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화사한 유년을 넘어 역동적인 청년기를 맞이하다, 배우 장동건 [3]
사진 오계옥박혜명 2004-02-18

#2. 외모 콤플렉스의 두 배우, “잘생겨서 탈?”

<인정사정…> 이후로 장동건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가능케 한 후배의 힘을 감지하는 박중훈. 세상의 웬만한 이치는 주로 축구에 빗대는 ‘비유의 대가’로서 박중훈은 공격수가 될 수 없는 이운재의 운명, 전방위 플레이어지만 수비에선 홍명보에 뒤지고 스트라이커로선 황선홍을 넘지 못하는 유상철의 위치를 들어가며 배우들의 다양한 포지셔닝을 한참 설명한다. 그러나 그조차도, <인정사정…> 이후의 장동건의 커리어를 명쾌하게 분석해주지는 못했다. 그저 “누구보다 남자답다”는 말로 후배의 집요한 도전을 해석할 따름이었다.

박중훈 | 그해 청룡상 시상식에 니가 남우조연상 타고 나서, 정말 뜻하지 않게 “흔들릴 때 용기와 확신을 심어준 중훈이 형한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소감에서 했거든.

장동건 | 그 얘기를 한 이유가 뭐냐면, 찍으면서도 나는 이 영화가 너무너무 의심스러웠거든요. (웃음) 이게, 모니터를 보니까 뭐 때깔도 안 나고…. (웃음) 옛날영화 같고…. 하하하…. 그리고 이게 뭐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연기도, 전 정말 지금도 그 영화에서 한 연기는 너무너무 부끄럽고…. 그때는 무조건 이명세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거든요? 말투까지도. 그러니까 내가 하는 것 같은 생각이 하나도 안 드는 거예요. 와서 찍으라면 찍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형이랑 둘이 있을 때는 계속 그것에 대한 고민을 했잖아요. 근데 형은 “걱정하지 마, 이 영화는 됐어. 게임 끝이야,” 이러는 거예요. 그럼 난 또, 그런가보다…. 진짜로 형은 되게 자신있게, 확신있게 얘기했거든요.

박중훈 | 그치, 그치. 난 한 대여섯번쯤 찍을 때 감이 왔으니까.

장동건 | 그러니까 나는 또 마음으로 안심되면서, 아, 그런 거구나. 내가 몰라서 그런 거구나. 근데 결과적으로도 선배님들이 얘기하는 게 맞았으니까…. 만약에 그 영화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면, 거봐, 내가 맞았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웃음)

박중훈 | 근데 그 소감이 정말 고맙고 뿌듯하고….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 내가 그렇게 얘를 챙겨줬나 그런 생각도 들었어. 그러다가 <찰리의 진실> 찍으러 프랑스에 갔을 때, 사람들이 한국에서 <친구>가 난리가 났다는 거야. 장동건이가 연기를 예술로 했대. 그래서 국제전화로 동건이한테 전화해서 너무너무 축하한다고 전화해줬지. 너무너무 기뻤던 기억이 나. 그 다음부터야 뭐, (흐뭇해서) 승승장구하는 우리 동건이.

장동건 | (쑥스럽다는, 나지막한 웃음)

박중훈 | 동건이, 참 오래 가. 마치 오래 가지 말라는…. (웃음) 난 너를 참 잘 아는 사람인데, 그 오래 가는 힘이 뭐냐면, 넌 누구보다 야망이 크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가 큰 사람이야. 근데 장동건이는 절차를 밟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거지. 처음에 20대 초반 때는 <천국의 계단>(아마도 <우리들의 천국>인 듯- 편집자) 이런 거 하다가, 딱 2년 정도 그만두고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가고…. 니가 내 기억으론 재순가 삼순가 하다가 연기를 했거든? 공부를 못하는 재수나 삼수가 아니었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재수나 삼수였을 거야, 아마.

장동건 | (당연하다는 듯) 그렇죠. (바로 웃음)

박중훈 | (진지하게) 그건 사실이잖아. 그래서 그렇게 배우가 되고, 이게 아닌데 싶어서 그만두고 대학교를…. 그거 쉬운 거 아니야. 나도 연기하다가 중간에 유학 갔었지만. 그리고 너 지금 하는 것들을 보면, 마음은 불끈불끈 솟아도 발은 땅에 좍 붙어 있다고. <태극기 휘날리며>를 기획 때부터 1년여 정도를 뚝심있게 버티는 것도 그런 게 있어서고. 그런 게 빨리 소모 안 되고 마모 안 되고 그러면서 자기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관객한테 믿음을 주는 거 아닌가 싶어. 그리고 본인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듣는 얘기지만, 타고난 외모 같은 것도…. (목소리 좀 작아지고 엄숙해지며) 나하고 똑같은 딜레만데….

