5편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영화가 감독보다 프로듀서의 것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공부한 탓에 프로듀서의 꿈을 가지고 돌아왔으나, 98년 <엑스트라>가 몬트리올영화제 갔을 때 “영화가 감독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걸” 알았다. 그때 찾아온 “허전함”에 못 이겨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자카르타>는 무척 빨리 찍은 것으로 아는데, <몽정기>는 얼마나 걸렸나.

→ 32회 촬영을 나갔다. 7월17일부터 9월30일까지 53일 걸렸다. <자카르타>는 20회 56일 걸렸다. <자카르타>는 찍고나서 다 합하니까 93분30초 나왔다. 두컷 덜어내니까 시간이 모자랐다. 더 덜어내고 싶은 게 있는데도 러닝타임 때문에 못 덜어냈다. 그래서 <몽정기>는 조금 많다 싶게 찍었다. 다 합하니까 121분이었고 여기서 26분 덜어냈다.

<몽정기>는 중간에 감독이 바뀌면서 맡았는데, 시나리오는 원래대로 가져갔나.

→ 애초 지난해 1월에 이 시나리오를 받아서 찍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감독이 거의 동시간대에 오케이를 해서 메가폰이 그리로 넘어갔다. 그래서 다른 영화 <남남북녀>를 준비하고 있는데 <몽정기>를 연출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엎어진 영화 중간에 왜 들어가냐”며 주변에서 말리는 소리가 많았지만 잘 만들면 되겠지 싶었다. 가보니 그때까지 12회 촬영을 한 상태였다. 이미 촬영한 것 중 오프닝의 한 장면 빼고 다 다시 찍었는데, 시나리오의 큰 틀은 그대로 가져갔다. 다만 내가 찍는 방식으로 수정을 했다. 분량이 내가 받을 때 125페이지였는데 그걸 85페이지로 줄였다. 그 많은 얘기를 다 담기 불가능하다고 봤다. 메인 캐릭터만 남기고 나머지 디테일은 들어내고, 남은 캐릭터들도 조정하고.

각색이나 연출의 주안점은 어디에 뒀는가.

→ 시나리오 보고서 내 중학교 때 생각이 났다. 그때 교생에 대한 기억은 잘 안 잊혀지는 것이고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교생이 다녀가는 한달. 그 한달이 중학교 때 제일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 한달 동안의 성적 성장기라면 가벼운 코믹터치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교생과 담임선생님과의 사랑 코드도 좋았고.

중학생 역을 맡은 네명의 배우들이 다 신인인데, 연기는.

→ 처음엔 암담했다. 연기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것 같은데, 문제는 넷의 발음과 호흡이 다 똑같았다. 애들 대사 읽는 걸 들어면서 조감독한테 그랬다. 너 눈감고 들어봐라, 누가 누군지 구별이 가냐고. 3∼4일 동안 대사 외워오도록 시킨 뒤에 계속 다시 가르쳤다. 조감독이 매우 힘들었을 거다. 석구 역을 맡은 애는 그중 나았다. 걔를 그대로 두고서 나머지 셋을 바꿨다. 한명은 대사를 대폭 줄였고, 나머지 둘의 대사칠 때 억양, 호흡을 차별화해서 가르쳤다. 또 하나의 문제는 17∼22살인 얘들에게 80년대의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터넷 세대이고, 성도 거기서 접했을 테고. 참외나 철봉 이용해서 자위하는 따위의 기억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도 그냥 하라고 강제주입식으로 시켰다.

참외, 철봉은 이해가 가도 컵라면은 조금….

→ 참외, 철봉, 컵라면 이용해서 자위하는 장면은 관객이 힘들어하겠다 싶은 걸 일부러 넣었다. <몽정기>라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가 있고, 그에 따른 관객의 기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홍합을 너무 클로즈업시킨다든가 하는 건 피했고, 15살 등급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나중에 몇 부분 잘랐다. 컵라면은 물을 붓고, 물이 거의 없어질 만큼 불었을 때 ‘사용’한다는 건데, 시나리오에 있던 걸 그대로 살렸다. 다만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관객이 영화보면서 썰렁해하더라.

<몽정기>를 보면 엉성하다 싶은 장면을 쉽게 잘 넘어간다. <자카르타> 때도 조금 그랬던 것 같고. 깔끔하게 잘 만든, ‘웰 메이드 무비’에 대한 집착이 덜한 것 같다.

→ ‘웰 메이드’까지 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다. 조명 같은 것도 더 신경써서 배치하고. 감독으로서 잘 만들고 싶지 않은 게 있겠냐마는 예산문제, 개봉 시점 그런 걸 고려하는 편이다. 또 내가 연출부 생활을 해본 것도 아니고, <자카르타>는 연출부 막내로, <몽정기>는 세컨드로 배운다고 생각하고 했다. 내가 영상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미숙하다. 시간이 더 있다고 해서 잘 만들 것 같은 구력이나 공력이 없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 한편 한편 만들어가면서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건 놓치지 않고 살리는 것 같다.

