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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회의 비상대책위원장 명계남
2001-05-30

“언제까지 문성근, 안성기 찾을 거야”

● 투사의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전략을 세운 뒤 우회로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하나라면,

정면돌파만이 최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스타일도 있다.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영화인회의 명계남(49) 비상대책위원장은 누가

봐도 후자다. 그의 원칙은 단 하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팔짱 끼고 불구경만 하지 말고 뛰어들라”는 것이다. “관객으로부터 박수받으면

그냥 좋은 평범한 배우”였던 그가 ‘입바른 소리 잘하는 영화인’이라는 평판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능력이 많아 서너 가지

일은 너끈히 해내는 친구 문성근”과 달리 “잘 하는 것이 없어 변죽만 울리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게 본인의 해석이지만 ‘모나면 칼 맞는’

영화판에서 꼿꼿하게 버틸 수 있었던 그의 열정을 폄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올해 심광현 영상원장 임용시 일부 교수들이 “영화인이 아니라”며

문제를 제기하자, “심광현이 영화인이 아니라면, 나도 영화인 안 하련다”며 도발적으로 맞장뜨고, 대종상 사태와 관련 “관객에게 죄스럽다”며

집행부 총사퇴를 강하게 주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 “배우야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니, 빚진 것 갚는다는 생각에서 일할 뿐”이라며 “솔직히

영화제작에만 몰두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의 바람이 쉽게 이뤄질 것 같진 않다. 적어도 당분간은.

1년 전, 벌여놓은 일 정리한다고 했는데. 올해 더 바빠진 것 아닌가.

내 국내선 마일리지만 벌써 10만점이다. 이 정도 되면 전용기는 아니더라도 누가 공짜로 태워줘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서울과 부산을 1주일에도 몇번씩 오갈 텐데.

보통 주말에 올라온다. 그래서 주초에는 이스트필름 일을 보고, 다음날 영화인회의 비대위회의를 하고 난 뒤 부산에 내려간다. 얼마 전까지 드라마

<비단향꽃무>에 출연하느라 주중에 두번씩 오간 적도 많았다.

힘들겠다…. 혹시 감투 쓰길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사람은 없나.

내 위치가 뒷선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자꾸만 나서게 되니까 그런 말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일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있나. 영화인회의만 해도 그렇다. 다들 현장에 매여 있으니까. 머릿속으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실행하기가 쉽지 않지. 한 조직의

동력을 끌어낸다는 게 그래서 힘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물질적인 피해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피곤하다. 어쨌든 그런 부분은 차치하고 뛰는데 이상한

놈이라는 말 들으면 어떻겠나. 어떨 땐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문성근하고도 자주 “어떡하면 좋으냐” 서로 묻는데, 결국엔

“해야지, 해야지” 한다.

대종상을 보수적인 영협과 개혁적인 영화인회의가 함께 치르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우려를 표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입장이 다를 수는 있다. 함께 행사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종상 끝난 다음에 어떻게 됐나. 우리가 어른도 몰라보는 패륜아로 몰리지 않았나.

그런 식으로 귀한 인력들이 쓸데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대종상 사태를 겪으면서 느낀 바가 클 것 같다.

영화제의 주인은 관객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아니다. 함께 일하면서 영협쪽과 가장 큰 시각 차이가 벌어진 건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추후 태도에서도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나.

최근 대종상 사태와 관련, 언론이 양비론의 자세를 취했다고 강한 불만을 털어놨는데.

모두 다 똑같은 이기주의자로 싸잡아서 내치는데 안 그럴 수 있나. 자기 이익을 위해 뭔가 노리다니, 말이 되나. 그럴 땐 정말 환멸이 느껴진다.

신구 갈등? 그거 누가 만든 거야. 혹시 언론이 부풀린 것은 아니야? 대종상 사태와 관련해서 결과만 놓고보면 신구갈등, 그게 영화계 현실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속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입장 차이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속시원히 밝히려는 이들이 없다.