장동건 | (일동 폭소하는 가운데 누구보다 크게 웃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박중훈 | 나도 연기파로 거듭나는 데 힘들었거든. 힘들더라고. 뭘 해도 얼굴로 봐주고 그러니까. (웃음) 니가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도 사실 난 인터뷰 기사를 보고서 알았지만 그게 어떻게 보면 불쾌한 얘기일 수도 있어. 괜찮은 외모가 콤플렉스라는 건…. (웃음) 근데 아마 그런 걸 거야. 재벌이 권력까지 가지려고 할 때 굉장히 싫은 거. 외양이 괜찮은 배우에게는 연기파라고 얘기하기 싫은 거야. 장 폴 벨몽도하고 알랭 들롱이 나란히 있으면 왠지 장 폴 벨몽도가 연기파 같잖아. 근데 알랭 들롱이 연기 참 잘해. 그리고 이소룡이 액션배우라지만 연기 얼마나 잘하는데. 근데 연기파라고 분류를 안 하잖아. 로버트 레드퍼드도 연기를 얼마나 잘하니. 근데 연기파 배우는 윌렘 데포처럼 생겨야 되는 거야.

장동건 |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 하하하하.

박중훈 | 그러니까 장동건에 대한, 뭐랄까, 시기심이 있는 거지. 연기파라는 것까지 해서 쌍권총을 쥐어주고 싶지 않은 거야.

장동건 | 내가 <인정사정…>을 찍을 때가 그런 고민을 할 때였는데, 형이 알랭 들롱 얘기를 처음 해줬어요. 기억 못하실지도 모르겠는데….

박중훈 | 야, 내가 너보고 <태양은 가득히> 좀 보라니까, 오케이해놓고선 석달 동안 안 봤잖아.

장동건 | (당혹감을 긴 웃음으로 무마한 뒤) 어쨌거나 알랭 들롱이란 배우를 알고는 있었는데 이제 그 때 자세하게 관찰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생각을 조금씩 바꿔 나가다가, 지금은 많이 편해졌어요.

#3 장동건표 영화도 나올 수 있을까?

선배가 해주는 애정어린 말들에 고마워하던 장동건은 문득 ‘제작자 박중훈’의 실체가 궁금해진다. 박중훈은 차태현과 함께 <투 가이즈>에 출연함과 동시에 제작자로 알려진 상태. 선후배의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느낀다던 박중훈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에 다시 확인되는 건, 후배가 한뼘 나아갈 때 선배도 그만큼 나아가 있다는 사실이다.

장동건 | 형은 지금 영화제작도 하잖아요.

박중훈 | 기획자지. 제작까지는 아니고, 기획 정도.

장동건 | 현장에서는 좀 달라요? 그냥 연기만 할 때보다 신경쓰이는 것도 많고 그럴 거 아니에요.

박중훈 | 어험, 나 기획이다, 프로듀서까지 겸하고 있지, 이런 말은 공식적으로 한번도 한 적이 없거든? 철저하게 배우로 가려고 하는데…, 나이도 있고 경력도 있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거 같애. 그럼 안 되는데. 후배들이 나를 부담스러워할까봐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 자기네들끼리 얘기하다가 내가 들어오면 얘기 끊기고 그런 거 있잖아. 너도 알지? 내가 뭐 하나 웃긴다고 멘트 좀 날리면 어디서 웃어야 될지 포인트 못 찾고 그런 거, 응?

장동건 |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박중훈 | 너, 84년생하고 농담 한번 해봐. 걔 웃길 자신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못 웃겨. 84년생 못 웃겨. (진지하게) 사실 이제는 좀 편하게 영화 찍고 싶었거든. 힘 들어가는 영화말고. 근데 그런 영화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이러이러한 영화가 있는데 한번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내서 감독 만나고 그렇게 된 거지. 내 생각에 딱 맞는 영화가 있었다면 내가 제작 안 했겠지.