→ 감독이 관객과의 결투에서 이기려면 관객을 잘 이해해야 한다. 나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극장에 앉아 있는 관객을 생각한다. 돈을 내고 극장에 들어온다 → 자리에 앉는다 → 예고편 본다 → 영화가 시작되고 긴장이 생긴다 → 10분 안에 그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 20분 지나면 약간 지루해지고 30분 뒤면 일부는 가수면 상태에 들어간다 → 그때 한번 자극을 줘야 한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계산한다. 러닝타임 100분을 4등분해서 타임테이블을 만들고 관객의 감정곡선을 그려본다. 그래서 관객과 호흡은 잘 맞춘다고 생각한다.

<몽정기> 같으면 호흡을 어떻게 맞추려 했는지.

→ 처음 시나리오는 도입부에 관객이 잘 모르는 중학생 4명이 나와서 한참을 끈다. 이범수가 5분 지나, 김선아는 10분 지나서 나온다. 그러면 관객이 짜증낼 것 같았다. 그래서 앞에 있던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확 줄이고, 중요한 대사는 중간으로 밀어넣었다. 또 이 영화의 유머 중 가장 비중이 큰, 석구가 여성 성기를 지칭하는 말만 들으면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시작 뒤 30초 안에 넣어서 웃음을 유발시키도록 했다. 또 영화 중간이 조금 지나면 5분 정도 쉬는 시간을 줘야 한다. <몽정기>도 그랬다. 그동안은 커트도 안 넣고. 할리우드영화들도 대체로 이걸 지킨다. 돈 많이 들어간 영화는 예쁜 화면을 보여주면서 쉬게 한다. 그리고 75분쯤에서 다시 감정선을 자극하는 걸 넣어야 한다. 그걸 지나면 엔딩 부분 10분 빼고 15분 정도 남는다. 거기서 두번 정도 웃겨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호흡 때문에 눈까다로운 평론가나 기자들에게 질이 낮은데도 쫓아갈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준 것 아닌가 싶다. 아직 잘 만들지 못하니까 스토리라인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부담도 많이 있고. 내세울 만하다 싶은 게 그런 호흡 정도다.

한편한편 찍으면서 조금씩 배우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했는데, 실험을 크게 해보고 싶은 욕심은 안 생기는가.

→ 실험은 틈틈이 한다. <몽정기> 때도 중학생들이 여관 건넛방에서 훔쳐보는 모습을 유리판에 대고 비비는 식으로 찍은 건, 내 고집이었다. <자카르타>에서도 인물들이 서로 거짓말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180도 가상선을 수시로 넘었다. 그렇게 조금씩 해보지만 많은 실험은 부담이 크다. 관객도 부담스러울 거고. 특히 <몽정기> 같으면 특별한 철학 같은 걸 담을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렇지만 내가 가벼운 코미디만 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시나리오를 쓴 스릴러 <비트겐슈타인>은 하려는 이야기가 많은 복잡한 구조다. 세상을 보는 내 시선과 철학이 깊이있게 생긴다면 또 그걸 담는 영화를 할 거다. 그런데 가벼운 영화만 만들다보면, 나중에 무거운 것 하겠다고 했을 때 제작자들이 “너는 그 과 아니야”라고 할까봐 좀 걱정이….

다음 영화는.

→ 걸려 있는 게 많다. <비트겐슈타인>도 펀딩이 안 돼 지연되고 있고, 사이더스가 관여하는 <남남북녀>도 비슷한 상태다. 지금은 시네마코리아의 창립작품으로 준비 중인 <명동 신상사>부터 찍게 될 것 같다. 시네마코리아를 세운 주종휘와 초등학교 동창이다.(주종휘씨도 이날 인터뷰 자리에 함께 왔다.) 주종휘가 시나리오 쓰고 내가 각색했다. 명동 신상사는 지금 71살의 실제 인물로 마지막 남은 건달이다. 그분 얘기로 50년대의 조폭 싸움은 애들 개싸움 같았다고 했다. 여차하면 도망가고 벽돌로 머리치고. 그러니까 치기어린 건달이었다는 것이다. 명동 다방에서 문인들 만나면 예우를 깍듯이 갖추는 조금 낭만적인 데도 있고. 실제로 이중섭이 술잔을 자기에게 던졌을 때도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자리 가서 마시죠” 하며 조용히 나왔다고 했다. 그런 낭만과 코믹한 코드, 50년대의 가난에다가 <오델로>를 번안해서 질투와 살인, 슬픔을 넣으려고 한다. 비유하자면 <조폭 마누라>에서 시작해서 <초록물고기>로 끝내려 한다.

최근 <황산벌>의 감독도 맡았는데.

→ <명동 신상사> 마치고 내년 5월쯤 촬영을 시작할 것 같다. 계백과 김유신의 싸움에 사투리라는 언어적인 문제가 섞여드는 역사코미디인데, 언어적인 문제는 나도 관심있는 것이다. 새로운 코미디를 만들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대사가 무척 많은데 하나하나의 말이 묘미가 있다. 다만 그게 꿰어지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안 꿰어지면 보기좋게 진열할 수도 있다. 영화가 다양하듯, 관객에게 도달하는 방법도 거기에 맞는 게 있을 것이다.글 임범 isman@hani.co.kr 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