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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유년을 넘어 역동적인 청년기를 맞이하다, 배우 장동건 [2]
사진 오계옥박혜명 2004-02-18

#오프닝 시퀀스: 19년차 박중훈 meets 12년차 장동건

어느 흐린 날 오후의 카페. <태극기 휘날리며>의 순조로운 개봉을 마친 배우 장동건의 얼굴이 환하다. 대담자이자 절친한 선배 박중훈은 스케줄 사정으로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후배에 대한 애정과 그만의 활력 넘치는 성격 탓에 지친 기색도 없이 들어서자마자 말을 쏟아놓는다.

박중훈 | (손인사, 눈인사를 바삐 나누며) 나 오늘 쓰키다시로 붙는 거 맞지? 장동건 특집인데 내가 쓰키다시로 붙는 거잖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 하면, <씨네21>에서 나한테 전화를 했어. 근데 그냥 박중훈 배우 인터뷰 요청하는 거였으면 당당하게 얘기할 텐데, 상당히 미안해하면서 말을 꺼내더라고. (일동 웃음) 내가 오늘 여기 오면서, 와, 이젠 내가 톱스타의 선배가 됐구나 싶더라구. 옛날에 내 입장에서 후배는 무조건 어린애야. 후배=어린애. 그런데 그런 생각이 최근엔 없어진 거 같애. 후배는 어린애가 아니고 나보다 경력이 좀더 짧다 정도. 동건이가 92년에 처음 데뷔했지? 그때 난 배우를 7년 하고 있었고 얘는 1년 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할 때 내가 십 한 3, 4년 하고 있었고 얘가 기껏해야 6, 7년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지금 얘가 십 2, 3년 하고 있고 내가 19년 하고 있으니까 이 차이가 줄어버리는 거야. 1년과 7년 때하고는 굉장히 다른 거지. 내가 동건이하고 점점 붙어버리는 거 같애. 친구 같애요, 이제는.

장동건 | (웃음) 많이 편해졌죠. 옛날에는 진짜 어렵기만 했는데 지금은, 아직도 어려운 선배님이긴 하지만, 불편함 없이 같이 술자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편해진 거죠.

#1.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와 그의 사정

오늘의 절친한 만남을 이룬 결정적 계기,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회고하는 두 사람. 그 당시에도, 그 이후로도 서로에게 미처 다 말 못했던 속사정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그 속사정을 통해 이 영화가 두 사람에게 모두 얼마나 큰 의미였던가를 새삼 알게 된다. 대화의 틈틈이, 테이블 위로 단팥죽과 커피가 놓인다.

박중훈 | 우리가 제대로 만난 게 바로 <인정사정…>인데.

장동건 | 그렇죠. 근데 그땐 술을 한잔 제대로 마신 적이….

박중훈 | 딱 한번, 영화 끝날 때쯤 돼서 내가 한잔 하자 그랬지. 그래서 일요일 날, 가라오케에서 양주 한병 시켜놓고서는 너랑 나랑 둘이서 두 시간인가 얘기했다.

장동건 | 단둘이만?

박중훈 | 응.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술자리였어. 그렇게 오래 (영화를) 찍었는데. 근데 내가 평소에 너한테 의리가 어쩌구 하지만 , 술 마시면 병 던지고 그러는데 니가 나랑 마시고 싶었겠니. (일동 웃음) 내 인생에 정서가 가장 피폐해 있을 때가 그 영화 찍을 때였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지, 그리고 그 당시에 코미디만 많이 해서 인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고.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영화를 2년 정도 못하다가 이 영화로 다시 한번 일어서야 된다, 이런 강박도 있었고. 여러 가지가 그랬던 거 같아. 그리고 둘째애가 그거 찍을 때 태어나고. 여하간에 굉장히 안 좋았어. 그래서 술을 먹으면, 내가 원래 누구 한명을 붙들고 주사를 하지는 않는데, 폭력적으로 변했어. 그래서 접시 깨고 병 깨고…. 근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그랬기 때문에 그 형사를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거 같애. 내 인생에 그렇게 이를 물고 연기한 적이 있었나 싶어. 내가 이렇게 끝날 배우가 아닌데, 이런 오기 같은 것도 마음속에 당연히 있었겠지. 그래서 솔직히 동건이 챙길 여유가 없었지. 쟤는 쟤 인생이 있는 거고(웃음), 나는 내가 이걸 잘해야 될 텐데, 하는 것들 때문에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던 거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나 하나 가누기도 힘들었거든. 근데 넌 그 영화를 왜 했냐? 니가 그거 할 때 인기가 좀 없었나?

