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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콜린우드>의 형제 감독 앤서니 루소,조 루소
2003-01-22

구식의 영화언어로 실험적인 영화 만든다

솔직히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조엘 코언과 에단 코언, <매트릭스>의 앤디 워쇼스키와 래리 워쇼스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의 바비 패럴리와 피터 패럴리, <어바웃 어 보이>의 폴 웨이츠와 크리스 웨이츠. 장르의 장인으로 대성해 가문의 영광을 쌓은 미국 영화계의 막강 형제 클럽의 신입 회원으로 클리블랜드 출신의 앤서니 루소(32)와 조 루소(31)가 명함을 내밀었다. 범죄계의 무능력자들이 가망없는 금고털이를 도모하는 루소 형제의 코미디 <웰컴 투 콜린우드>는 얼핏 지칠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며 치고 받으며 내러티브 퍼즐을 즐기는 또 한편의 ‘선댄스표’ 영화처럼 보이지만 이 신예 감독들의 시트콤식 유머 너머에는, 애정을 갖고 인물을 지그시 지켜보는 고전 할리우드 드라마의 미덕과 공업도시 클리블랜드 토박이의 몸으로 체득한 미국 자본주의의 가혹한 풍경이 깔려 있다. 형제를 발탁한 것은 영화사 섹션 에이트를 차리고 프로듀서 일에도 발을 들여놓은 스티븐 소더버그와 조지 클루니. 1991년 슬램댄스영화제에서 루소 형제의 첫 장편 <조각들>을 접하고 영화적 동지애를 느낀 소더버그는 무명의 신예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콜린우드>의 제작자 크레딧에 조지 클루니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영화 한편을 연출하는 것은, 달리는 차의 뒷범퍼에 매달려 4개월을 끌려 다니는 일과 같다는 선배 스티븐 소더버그의 정의를 “만약 두 사람이 같이 차에 묶여 끌려다닌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지 않겠냐”고 슬쩍 비트는 루소 형제에게 <씨네21>은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 답을 얻었다.

형제는 맨 처음 어떻게 영화에 매료되었습니까 처음부터 두 형과 아우가 영화에 대한 관심을 나누었나요.

→ 영화의 세계를 우리에게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험프리 보가트, 캐리 그랜트가 출연하는 TV의 옛날 영화를 감상하곤 했지요. 제일 좋아한 영화는 레오 고르시와 헌츠 홀이 나오는 <바워리 보이즈>였는데 <…콜린우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열세살, 열네살이 됐을 때 프랑스 누벨바그,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영화 등 외국영화에 매혹됐고 세르지오 레오네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거대 공업도시였던 클리블랜드 이스트 사이드의 노동계급 이탈리아 이민지역에서 자라난 우리의 유년기는 엄청나게 컬러풀했습니다. 아버지는 1970년대 후반 곤궁한 시대를 리버럴한 행동파 정치가로 사셨습니다. 클리블랜드 경제는 무너져가고 있었고 도시는 파산 직전의 벼랑에 서 있었죠. 우리는 어떻게 클리블랜드를 살릴 것인가를 놓고 이곳저곳에서 사람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아버지를 따라 차를 몰고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정치의식은 감독으로서 우리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콜린우드>는 자본주의에 대한 엄중한 고발이기도 합니다.

<…콜린우드>는 루소 형제의 이름을 한국 관객에게 처음 알린 영화입니다. 감독으로서의 수련과정을 소개해주십시오.

→ 우리는 뒷마당에서 비디오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타입의 영화광들은 아니었어요. 영화는 숏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메타포를 찾는 공부의 대상이었습니다. 앤서니는 첫 번째 영화 <조각들>(Pieces)을 만들 무렵 법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를 중퇴했고, 1994년에 아주 적은 돈으로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완성할 돈이 모자랐던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영화학교에 지원해 학교의 장비를 써서 영화를 편집할 수 있었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그 영화를 1997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보고 우리의 다음영화를 기꺼이 제작하겠다고 제의했구요. 그래서 우리는 영화학교를 다시 중퇴하고 <웰컴 투 콜린우드>를 만들게 된 겁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처음 전화 연락을 받은 날 기분은 어땠습니까 <…콜린우드>의 실제적 제작과정에 소더버그는 어느 정도 개입했습니까.