젊은 놈들이 다 해먹었다고? 정말 그런가. 경력과 나이와 목소리 크기로만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말 씁쓸하다.

정부의 태도도 그렇다. 조용히 넘어갔으면 하는 그런 마음만 갖고 있으니…. 모양새만 갖춘다고 화합이 되나. 영화진흥위원회 문제도 그렇다. 한쪽에서

영진위 위원들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자격시비를 자꾸 거는데 정부쪽에서 자꾸 귀를 빌려주는 것이 문제다.

추후 일처리는 어떻게 해갈 것인가. 대종상 백서 작업도 그렇고.

대종상 사무국에서 백서가 제대로 나오는지 두고 보겠다. 내년에도 대종상을 함께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등의 세부적인 문제는 다음 집행부가 결정할

사항이다.

대종상 사태와 관련, 집행부 사퇴 이후 비대위가 꾸려졌는데. 비대위 논의에서 앞으로 영화인회의의 행보가 결정되지 않나.

다른 이들의 의견들을 좀더 취합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좀더 젊고 진보적인 단체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기민 프로듀서, 최인기 유니코리아 이사 등 젊은 영화인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인가.

연령이 많이 낮아졌는데, 하던 사람들이 또 해선 곤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인회의 일처리방식이 제안한 사람이 책임지는 구조라 내가 비대위

위원장을 맡긴 했어도. 영화계가, 그리고 관객 패러다임의 변화가 얼마나 빨라. 그걸 따라가고 끌어가려면 좀더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

정지영 감독이 더 했어야 하지만 우리가 나서게 됐듯이 이제는 좀더 젊은 영화인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문성근 같은 배우가 더 나와야 한다는

말이지. 그런 귀한 일꾼이 1∼2명만 있어도 큰 힘이 되거든. 의식있고, 실천력 강한 그런 사람…. 막말로 언제까지 문성근, 안성기 찾을 거야.

지난번 심광현 영상원장 임용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는데. 결국 이 문제로 제협을 탈퇴하기도 했다.

자기 시간 내서 연구하고 정책 입안하고 또 정부 관계자들과 싸우기도 하고. 그 사람은 영화계를 위해 자기 몫을 희생한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인이 아니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들어 임용을 취소하라니.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정지영, 문성근에게도 똑같이 그랬잖나. 문제는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사시로 바라볼 때야. 가슴에 손 올리고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앞에 나서 일하는 사람들 상처주는 일은 그만 해야지.

그들도 사람인데 안 지치겠어? 안 섭섭하겠어? 그런데도 인신공격에 온갖 음해를 해대니…. 아이고. 서울이 싫다.

부산 이야기를 좀 하자. 영상위원회쪽 일은 맞는 편인가.

재밌다. 그렇게 된 건 전 운영위원장이었던 박광수 감독 공이다. 그 사람, 조직 꾸리는 데는 천부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이

일 시작할 때 아무도 박수친 사람 없었다. 이만큼 이뤄낸 건 다 박 감독 덕택이다.

박광수 감독이 후임으로 추천한 것인가.

감독은 새 작품을 구상해야 하니까. 오랫동안 이 일 하느라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자신이 미리 설계 다 해놓고서 나에게 맡아달라고

하더라. 처음엔 나도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우리나라 문화산업이 다 서울 중심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지방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위원회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았고,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잡은 것 같다. 이어받았으니 열심히 할 생각이다.

부산 영상위원회 활동과 관련해서 올해 목표가 있을 텐데.

수영만 요트경기장 옆에 올해 11월까지 스튜디오를 만든다. 그게 가장 시급하다. 지금은 스튜디오가 없으니, 부산에서 촬영하다가도 일부장면 촬영을

위해 다들 서울로 간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산은 13억원 정도 들 것 같고. 기존 무역전시관 용도를 변경하는 것이라 법적 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또 하나는 부산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울산 같은 가까운 지차체들과 결합, 영상위원회를 부산에 국한시키지 않고 광역화할 계획이다.

