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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나라에서 온 여배우,<스토커>의 코니 닐슨
김현정 2002-12-11

코니 닐슨은 자신의 직업이 불명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냉정한 배우다. 서른여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와 혼자 키우는 열한살짜리 아들을 짊어진 닐슨은 그 무게에 걸맞은 현실적인 판단력을 지녔다. “연기는 항상 어느 정도 천박하고 하찮은 일로 여겨졌어요. 어떤 시대엔 배우는 축복받은 묘지에 묻히는 일조차 허락받지 못했죠. 우리 배우들은 언제나, 약간은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이 뒤늦게 빛을 본 배우의 자기비하는 아닐 것이다. 열다섯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지방극단 무대에 섰던 닐슨은 초라한 시작과 서른이 넘어서야 찾아온 명성을 한줄기로 아우르는 넓은 품을 지녔다. 흑백영화 시대 여배우처럼 약점없는 외모를 가진 그녀가 어딘지 어머니처럼 보이는 까닭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닐슨은 애정없이 자라 비뚤어진 남동생의 사랑을 받는 <글래디에이터>의 로마제국 왕녀 루실라로 이름을 알렸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이미 서른넷이었다. 처음 대사 연습을 하는 자리에서 러셀 크로는 “당신이 한 일들을 좋아해요”라는 쪽지를 테이블 너머로 보냈다지만, 그가 닐슨의 <글래디에이터> 이전 작업을 제대로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커트 러셀과 함께한 SF영화 <솔저>와 <로열 테넌바움>의 감독 웨스 앤더슨이 연출한 <러시모어> 정도가 미국 관객이 닐슨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던 영화의 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덴마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갈색머리와 눈동자만 봐선 짐작하기 힘든 북구 혈통을 지닌 닐슨. 그 작은 나라가 닐슨에게 가르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좀더 넓은 세계로 나가라는 것이었다. 닐슨은 모국어 외에도 영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을 유창하게 말할 수 있도록 연습했고, 결국 파리에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경력을 쌓아온 지금 닐슨에겐 북유럽의 차가운 대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커리어의 굴곡에 영향받지 않는 차분한 눈길은 그녀를 이국에서 온 스타라기보다 생활력 강한 주부로 보이게 한다. 강인하고 현명하게 남편의 죽음을 견디는 <미션 투 마스>의 과학자는 닐슨과 가장 닮은 캐릭터가 아닐까.

신작 <스토커> 역시 닐슨을 ‘스토커’ 로빈 윌리엄스가 탐내는 가정의 어머니로 낙점했다. 그러나 이번엔 겉으로 드러나는 완벽한 일상과 달리 오해와 다툼으로 상처받은 아내다. 사진현상소에서 일하는 외로운 남자 로빈 윌리엄스는 가족사진만 보고 그녀의 가정을 이상형으로 꿈꾸게 되지만, 정작 그녀는 사진이 찍지 못한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버텨나갈 뿐이다. “그런 이중성이야말로 내가 연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하는 코니 닐슨은 한가로웠던 시간을 접고 존 맥티어넌의 스릴러 <베이직>과 윌리엄 프리드킨의 액션영화 <헌티드>를 촬영하고 있다. 모두 남성적인 장르영화의 장인이라고 할 만한 감독들이지만, 닐슨의 진짜 소망과는 약간 분위기가 다르다. 닐슨이 만들고 싶은 영화는 시인 메리 셸리의 어머니이자 여권운동의 선구자였던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의 전기영화. 조각 같은 얼굴을 무심하게 대하면서 경험에 맞는 역할을 찾아나가고 있는 그녀가 언젠가는 도달해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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