→ 조가 LA의 아파트에서 소더버그의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 자기 소개를 듣고는 장난전화인 줄 알았죠. 여전히 우리는 첫 영화로 진 빚을 갚고 있는 처지였고 더군다나 조는 막 딸아이를 낳은 참이었으니 우리가 흥분한 건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스티븐과 조지(클루니)는 <…콜린우드>를 만드는 내내 간섭하지 않다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때만 제공하는 자세를 지켰습니다.

그들과 일하기 전 소더버그와 클루니의 작품에 대해 관객으로서, 필름메이커로서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나요.

→ 물론 우리는 소더버그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적인 발육을 겪고 있었던 15, 16살 무렵 등장한 성적 각성에 관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는 매우 결정적인(seminal) 영화였습니다. 소더버그는 현재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세련되고 모험심 강한 감독입니다. 클루니는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영리한 커리어를 쌓아올렸고 이제 감독으로서도 훌륭히 데뷔했습니다. 그에겐 캐리 그랜트의 매력과 험프리 보가트의 위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전작 <키스>와 <조각들>은 어떤 영화인가요 두 영화와 <…콜린우드> 사이에는 스타일의 일관성이 있나요.

→ <키스>는 포드사가 젊은 영화감독을 지원하도록 부추기기 위해 만든 CF의 확장판 같은 영화였고 장편 데뷔작 <조각들>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에 감화받은 작품이었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스키조폴리스>와 유사한 실험적인 톤의 부조리 누아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소더버그가 연락한 것도 그런 감수성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각들>은 클리블랜드 길거리에서 게릴라 스타일로 촬영됐고 일정한 내러티브에 거의 집중하지 않는 고도로 양식화된 영화입니다. 세계를 극중 인물들이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는 포스트 모던한 황무지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콜린우드>와 통합니다.

<…콜린우드>는 기존 영화 <마돈나 거리의 한탕>(Big Deal on Madonna Street)의 리메이크이면서 독특한 지역색을 강도영화의 공식에 가미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설계는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

→ <마돈나 거리의 한탕>은 우리 형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였고 우리는 그 영화를 신세대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마돈나 거리의 한탕>은 역사상 최고로 재미있는 영화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와 그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에게 닥치는 일에 대한 통렬하고 날카로운 관찰이라고 생각합다. 우리는 영화의 스토리를 고향 클리블랜드로 옮겨놓고 언제나 하층 노동계급의 삶터였던 클리블랜드 특유의 태도와 퍼스낼리티를 불어넣었습니다. 테마면에서 <…콜린우드>는 인종적으로 다양한 인간들이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짧은 연대감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벨리니’(큰 건수)니 ‘멀린스키’(돈 받고 대신 옥살이를 해주는 사람)니 하는 은어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 그런 속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더 재미있는 답이 됐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단어들은 LA미드 윌셔 지역에 있는 열두 걸음쯤 되는 크기의 사무실 안에서 열 걸음쯤 왔다갔다하며 지어낸 것입니다.

콜린우드 패거리는 <오션스 일레븐> 드림팀의 네거티브 이미지처럼 보입니다. 이런 앙상블을 어떻게 구상했나요 또 이처럼 다채로운 배우들을 어떻게 한데 모았습니까.

→ 공교롭게도 우리는 클루니와 소더버그가 <오션스 일레븐>을 찍은 똑같은 시기에 <…콜린우드>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범죄자 사회의 다른 양극단을 탐구한 셈이죠. 클루니와 소더버그는 능수능란한 도둑을, 우리는 어떻게 해도 한건 올릴 리가 없는 구제불능들을 말입니다. 앙상블의 구성은 <마돈나 거리의 한탕>의 스케치를 따랐지만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복잡하기로 악명높은 콜린우드 지역의 필터를 댔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겪었던 사람들, 친척 아줌마, 아저씨, 아버지의 친구들, 이웃 사람들 등에 대한 구체적 기억을 동원해 캐릭터를 강화했고요. 소재를 요리함에 있어 우리는 매우 ‘배우 집약적’인 접근법을 택했는데 꿈같이 훌륭한 캐스팅을 얻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각각의 연기자에게 그들이 왜 역할에 맞는지 설명하는 편지들을 써서 보내야 했던 우리는 행운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코언 형제, 워쇼스키 형제, 패럴리 형제 등등 기묘하게도 형제 감독 듀오의 다수가 장르영화의 진화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루소 형제가 특별히 야심을 품은 장르가 있습니까.

