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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렐,디카프리오에 맞설 샛별
박혜명 2003-03-26

머리카락 한올 없이 빤질빤질한 이마에 화인을 찍어놓은 듯 선명한 과녁 문양. 그걸 맞힐 수 있으면 맞혀보라는 기세로 거만하게 쏘아보는 얼굴. <데어데블>의 악당 불스아이(Bullseye) 이야기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이같은 이미지로부터 배우 콜린 파렐의 얼굴을 선뜻 기억해냈다면 그건 거의 캐스팅디렉터급 안목이다. ‘아일랜드의 브래드 피트’라고 불린다는 백인 남자 특유의 수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익숙한 듯 낯선 듯 애매해 보이는 인상 때문이다.

지난 한해 동안 <Intermission> <S.W.A.T> <Veronica Guerin> <데어데블> <리크루트> 등 무려 다섯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정도로 쓰임새가 많은 콜린 파렐이지만, 영화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가 시작된 것은 불과 3년 전인 <디센트 크리미널>이다. 뒤이어 조엘 슈마허 감독의 저예산영화 <타이거랜드>의 주연 자리를 얻어내더니, 미국의 베트남전쟁 수행을 교란하는 성질 거친 신병 역으로 보스턴비평가협회가 주는 남우주연상까지 받았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새파란 젊은이치고는 무서운 급상승을 기록한 셈이다.

그의 출연작 중에 국내에 개봉된 것은 <하트의 전쟁> <마이너리티 리포트> <리크루트> <데어데블> 등인데 배우의 이름을 특별히 기억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아마도 그가 연기한 인물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잡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낯선 조합일 것이다. 2차대전 중 독일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갇히게 된 법대 출신 군인 ‘토머스 하트’, 정부기관의 부국장이면서 국장 자리를 수시로 넘보는 영리한 ‘대니 위트워’, 장래가 촉망되는 MIT 출신으로 CIA 스파이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제임스 클레이튼’, 그리고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이면서 뭐든 날리기만 하면 100%에 가까운 명중률을 보이는 ‘불스아이’는 파렐이 거쳐갔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나면 정말 판이하다. 덕분에 그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는, 이 네 가지 다른 역할을 한데 접하는 순간 증폭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콜린 파렐에 대한 관심은 준수한 용모에다 금상첨화로 연기력까지 갖춘 차세대 할리우드의 대표주자감이라는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이 스물일곱의 젊은이에게서 보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그는 탁월한 외모를 지녔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매력적이면서도 뭔가 부족해 보이고, 조각미를 지녔으면서도 바로 그런 이유로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 인상이다. 어쩌면 이런 애매함이 서로 다른 캐릭터를 무난하게 수용하는 바탕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외모에서 합격점을 얻은 배우가 최종적인 승부를 내는 것은 결국 연기력이다. 그가 보여주는 연기는 단순히 ‘금상첨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외모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와 같아서, 이 빛이 없다면 파렐의 조각미도 그 윤곽이 희미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연기가 이성적이고 분석적이기보다는 캐릭터에 몰두해서 감정을 끌어내는 쪽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영화에 홀랑 빠져 현실과 캐릭터를 뒤섞어 사는 타입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는 현대 젊은이 특유의 영악한 균형감각을 지니고 있다. “물론 난 연기를 좋아하지만 연기도 결국 직업이에요. 마음만 열려 있으면 캐릭터의 감정을 굳이 현실에서까지 불필요하게 다 드러내지 않고도 충분히 영화가 요구하는 지점에 다가갈 수 있죠.”

콜린 파렐의 올해 스케줄은 올리버 스톤 감독과 함께 <알렉산더 대왕>을 여름부터 촬영하는 것이다. 그가 맡을 배역은 주인공 옆의 현신(賢臣)이나 악당이 아니라 알렉산더 대왕 자신이다. 바즈 루어만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또 다른 알렉산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올리버 스톤이 콜린 파렐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신예의 2004년 주가가 흥미로운 상승 국면을 그릴 것임을 무난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쯤에서 영화 <리크루트>가 반복하던 대사를 상기해보도록 하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믿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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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YG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