그래서 요즘은 설명회도 부지런히 다닌다. 덧붙여 올해 말쯤 필름커미션 국제박람회도 계획하고 있다. 각 지역 필름커미션들이 부스를 설치할 텐데,

이 기회를 발판으로 아시아권 필름커미션들을 중심으로 협의체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뉴스위크> 같은 데서는 ‘아시아우드’라고 부르지

않나. 부산에서 자체적으로 펀딩이 가능하게 되고, 지역제작사들도 활기를 띠게 되면 금상첨화지.

아무래도 관쪽과 같이 일하다보면 불같은 성격 때문에 틀어지는 일도 많을 텐데.

이창동 감독이 매번 나보고 그런다. 화내지 말라고. (웃음) 공무원사회가 예전과 달리 경직성이 많이 풀렸다고 하지만 나 같은 놈은 적응하기

힘들다. 바깥에서 해주는 좋은 제안들을 들고 가도 설득이 쉽지 않다. <쥬라기공원>이 벌어들인 돈이 자동차 몇백만대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식의 진부한 비유만으로는 발빠르게 대응할 수 없다. 부산영화제만 해도 그렇다.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아시아영화의 흐름을 보기 위해

전세계 인사들이 모여든다. 이런 기회를 적극적인 프로모션의 장으로 삼을 수 있는 프로그램 지원을 아껴서는 안 된다. 부천이나 전주도 마찬가지다.

스타 몇명 더 데려오려고 하지 말고, 영화제를 지역 몇몇 인사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말고 좀더 크게 봐야 한다.

<박하사탕> 이후 제작자로서 소식이 없는데.

무슨 소리. 준비하고 있다. 비대위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프로듀서 일에 전념할 거다. 부산에 ‘씨네 씨’라는 영화사도 차려놨다. 마르시아스

심의 <떨림>이 원작인데, 배우 방은진이 연출을 맡는다. 원래 감독을 하고 싶어했던 친구다. 그에 걸맞은 능력도 있고 데뷔 준비도

했고. 이스트필름이야 이창동 감독 데뷔시키고 꾸준히 영화 만들 수 있도록 만든 영화사니까, 하나쯤 더 만들어 재밌는 상업영화 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이창동 감독 신작은 언제쯤 들어가나.

이스트필름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이창동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상하이영화제 다녀오면 본격적으로 들어갈 것이다. 찍기 시작하는 건 아마 11월쯤.

나중에 이스트필름 빚도 갚고, 돈도 좀 벌면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영화 꼭 할 거다. 사실 내가 뭐 하겠다고 해놓고 안 한 게 많은 놈

아닌가. 이번에도 그러면 안 되니까 때가 되면 비밀리에 추진할 생각이다. (웃음)

그래도 명계남은 배우다.

아직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과 아직 개봉 안 한 임종재 감독의 <스물넷>을 끝냈다. 지금은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조폭 마누라> 찍고 있고, 곧 <게이머>에 출연한다. 뭐 많은 분량은 아니다. 홍상수 감독이 형은

드라마하지 말고 영화하면서 배우만 하라고 했는데. 술먹고 취해서 그런 건지 소식이 없다. (웃음)

배우 수입으로 생활 유지가 되나.

수입이 더 있어야 하는데, 쓰는 일만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 배우들 몸값이 치솟고 있는데, 개런티 책정도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할 듯싶다.

이건 어떤가. “어, 저기 명계남이 간다” 하면 100원, 누가 다가와 터치하면 1천원, 싸인해달라고 하면 1만원 뭐 이런 식으로 적립해서

몸값을 매기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닌가. 요즘 몸이 피곤해서 정신상태가 엉망이다. 이해해달라. (웃음)

글 이영진 기자 사진 정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