장동건 | 배우가 제작을 한다라는 건, 예를 들면, 내가 고등학생 역할을 하고 싶은데 더이상은 할 수 없는 때가 오잖아요. 그럼 그때 내가 그 영화를 만드는 거죠. 형은 잘할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감독, 배우, 제작자 통틀어서 30편 넘게 영화를 작업했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형은 제작자로서도 안목이 있을 거고, 그래서 박중훈표 영화를 만들어낸다면 정말 좋은 거죠.

박중훈 | 그래, 맞아. 한때는 사람들이 내가 나오는 코미디라면 무조건 지겹다고 한 적도 있고 나도 그게 싫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안 그렇거든. 사람이 자기 브랜드를 하나 가졌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거야.

#엔딩 시퀀스. “연기파 하지 마, 동건아”

또다시 느닷없이, 장동건이 질문을 던진다. 그는 담담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박중훈만이 가진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박중훈의 멘트. 이로서 두 사람은 상대방이 가게 될 길을 내다보는 동시에 자신의 앞길을 점친다.

장동건 | 형이 스스로 생각하는, 형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대표작은 뭐예요? (기자에게) 이런 얘긴 술 먹으면서 한번도 안 해요. (웃음)

박중훈 | 그래, 맞아. 이게 지금 <씨네21>이니까 하는 거야. 나는, <인정사정…> <게임의 법칙> <우묵배미의 사랑>.

장동건 | 그러니까 그 영화들을 보면, 공통점이 관객과 평단한테 다 인정을 받았다는 거잖아요. 형은 그럴 때 가장 빛이 나는 거 같아요. 형만 가지고 있는, 형의 역할을 연기를 하면 그 캐릭터가 형한테 맞춰져서 바뀌잖아. <인정사정…> 같은 경우에도 그 역할을 다른 배우가 했으면 관객이 그렇게 재미있어 하면서 중간중간에 웃음이 터질 수 있는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박중훈 | 하드보일드해지지.

장동건 | 그런 게, 우리나라 배우 중에서 박중훈이 유일하게 해낼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실 형이 <세이 예스>라는 영화를 선택해서 찍게 됐다고 했을 때 어쩌면 내가 <해안선>을 찍는다고 했을 때의 마음하고 비슷했을 수도 있었을 거 같은 거예요.

박중훈 | (씩 웃으며) 예리하단 말야.

장동건 | 내가 <해안선> 찍는다고 했을 때 형이 그런 얘기 했어요. 잘할 수 있는 걸 놓치지 말라고. 계속 도전해보고 싶은 세계에 다가가는 것도 좋지만 니가 잘할 수 있는 것들도 놓치지 말라고. 그런 점에 있어서 나는 형도 가끔씩 놓치고 가는 것들이 있지 않나 싶더라구요. <게임의 법칙>이나 <인정사정…>에서 형의 연기는 다른 배우로 대체가 전혀 안 되거든요. <인정사정…>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형의 컷이 뭐냐면…,

박중훈 | 내가 맞혀볼게. “에이, 씨발놈아,” 이거 아니야?

장동건 | 아니야, 아니야.

박중훈 | (겸연쩍어져서) 으하하하하하하….

장동건 | (같이 웃으며) 그것도 그거고, 왜, 눈 오는 날 누나네 집에 갔다가, 나오면서 약간 뒤돌아보면서 손만 들어서 인사하는 장면. 그걸 보면 페이소스가 있잖아요.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별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박중훈 | 니가 참 잘 얘기했는데, 사실 그동안 내가 조심스러워서 얘기 못했었던 게 있거든? 이건 선배가 아니라 그냥 팬으로서, 관객의 입장으로서 장동건이란 배우를 바라본다면, 난 니가 ‘연기파 장동건’이란 말을 안 들었으면 좋겠어. 그냥 ‘멋있는 배우 장동건!’이란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예전에도 내가 이 얘기 한번 했다가 얘가 반응이 시큰둥해서 그 다음부터 얘길 안 했지.

장동건 | (웃음)

박중훈 | 그냥, 멋있는 배우 장동건이를 보고 싶어. 그러니까 톰 크루즈가 〈7월4일생〉에서 연기 잘했는데 걔는 <탑 건>에서 오토바이 타고 나올 때가 제일 멋있거든. 〈7월4일생〉의 우아아, 이거는 윌렘 데포나 니콜라스 케이지한테서 보면 돼. 내 개인적인 바람은 그래.

관련인물