장동건 | 그건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인기가 없었던 적이 한번도 없어. (일동 폭소)

박중훈 | 그때 니가 영화를 뭐 했었지?

장동건 | <패자부활전>이랑 <홀리데이 인 서울>이요.

박중훈 | 드라마는 뭐 했었어?

장동건 | (가물가물해하며) 그때는 뭐, 드라마 하면서 영화 들어오면 하나씩 할 때였으니까.

박중훈 | 그러면 (<인정사정…>이란 영화가) 주연으로 안성기, 박중훈, 뭐 이런 게 컸어?

장동건 | 그랬죠. 사실 그게 제일 컸지. 난 이명세 감독님은 그때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좋다고 그러니까 그런 줄 알았고, 내가 피부로 느낀 적은 없었으니까. 그때는 뭐, 영화라는 장르에 대해서 어떤 견해나 식견이 전혀 없었을 때였죠. 아까 형이 <인정사정…> 할 때 작심하는 심정으로 했었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난 그때 형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어요. 시나리오도 사실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었어요. (웃음)

박중훈 | (팥죽을 입에 담고) 어흐흐흐흥.

장동건 | 시나리오를 보고, 어, 이게 무슨 얘기지? (웃음) 그때까지 내가 생각하던 드라마적인 트루기에 너무나 벗어나 있는 영화니까. 그렇다고 특별한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어쨌든 안성기, 박중훈이라는 사람이 한다고 그러니까…. 그전까지도 내가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내가 끌리는 시나리오로 시작했던 건데,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안 좋고 내 만족도 없으니까, 아, 내가 선택하는 기준이나 바라보는 시선이 잘못됐나보다 생각한 것도 있었던 거고.

박중훈 | 아아. (의외라는 반응)

장동건 | (우직하게 말을 이어가며) 그 시나리오를 봤을 때, 진짜 모르겠더라구요. 근데 어쨌든 안성기, 박중훈이 한다고 그러니까….

박중훈 | (팥죽 한술 떠먹으며) 나 땜에 하게 됐다?

장동건 | 응. 그런 배우들이 있으니까 괜찮아 보이겠구나. 뭔지 한번 해보자. 사실 그렇게 된 거죠. 내가 그때 형한테 느꼈던 거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게 있었어요. 열심히 하는 게 약간 좀 창피한 것 같은…. 열심히 하는 척하는 게, 약간은 좀 자존심 상하는 거 같고. (웃음) 열심히 하는 것을 내세우거나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대본도 미리 다 준비해왔다가 다른 사람 안 볼 때 넘겨서 보고 그런 거였는데. <인정사정…> 때 형이 하는 걸 보고, 아, 열심히 하는 게 되게 멋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박중훈 | 진짜 그랬니? 난 니가 당연히 나 같은 줄 알았어. (잠시 침묵) 장동건 이름이 세 번째에 나오는 영화는 아마, 여태까지도 (<인정사정…>을 제외하면)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을 거야.

장동건 | (웃음)

박중훈 | 다음에 말이야, 내 이름 두 번째 나올 때 그 영화 니가 해. 내가 안성기 형이 얼마나 하늘 같겠냐, 더군다나 80년대에. 근데 <인정사정…>에 내 이름 뒤에 나오고 말이야. 물론 역할의 비중 때문에 그런 거지만, 그래도 그게 참 황송하기도 하고 꿈같더래니까.

장동건 | 처음이었구나, 형한테도.

박중훈 | 그럼. 근데 분명히 세월이라는 게 있는 거고, 너한테도 ‘장동건의 한국영화’에 내 이름이 뒤에 나오는 날이 분명히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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