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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욕심쟁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샤를리즈 테론
박은영 2003-10-08

샤를리즈 테론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지적인 마릴린 먼로’라거나 ‘차세대 샤론 스톤’이라고 부르길 좋아했다. 고전적이면서도 섹시한 테론의 미모는 빼어났지만, 비교를 거부할 만한 발군의 개성은 아니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고 주목받은 애슐리 저드, 안젤리나 졸리와 ‘트로이카’라는 묶음으로 소개되는 일도 잦았다.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도,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그는, 모델 출신의 미녀배우 중 하나로 그냥 사라져갈 수도 있었다.

그것은 민숭민숭한 역할 이미지 탓이기도 했다.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악의 기운을 감지하고 미쳐가는 섬약한 아내를 연기했던 샤를리즈 테론은 비슷한 스토리의 SF스릴러 <애스트로넛>에서 다시 한번 창백하고 가련한 희생양의 이미지를 체현했다. 소년에게 인생을 알게 해준 첫사랑의 여인(<사이더 하우스>)이나 한 남성을 궁지로 몰아가는 팜므파탈(<레인디어 게임>)이나 낯선 남자에게 계약동거를 제안하는 당돌한 신세대(<스위트 노벰버>) 등으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누구의 여자’로 기억될 따름이었다. 대중을 압도하기에 그의 관능미는 다소 연약했고, 친근감을 주기엔 귀족적 이미지가 너무 견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리즈 테론이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은 이유? 관객의 열광적인 지지와 성원을 얻는 데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프로듀서와 감독들의 신뢰와 사랑을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지적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작품에 헌신적인 배우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샤를리즈 테론이 <팀 로스의 비열한 거리>의 감독이자 작가인 제임스 그레이를 찾아가 “당신의 영화에 출연할 수만 있다면, 7년 동안 당신의 접시를 닦고 잔디를 깎겠다”며 구애(?)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행히 제임스 그레이의 집에는 잔디 정원이 없었고, 그는 조건없이 다음 영화 <더 야드>에 테론을 캐스팅했다). 이런 억척스러움은 스타가 된 지금도 여전하다. 최근작 <이탈리안 잡>에서 금고털이 스텔라를 연기하면서 테론은 대역을 거의 쓰지 않았다. 지하철 선로로, 계단으로, 빨간색 미니 쿠퍼를 미친 듯이 몰아댄 것은 온전히 그의 솜씨였다. “나는 스스로 스턴트를 해결하는 게 좋다. ‘진짜’라고 느껴지길 바라서다. 거리를 맘대로 질주하고 차로 계단을 내려오고… 정말 신났다.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겨우 세번 들이받았을 뿐이니까.”

요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아 넷 중 하나는 ‘샤를리즈’라는 이름으로 출생 신고된다고 한다. 20여년 전만 해도 그 땅에서 유일한 ‘샤를리즈’였던 여성이 할리우드로 진출해 보란 듯이 성공을 거뒀으니, 딸의 미래에서 그처럼 빛나는 미모와 성공을 기대하는 부모들이 그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이탈리안 잡>에 이르러 유약한 여성미를 벗어던진 샤를리즈 테론은 차기작 <몬스터>에서 크리스티나 리치의 동성애인이자 연쇄살인자로 파격 변신을 하게 된다. 설령 어린 ‘샤를리즈’의 부모들이 집단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해도, 샤를리즈 테론의 이미지 파괴와 변신 욕구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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