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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료, 못받아도 좋다!”
2001-05-23

여름 시즌 개막 블록버스터 <진주만>의 마이클 베이 감독

<진주만>영화정보 ▶ <진주만>의

벤 애플렉

● 세상에는 도저히 영화가 될 법하지 않은 평범한 이야기를 가지고

누에가 고치 짓듯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만 골라 불꽃놀이 같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다. 2001년

여름 극장가의 블록버스터 전쟁에서 선제공격에 나선 <진주만>의 함장 마이클 베이(36) 감독은 후자의 표본으로 손색이 없는 할리우드

키드다.

마흔이 못 된 나이에 미국 영화산업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감독의 대열에 진입한 베이는 부러움과 함께, 할리우드를 ‘이 모양 이

꼴’로 타락시켜놓은 악동이라는 눈총도 한몸에 받는 처지. 그러나 열세살 때 외계 우주선이 장난감 기차를 습격하는 첫 영화를 만들다가 소방대를

출동시킨 경력이 있는 마이클 베이 감독에게 폭파 취미는 흥행 전략이라기보다 탐닉의 일부라는 편이 옳다. 웨슬리안대학과 파사데나아트센터에서

영화를 공부한 베이는 졸업 뒤 가장 단시간에 제작을 경험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 연출에 뛰어들었다. 도니 오스몬드, 티나 터너, 미트로프

등의 뮤직비디오와 리바이스, 나이키 등의 CF로 관련 상을 휩쓸다시피한 그는 돈 심슨과 제리 브룩하이머 콤비를 만나 만들어낸 액션코미디

<나쁜 녀석들>로 세계 박스오피스 수입 1억6천만달러를 올린 것을 워밍업 삼아 1996년 <더 록>과 1998년의

<아마겟돈>으로 이어지는 대형 여름 블록버스터들을 통해 스피드와 에너지의 흥행사로 입지를 굳혔다. “나는 다행히도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만들기 좋아한다. 왜 내 영화들이 성공하는지 이유는 말하기 어렵지만, 운좋게도 내 영화들은 전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통한다”는

것이 베이의 속 편한 해설이다.

단일 스튜디오가 기획 단계부터 승인한 제작비로는 사상 최대라는 1억4500만달러의 항공모함급 예산이 투입된 <진주만>은 액션의

옥탄가뿐 아니라 주인공들의 삼각관계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파고도 상당히 높을 것으로 짐작되는 블록버스터. 이 점만으로도 호사가들은 마이클

베이가 과연 <타이타닉>으로 돈과 오스카를 쓸어담으며 세상을 발 아래 두었던 선배 흥행사 제임스 카메론의 뒤를 이을 수 있을지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이 기사는 브에나비스타 코리아가 제공한 인터뷰 자료를 기초로 작성됐다. 편집자)

당신은 30대에 이미 미국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감독의 일원이 됐다.

거기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종이 위에 상상하거나 쓸 수 있는 일이라면 스크린 위에서 실현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다. 나는 큰 영화 만드는 일을 즐긴다.

미리 공개된 약간의 필름을 보면 <진주만>은 당신의 지난 영화들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타이타닉>과

더 공통점이 많아보인다.

<진주만>은 나의 전작들보다 훨씬 진지한 영화다. 처음 인정하는 바지만 내 영화 중 <나쁜 녀석들> 같은 일부 영화는

끔찍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영화에는 배우들 사이에 작동한 커다란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런가하면 <더 록>은 짜릿한

드라이브였고 <아마겟돈>은 판타지였다. 그러나 나는 감독으로서 매번 한편의 영화를 만들 때마다 성장하고 싶다. <진주만>은

역사의 중대한 국면이다. 나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대단히 중요한 스토리라고 판단했다.

벤 애플렉, 케이트 베킨세일, 조시 하트넷의 사랑이 이끌어가는 <진주만>은 여성 관객층을 겨냥한

블록버스터다. 전쟁 영화이니만큼 폭발과 비행기 폭격 장면을 대규모로 재현했지만 PG-13등급에 맞춰 제작된 이 영화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여성관객을 등돌리게 한 피바다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전망이다.

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은 미국이 고수하던 고립주의에서 미국을 끌어내 전쟁 한복판에 던져넣은 사건이었다.<진주만>의

방점은 역사인가 사랑인가.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두명의 용감한 젊은 파일럿 벤 애플렉과 조시 하트넷, 헌신적인 간호사 케이트 베킨세일,

세명의 캐릭터를 엮는 복잡한 러브스토리다. 그것이 영화 전체의 핵심이다.(<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클 베이는

<아마겟돈>에서 함께 작업했던 벤 애플렉이 1940년대적 외모를 갖고 있어 <진주만>에 적합했다고 밝혔다. 여주인공의

경우도 미국 여성들은 시대와 함께 너무 많이 외모가 변해버려서 아직도 클래식한 스타일이 남아 있는 영국 여배우 케이트 베킨세일을 선택했다고.)

