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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과 맞바꾼 연기,카이라 나이틀리

“어쩜, 정말 예쁘지 않니? 그 여자 누군지 알아?”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를 보고나오는 관객의 한마디에는 카이라 나이틀리(18)에 대한 찬사가 빠지지 않는다. 소녀 티가 남아 있던 시절의 위노나 라이더 혹은 성숙한 내털리 포트먼을 연상시키는 청초함, 해골로 변신해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해적에게 “고통을 좋아한다구? 코르셋을 입어보시지”라고 대꾸하는 당당함, 로코코풍의 거추장스런 드레스를 입고도 힙합 패션을 즐기는 젊은이처럼 움직이는 날렵함, 그녀는 흔히 볼 수 있는 스크린 속의 금발 미녀들과 다른 이미지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나오는 비명만 잘 지르는 여인이나 <컷스로트 아일랜드>의 부담스런 액션영웅 지나 데이비스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나이틀리의 등장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런 이미지는 <슈팅 라이크 베컴>을 떠올리면 더 쉽게 이해된다. 동네 여자축구팀의 스타 플레이어 줄스로 등장한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나이틀리는 소녀들의 우상이 가져야 할 육체적, 정신적 조건을 충족시켰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는 이 영화을 보기 전에 나이틀리를 캐스팅했지만 그녀의 모습에서 발견한 것은 <슈팅 라이크 베컴>의 감독 거린다 차다가 찾아낸 것과 다르지 않았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엘리자베스도 <슈팅 라이크 베컴>의 줄스처럼 언제든 평온한 가족의 틀을 박차고 나올 용감하고 모험심 많은 여자였다.

물론 나이틀리의 실제 삶이 영화처럼 거칠었던 건 아니다. 영국에서 나고자란 그녀가 어린 나이에 할리우드의 스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 데는 가족의 분위기와 나이틀리 자신의 연기경력이 큰 도움이 됐다. 부모가 모두 배우였던 탓에 그녀는 3살 때부터 “나도 매니저를 갖고 싶다”고 졸라댔고 6살 때 진짜 매니저를 갖게 됐다. 여기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어린 시절 나이틀리는 글자를 못 읽고 숫자를 거꾸로 쓰는 난독증을 갖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딸에게 여름방학 동안 매일 1시간씩 읽기와 수학공부를 한다면 연기를 하도록 허락하겠노라 약속했던 것이다. 나이틀리는 7살 때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을 다룬 <로열 웨딩>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TV에 출연했다. 하지만 딸이 공부를 등한시할까 염려한 어머니는 나이틀리가 연기할 수 있는 기간을 여름방학으로 한정했다. <정직한 거짓말> <귀향> 등 일련의 TV드라마에 출연하던 중에 할리우드의 눈길을 끈 첫 영화는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이었다. 나이틀리는 이 영화에서 내털리 포트먼이 연기한 아미달라 여왕의 분신으로 등장했는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녀의 존재감을 눈치채긴 어렵다. 런던의 테딩턴학교에서 연기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TV와 영화를 찍던 나이틀리가 유명해진 것은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과 TV 미니시리즈 <닥터 지바고>를 통해서다. <닥터 지바고>에서 나이틀리는 16살부터 32살까지 라라의 삶을 연기했다.

나이틀리가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떠오른 반짝스타가 아니라는 건 개봉대기 중인 작품을 보면 훨씬 확실해진다. 휴 그랜트가 나오는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말하자면 사랑>,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하고 그녀가 귀니비어 왕비로 등장할 <킹 아서>, 주드 로와 짐 브로드벤트가 함께 출연하는 <튤립 피버>가 나이틀리의 전성시대가 임박했음을 예고하고 있다. <슈팅 라이크 베컴>을 찍느라 축구를 배우고, <스타워즈 에피소드1…>와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블루스크린 촬영을 경험했으며, <킹 아서>를 위해 경마와 복싱과 검술을 배우고 있는 그녀의 흥미로운 모험은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동철 namd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