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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 U턴의 길목에서, <썸머타임>의 김지현
사진 이혜정이영진 2001-05-23

내심 기대를 품었을까. 갈채와 찬사는 내 몫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처음 치곤 잘했다는 다독거림 정도면 고개 주억거릴 것이라 몇번을 다짐했는데. 지난 일 다 잊고 하나에 매달리고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의 심정은 뜻대로 되지 않았으리라. <썸머타임>의 시사회가 있던 날, 김지현(29)도 그랬다. 시사 직전 “어제 한숨도 못 잤어요”라는 말이 으레 던지는 배우들의 멘트는 아니었는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먹은 음식을 소화하지 해 고생하는 눈치였다. 피곤함이 감도는 것이야 저 ‘룰라 시대’ 때부터 충분히 경험했던 것이었겠지만, 입문생의 볼에는 아직 긴장의 송곳날에 할퀸 흔적들이 여전했다. 적어도 작품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까지는.

“딱 두 가지만 하자, 그랬어요. 처음에는. 감독이 하라는 대로 그리고 고생하는 스탭들 위해서 열심히. 그런데 영화 보면서 아, 좀더 보여줬어야 했는데 하는 장면들이 보이더라고요.”

박재호 감독의 <썸머타임>에서 ‘폭력적인 남편과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훔쳐보던 한 청년과 급기야 사랑을 나누게 되는’ 희란을 맡기까지 ‘우연’과 ‘망설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이정학 프로듀서로부터 시나리오를 받기까지는 일사천리였어요. 제작진은 희란 역을 맡을 배우를 찾느라 오디션을 진행하는 중이었다는데. 때마침 군에 있던 제 남동생이 휴가를 나온거예요. 그런데 그 친구가 우연히 학교 선배인 이정학 프로듀서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날 시나리오 받고 감독님까지 만났으니까.” 걱정은 역시 많은 ‘노출’장면 때문이었다. “망설였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나선 굉장히 슬펐는데, 내가 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이혜영씨가 그런 절 보고 한 마디 했어요. 뭐 어때, 열심히 하면 되지, 라고.” 서른 문턱에서 잠시 서성였다며, 그녀는 “노출이 아니라 희란을 위해서라는 확신” 뒤에 ‘결단’을 내렸다고 말한다.

각오했지만,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니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휭휭거리는 양수리 세트장의 10월, 온순한 감독은 그녀에게 질책 대신 NG 사인만을 내렸다. “그게 벌이었어요. 다른 스탭들이야 두툼한 방한복으로 온몸을 무장했지만, 대부분의 장면에서 알몸으로 버텨야 했으니. 어떻게든 집중해서 끝내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거든요.” 그 덕에 김지현은 베드신만큼은 쉽게 넘어갔다고 웃는다. 오히려 힘든 건 사진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식의 단순한 장면들이었다. 일종의 감시자 같은 카메라가 특히 그를 주눅들게 했고 괴롭혔다. “방송을 위한 무대의 ENG카메라의 경우 친절하게도 빨간 신호까지 넣어주며 부르잖아요. 이건 달라요. 일거수 일투족을 미리 검사받아야 하는 처지였으니….”

그래도 그녀는 무뚝뚝한 기계와 ‘언젠가는’ 친해질 것이라고 긍정한다. “저 사실 이전에 가수였다는 생각 안 해요. 3분50초 정도 연기했다고 생각할 뿐이지. 연기를 전공했고, 또 이 일은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혹시 이번 역할 때문에 노출 많은 영화들 섭외만 들어오지 않겠냐는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언젠가 한번쯤 거쳐야 할 역할일 뿐이니까요.” 한 거대한 무리가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의 세트를 부순 뒤 다른 영화를 찍는다는 악몽에 시달렸다거나 <귀여운 여인>이 좋아 줄리아 로버츠의 ‘막파마’를 흉내냈던 여고 시절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걸 보면, 영화와의 이번 ‘백일째 만남’이 심상치 않은 ‘U턴’의 기회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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