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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덫을 지나, <웨이 오브 더 건>의 라이언 필립
위정훈 2001-04-24

그는 ‘젊음’의 주홍글씨였다. 태양처럼 빛나는 금발, 푸른 눈동자, 단아한 뺨의 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냉소하는 듯한 윤기어린 입술까지. 그렇게, 빛의 한가운데를 꿰뚫는 듯 건방진 젊음과 오만한 아름다움으로 라이언 필립은 뭇여성들의 가슴에 떨리는 ‘유혹’의 낙인을 새겼다. 생을 포기할 수 없다며 시체를 유기하자고 우기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의 부잣집 아들 베리와,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8)에서 순결선언을 한 소녀 아넷을 유혹할 수 있을지를 두고 내기를 하는 ‘막돼먹은’ 청년 세바스찬은 그런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 캐릭터였다.

미국 뉴캐슬주 델라웨어 태생의 소년에게 대도시 LA는 험난한 곳이었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다 어느 날 갑자기 발탁되어 LA로 옮겨온 라이언 필립에겐 친구도, 돈도, 기회도 없었다. 그는 고향집에 전화해서는 명랑하게 “여긴 정말 멋진 곳이에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은 뒤 홀로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고교 시절 ‘공포증’ 수준의 모임 기피증까지 있었던 그는 이를 악물고 적막한 2년여를 버텼고, 기회가 왔다. TV드라마 <원 라이프 투 리브>(One Life to Live)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거기서 그는 낮시간대 TV프로그램에 등장한 최초의 십대 게이 캐릭터인 빌리를 연기했다. 이후 몇몇 TV드라마를 거쳐 영화 <크림슨 타이드>와 <화이트 스콜> 등으로 스크린에도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으며, 그렉 아라키 감독의 <노웨어>(1997)에서 다시 한번 게이 역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만났다.

<나는 네가…>로부터 4년, 라이언 필립은 90년대 할리우드 10대 공포영화가 낳은 청춘스타 가운데 가장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큰 영화에 한눈을 팔지 않고, 톰 크루즈가 그러했듯, 작은 영화일지라도 좋은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을 택하는 전략을 세웠다. <웨이 오브 더 건>(2000)은 좋은 예. 성격파 배우 베니치오 델 토로와 호흡을 맞춘 그는 건달인 파커를 맡으면서 10kg이나 살을 찌움으로써 조각 같은 뺨의 단아한 선을 일부러 지웠다. 그러나 <패스워드>(2000)에서 컴퓨터업계의 거물 팀 로빈스에 맞서는 젊은 프로그래머 마일로를 연기함으로써, ‘청춘’의 이미지로 가끔 귀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리즈 위더스푼과의 ‘결혼이야기’는 알려진 사실이다. 리즈의 21살 생일파티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곧 ‘유혹’보다 아름다운 ‘사랑’에 빠져들었고, 99년 6월, 소박하고 비밀스런 그들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9월엔 딸 에바가 그의 품에 안겼다. 현재 라이언 필립은 집을 뛰쳐나온 십대를 그린 영화 <이그비 고우즈 다운>(Igby Goes Down)을 촬영하고 있으며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미스터리 살인극 <고스포드 공원>(Gosford Park)에도 출연하기로 했다. 루시드 필름이라는 제작사도 직접 차린 상태다.

“<웨이 오브 더 건>의 건달 파커는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망가뜨릴 기회였다. 나는 청춘영화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나이가 들어간다. 그러니 이젠 다른 어떤 것, 나이든 역을 하는 것도 좋겠지.” <웨이 오브 더 건>에 출연한 이유에서 스스로 밝혔듯, 그는 지금 청춘스타의 이미지에 안주하느냐 연기하는 배우로 탈바꿈하느냐의 갈림길에 있다. 그가 어디로 향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아직은 <웨이 오브 더 건>과 <패스워드>를 종횡으로 질주하는 그를 지켜보며, ‘주홍글씨’의 여운을 즐기는 것으로 족하다. 판단은 잠시 접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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