→ 열정을 가진 특정한 장르는 없고 모든 영화를 사랑합니다. 실은 코미디부터 만든 사실에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본래 만들고자 했던 것은 시대극이었거든요. 형제 듀오들이 장르영화에 끌리는 까닭은 장르영화는 모험적이며 오페라적인 극적 장치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형제팀이 특정한 스타일의 공통적 영화언어를 발전시키기 시작하면 그 스타일을 유지하고 심화시키는 것이 쉽다고 봅니다. 우리의 바람은 가능한 한 상이한 영화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클리블랜드는 어떤 공간입니까 몇몇 인디 감독들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고향을 기지로 삼아 영화작업을 계속할 계획인가요.

→ 클리블랜드는 20세기 초 미국의 산업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경제난을 숱하게 겪었고 1970년대 말 파산지경을 거치고 나서는 몇해 전 부흥기까지 오랫동안 우울하고 황량한 곳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클리블랜드를 무대로 해 풀어놓고 싶지만 실제로 많은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고 있으며 미국식 스토리에 얼마간 싫증이 난 상태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세계 관객도 그렇게 느끼겠지요. 더욱 중요하고 유의미한 소재들은 미국 밖에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세계는 복잡하고 매혹적인 곳인데도, 할리우드가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 동안은 적당한 자기 표현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콜린우드>를 보고 사람들은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애리조나 유괴사건> <펄프 픽션> 같은 영화들을 떠올립니다. 이런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화적 내러티브 구조를 갖고 벌이는 게임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습니까.

→ <…콜린우드>는 극히 단순한 톤과 테마를 가진 복고적 영화로 계획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가 <록 스탁…>이나 <펄프 픽션>보다 <바워리 보이즈>나 막스 브러더스 영화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록 스탁…> <펄프 픽션> 같은 영화들과는 되도록 거리를 두려 했습니다. 두 영화가 영화적 자의식이 무척 강하고 팝 문화와 연결돼 있는 반면 <…콜린우드>는 매우 순진하고 자의식이 탈색된 영화입니다. <…콜린우드>는 세트디자인, 아트디렉션, 촬영에 있어 고답적입니다. 모든 숏이 단순하고, 전통적인 에이젠슈테인식 몽타주로 붙어 있습니다. <록 스탁…>과 <펄프 픽션>의 촬영은 프로그레시브한 스타일이지만 <…콜린우드>의 촬영은 마치 로버트 와이즈 영화 같지요. 하지만 영화적 구조에 대한 생각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데뷔작 <조각들>은 한 줄기의 스토리로 이해하기 힘든 반(反)내러티브적인 영화였습니다. 전통적 할리우드 내러티브가 아니라 월드 시네마에서 싹튼 새로운 해체적 내러티브가 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식의 영화언어로 일하면서 역사의 나선을 뛰어넘어 한층 흥분되고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려 했습니다.

두 사람은 영화 창작팀으로서 해체 불가능한 하나의 유닛이라고 느끼나요.

→ 다른 형제 감독 팀과 다르게 우리는 일을 정해서 나누지 않습니다. 아이디어 착상부터 시나리오, 스토리보드, 캐스팅, 연출까지 모든 작업을 함께합니다. 배우와 촬영감독에게도 같이 이야기하지요.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불가분의 유닛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루소 형제와 섹션 에잇사와 맺은 계약의 정확한 성격은 무엇입니까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입니까.

→ 섹션 에잇과는 어떤 공식적인 관계도 없지만 현재 우리의 차기작에 대해 대화를 진행 중입니다. 얼마 전 에 <퀴즈 쇼> <도니 브라스코> <호미사이드>의 폴 아타나시오가 제작자로 가담한 TV쇼를 연출해 납품했습니다. FX 케이블방송 채널을 위해 <러키>라는 쇼의 파일럿 프로그램도 연출했습니다. 영화 차기작으로는 미국 바깥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를 구상 중이고요. 김혜리 verme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