<아마겟돈> 개봉 당시 <딥 임팩트>와 빈번히 비교됐는데, 이번에는 <타이타닉>과 자주 견주어지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 전쟁이고 그로 인해 영화 전체에 거대한 위험과 상실의 감각이 드리워져 있는 <진주만>은 서사극 규모의 러브스토리다.

이런 영화에는 대단한 호소력이 있으며 실상 이런 자질을 발휘할 수 있는 영화는 드물다. 이와 같은 서사극적 속성이 제작 초기부터 <진주만>과

<타이타닉>을 사람들로 하여금 비교하도록 만든 요소다. 게다가 배가 몇척(?) 나온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그 비교구도를

세운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타이타닉>이 대단히 멋진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영화를 그 작품과 비교하는 것은 기대치를 너무

높이는 처사다.

<인디펜던스 데이>가 7월4일 독립기념일에 이벤트 개봉을 한 것과 유사하게 <진주만>은

전몰장병 기념일을 앞둔 주말인 5월25일에 전미 개봉 테이프를 끊는다. 제작자 브룩하이머는 진주만 사건이 미국인들의 주의를 계속 사로잡는

이유에 관해 “그때까지는 미국이 패배를 모르는 국가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미국이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은 모멘트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몽한다.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만든 과정이 궁금했다.

<브레이브하트>의 각본을 쓴 랜달 월레스와 내가 영화 제작 리서치에 들어갔을 때 첫 번째 과제는 진주만 공습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퇴역 군인들이 이제 다들 연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의 100명에 달하는 생존자를 만날 수

있었고 기록으로 남지 않은 그들의 회고는 완성된 영화에서 결정적이고 압도적인 모멘트를 이루게 됐다. 저공비행을 하면서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미국 어린이들에게 대피하라고 신호했던 일본 병사의 일화도 그 한 예다. 보는 사람들은 그 장면이 영화적으로 꾸며낸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건 실화다.

고증문제로 이의를 제기한 집단도 있는 것으로 안다(텍사스 전함을 일본 항공모함으로 대신한 것에 대해 퇴역 군인들이 항의하자 마이클

베이는 “일본 함정은 여러분들이 모두 격침시켜서 쓸 수 없었다”고 달래기도 했다).

(역사극을 만들 때는) 소재를 혼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는 48시간짜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나는 가능한 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전쟁 당시에 제작된 2차대전 전투기를 구했고 배를 구한 것은 물론 주요

출연 배우들을 멤버들을 군대 신병 훈련소에 보냈고 한 부대의 군사 및 역사 전문가들을 끌어들였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나와 제작자, 주요

출연진, 스탭들은 41년 진주만 공습 전몰자들의 반가량이 묻혀 있는 애리조나주 묘소에서 열린 헌화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예산 초과를 막기 위해 본인의 연출료를 보류한 걸로 안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생각해와서 머릿속에서 영화를 훤히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 영상을 예산 때문에 필름에 옮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나를 거의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영화로 동전 한닢 못 번다 해도 괜찮다고 마음을 먹었다.

감독으로서 마이클 베이의 강점은 100만 가지 일이 동시에 발생하는 덩치 큰 영화의 제작과정을 유능하게 핸들링하는

솜씨에 있다. 사전 스토리보딩이 치밀하고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결단이 빠른데다 스펙터클을 연출하면서도 비용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 주변의

평. <진주만>도 총 106일이 촬영에 소요됐는데, 이는 예정보다 딱 하루 초과한 일정이었다.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를 비롯해

손발이 익은 팀과 다시 일했다는 점이 도움을 준 셈이다.

그러나 <진주만>에도 폭파 장면은 여전히 많다.

700 다이나마이트에 2천 피트의 도화선,4천 갤런의 가솔린이 들어간 대규모 폭파 장면도 있다. 하지만 폭발은 단 7초 만에 끝났다. 로케이션

주변에는 비행기가 날고, 헬리콥터, B-25 폭격기, 소형 보트에 탄 사람들이 있어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런 사고도 나지 않았다.

나는 90명의 엑스트라와 9대의 비행기를 지휘하면서 개조된 12대의 파나비전 카메라를 돌려야 했다. <지옥의 묵시록>에서도 일했던

특수효과 코디네이터 존 프레지어는 “내 평생 본 가장 큰 영화 속 폭파 장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리 김혜리 기자 자료제공 브에나 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